육아에 지친 엄마들 향긋한 꽃내음에 스트레스 '싹'

입력 2025.01.08. 15:12 최소원 기자
[문화현장-래인플라워 육아맘 힐링 꽃꽂이]
100명 육아맘 대상 무료 꽃꽂이
연말연시 미니트리 등 작품 제작
함께 대화하며 공감대 형성하기도
"재능기부 프로그램 늘기 바라요"
김인자 대표가 '미니 트리 만들기'를 설명하고 있다.

임신, 출산, 그리고 육아를 겪는 여성은 '엄마'로서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다. 직장을 다니며 육아를 병행하는 워킹맘들의 하루는 24시간이 부족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북구 삼각동에 위치한 꽃집 '래인플라워'의 김인자 대표는 40년이 넘는 세월을 꽃과 함께 해왔다. 은퇴를 앞두고 있던 작년 이맘때, 졸업 시즌을 맞아 근처 어린이집 원생의 어머니가 꽃다발을 사러 김대표의 가게를 찾았다. 형형색색의 꽃다발을 구경하던 어머니는 고심 끝에 선택한 꽃다발을 손에 들고 화사하게 웃으며 김대표에게 농담 반 진담 반 섞인 말을 건넸다.

"꽃이 너무 예뻐서 좋은데 꽃꽂이를 한 번쯤 해보고 싶어요. 한 번도 안 해봤거든요."

그 한 마디에 김대표는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평소 가게 창문 너머로 등·하원하는 어린이집 원생들을 보며 육아맘들에게도 힐링을 선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기 때문이다.

육아맘들이 미니 트리를 만들고 있다.

김대표는 "지금까지 사회에 환원하는 활동을 꾸준히 해왔는데, 의외로 젊은 엄마들이 꽃을 접해본 적이 없다고 하더라"며 "일을 하면서 아이를 돌보는 게 무척 힘든 일인 것을 알기 때문에 엄마들을 위한 무료 꽃꽂이 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됐다"고 말했다.

매달 1~2회 평일 오전 래인플라워에서는 북구 육아맘들을 위한 힐링 꽃꽂이 체험이 진행된다. 2024년 초부터 시작한 이 프로그램은 누적 100명의 육아맘을 상대로 한다.

이날 래인플라워에는 꽃집 근처의 어린이집 육아맘들이 모여 연말연시 미니 트리 만들기 체험에 참여했다.

육아맘들이 미니 트리를 만들고 있다.

◆빨강·노랑·보라…알록달록 예쁜 꽃 한가득

'육아맘 힐링 꽃꽂이' 프로그램에서 사용되는 모든 꽃은 당연하게도 생화다. 이날 미니 트리 만들기에 사용된 꽃은 트리의 주 소재인 더글라스, 노오란 프리지어, 보랏빛 스타치스, 빨간 카네이션과 장미꽃 등이었다.

꽃꽂이를 할 때마다 김대표는 고심 끝에 그날의 테마와 재료를 선정한다고 한다. 향기롭고 아름다운 꽃의 매력으로 육아 스트레스를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서다. 연말 시점에 맞춰 미니 트리로 테마를 정한 것도 그 때문이다.

육아맘들이 미니 트리를 만들고 있다.

프로그램 시작에 앞서 순서대로 자기소개를 마친 육아맘들은 김대표의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트리는 아래에서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원추형이 돼야 하죠. 더글라스를 촘촘히 꽂아 높이를 일정하게 맞추는 작업부터 시작할 거예요."

힐링 꽃꽂이에서 만들게 되는 꽃꽂이 작품들의 대부분은 꽃꽂이를 처음 접하는 육아맘들도 곧잘 따라 만들 수 있는 쉬운 난이도다. 실제로 이날 꽃꽂이에 참여한 육아맘들은 꽃꽂이 경험이 전무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김 대표의 보충 설명이 곁들여지자 모두가 집중해 자신의 앞에 놓인 플로랄폼에 더글라스를 정성껏 꽂기 시작했다.

김 대표는 꽃꽂이의 가장 큰 매력으로 '개성'을 꼽았다. 그는 "같은 종류의 꽃을 사용해도 결과물을 보면 모두가 다른 작품을 완성한다"며 "꽃을 어느 위치에 어떻게 꽂았는지뿐만 아니라 어떻게 생긴 꽃을 선택했고 어떤 색채를 골랐는지 하나하나가 모두 달라 꽃을 꽂은 사람의 성격이 드러나는 것 같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완성된 미니 트리

◆눈도 코도 즐거운 꽃꽂이에 빠지다

아름다운 꽃을 각자의 개성대로 꽂아가던 육아맘들은 자연스레 서로의 고충을 털어놓기도 했다. 직장을 다니며 아이를 키우는 일, 나이 터울이 얼마 나지 않는 둘째를 돌보는 일 등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가 이어지며 웃음꽃도 함께 피어났다.

