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적 색채·세련된 편집 ‘몰입감’
‘바디 호러’ 장르…극 공포감 더해
엘리자베스 역 데미무어 연기 호평
현대사회 ‘외모지상주의’ 비판

유독 못나 보이는 날이 있다. 머리를 새롭게 만지고 화장을 고치고 옷을 바꿔 입어도 이상하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거울 앞에 서서 생각한다. 눈이 조금만 더 컸더라면. 코가 조금만 더 오뚝하다면. 몇 킬로그램만 빠져도 더 예쁠 텐데.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며 휴대폰 화면을 본다. SNS 속 연예인들은 어쩜 저렇게 아름답고 완벽한지 싶다. 사진을 확대해본다. 눈썹 한 올까지 가지런하고 모공조차 보이지 않는다. 문득 의문이 든다. 나와 같은 종(種)이 맞나?

최근 개봉한 영화 '서브스턴스'는 한때 '잘 나갔던' 배우 엘리자베스 스파클을 주인공으로 한다. 엘리자베스는 또 다른 나를 만들어주는 약물 '서브스턴스'를 주입해 모든 게 완벽한 '수'로 변신한 뒤 7일씩 두 개의 몸을 번갈아가며 살아간다.
영화는 첫 장면부터 감각적인 색채와 세련된 편집으로 단숨에 관객들을 스크린 속으로 빨아들인다. 부담스러운 줌인, 정방형 프레임에 대한 집착과 자주 쓰이는 강렬한 원색은 초현실적이면서도 동시에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는 엘리자베스의 이야기를 현실 세계로부터 분리해놓는 장치로 작용한다. 특히 자주 등장하는 방송국 복도 세트장은 스탠리 큐브릭의 '샤이닝'을, 대칭적인 화면 연출은 웨스 앤더슨을 연상케하는데 코랄리 파르자 감독은 러닝타임 내내 화면에 대담한 여백을 둠으로써 독창성을 부여한다.
엘리자베스는 수로 살아가며 과거의 환호와 스포트라이트를 되찾는다. 이로 인해 그의 욕망은 점점 커져만 가고 이내 수를 타자화함으로써 'She'로 호칭하기에 이른다. 자아 분열에 대한 혼란은 점차 깊어져 결국 엘리자베스를 집어삼킨다.

이를 지켜보는 관객은 불안에 떨 수밖에 없다. 이야기가 어떤 결말을 맞을지 예상되기 때문이다. 광기에 사로잡힌 엘리자베스와 수의 대립이 시작되면 '본체'인 배우들의 이른바 '연기 차력쇼'도 함께 펼쳐진다. 실제로 엘리자베스 역을 맡은 데미 무어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촬영 강도가 너무 세서 대상포진에 걸리고 체중이 20파운드(약 9㎏)나 줄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결말로 치닫는 영화는 수의 몰락을 통해 러닝타임 내내 과하게 선정적이고 관능적이었던 이유를 빠르고 강렬하게 해부한다. 선혈로 스크린 전체가 물들며 본격적인 슬래셔(신체를 난도질하는 잔혹한 내용을 담은 공포 영화의 하위 장르) 파티가 시작된다. 극장에 들어서기 전 고어 장르임을 인지하고 봤음에도 피가 낭자한 충격적 장면의 연쇄에 눈을 깜빡일 수조차도 없다.
맹목적으로 추를 혐오하고 미를 추구하는 엘리자베스보다도, 감독은 권력을 쥐고 있는 남성 캐릭터를 더욱 추악하게 묘사한다. 먹는 것마저 게걸스러운 하비와 여성 모델들의 외모부터 몸매까지 낱낱이 뜯어보며 평가하는 방송국 관계자들. 그들의 혀끝과 시선의 끝자락에는 항상 카메라 렌즈가 자리한다.
이를 통해 완벽한 나를 만들어주는 마법의 약물 '서브스턴스'의 주삿바늘은 우리 사회임을 시사한다. 피상적으로 외모지상주의만을 추구하는 매스미디어가, SNS가, 혹은 우리의 눈과 혀끝이 낳게 되는 결과물은 아름다웠던 엘리자베스도 아름다운 수도 아닌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는 '괴물'뿐이다.

근래 들어 외모지상주의를 꼬집는 창작물이 늘어나고 있다. 과거 '미녀는 괴로워'를 시작으로 '내 ID는 강남미인!', '마스크걸' 등의 웹툰은 드라마화돼 미디어 믹스 흥행의 성공적인 사례로도 꼽힌다.
어쩌면 우리는 외모지상주의를 추구하는 동시에 그 상황에 염증을 느껴온 걸지도 모른다. 미추의 기준은 다른 누가 아닌 '우리'가 함께 정립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우리가 스스로 세워둔 철창에 갇힌 채 끝없는 자기혐오를 거듭하며 살아가고 있다.
프랑스의 철학자 볼테르는 '미모는 눈을 즐겁게 하지만, 상냥함은 영혼을 매혹시킨다(La beaute plait aux yeux, la douceur charme l'ame)'고 말했다. 심미적인 아름다움은 시각적인 쾌락에 그칠 뿐이며 성품은 내면에 더욱 깊이 머문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유일하게 엘리자베스에게 아름답다고 말해주던 중학교 동창 프레드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격언이기도 하다.
감독은 자신이 구축한 '가장 완벽하게 아름다운' 수를 조금씩 망가뜨린다. 수의 첫 등장 신은 그 누가 보아도 넋을 놓을 정도로 매혹적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그는 더 이상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다. 이는 수의 치아가 빠지고, 귀가 떨어지고, 점점 형체가 무너지는 순간보다 훨씬 전에 시작된다. 수가 엘리자베스의 몸뚱이에게 폭언을 퍼