이날 프로그램에는 어린이집 선생님 두 명도 함께 참여했다. 이들 역시 어린이집 교사이자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들이었기 때문이다.

배화어린이집 교사이자 연년생 두 아이의 엄마인 김도아씨는 "원래 꽃을 좋아했는데 도저히 접할 기회가 없었다. 꽃은 향기롭고 보고만 있어도 따뜻해지는 느낌에 기분이 좋다"며 "이렇게 오랜만에 사람 구경도 하고 꽃 구경도 하니까 마음이 평화로워지는 느낌이다"고 말했다.

2024년 진행된 '육아맘 힐링 꽃꽂이' 프로그램 진행 모습

더글라스를 원추형으로 꽂은 뒤에는 형형색색의 화려한 꽃들을 원하는 위치에 꽂으면 된다. 앞선 김대표의 설명대로 꽃을 고르는 것마저 각자의 개성이 돋보이는 듯했다. 너무 열중한 나머지 말하는 것도 잊은 육아맘들의 모습에 웃음이 터진 김대표는 "가벼운 꽃놀이라고 생각하고 하고 싶은 대로 마음대로 꽂아도 된다"며 이들을 응원했다.

3세와 6세 남매를 키우는 워킹맘 김수현씨는 이번 프로그램으로 커다란 힐링을 자신에게 선물해준 것 같다는 소감을 밝혔다. 김씨는 "직업상 오후에 출근해서 오전에 취미 활동을 해오곤 했는데, 꽃꽂이는 오늘이 처음"이라며 "예쁜 꽃들 사이에서 꽃꽂이라는 창작활동을 하니 시각, 후각, 그리고 촉각적으로 힐링할 수 있어 너무 기분이 좋다"고 미소 지었다.

2024년 진행된 '육아맘 힐링 꽃꽂이' 프로그램 진행 모습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것을 함께 즐긴다

아름다운 생화 트리를 만든 후 각종 오너먼트와 반짝이는 전구까지 단 육아맘들은 자신이 만든 트리를 구경하며 환하게 웃었다. 플라스틱으로 된 트리와 달리 생화로 장식된 트리는 특유의 화려함뿐만 아니라 향긋한 꽃내음에 보는 것 자체로도 힐링이 되는 듯했다.

연년생 남매를 키우는 주부 박은혜씨는 "오늘 꽃꽂이를 하기 위해 둘째 아이는 동생에게 맡겨두고 왔다"며 "아이를 낳기 전에는 꽃을 좋아했는데, 엄마가 되고 나니 꽃이 비싸기도 하고 나를 위한 것보다는 아이가 원하는 것을 구매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꽃과 멀어졌는데 오늘 체험으로 오랜만에 내가 좋아하는 것을 만끽할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했다.

2024년 진행된 '육아맘 힐링 꽃꽂이' 프로그램 진행 모습

김인자 대표는 '육아맘 힐링 꽃꽂이' 외에도 꾸준하게 지역 사회에 환원 활동을 해왔다. 자신이 가장 잘하고, 잘할 수 있는 것을 통해 많은 이들에게 행복을 전해주자는 의미로 경로당을 비롯해 마을단체에 꽃꽂이 등으로 재능기부를 틈틈이 하고 있다.

김 대표는 "몇천만 원씩 기부하는 분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고, 단지 즐겁고 행복한 마음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해주고 싶다"며 "오늘만 해도 이렇게 즐거워하시는 분들을 보면 너무 뿌듯하고 보람차다"고 전했다.

육아맘들이 자신의 미니 트리를 들고 촬영한 기념 사진

이 프로그램은 어린이집이나 기관·단체 등의 주선을 통해 신청자를 모집 받고 있다. 신청자가 너무 많거나 너무 적으면 안 되기 때문에 정기적인 진행 일정이 정해져있진 않다. 꽃집 운영 역시 시기의 특수성이 있기 때문에 매달 진행할 수도 없다. 졸업 시즌과 연말 행사가 몰린 시기는 피해 기관 혹은 단체의 요청이 있을 때마다 일정을 조율해 상시적으로 진행한다. 지금까지 80여 명의 육아맘들이 꽃꽂이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김 대표의 유일한 바람은 한 가지다. 자신이 이 프로그램을 더 이상 못하게 되더라도 누군가가 계속해줬으면 하는 것이다. 그는 "꽃집을 운영하시는 다른 분들이 이 프로그램을 통해 가벼운 마음으로 비슷한 프로그램을 진행해준다면 다른 소원이 없을 것"이라며 작은 소망을 드러냈다.

최소원기자 ssoni@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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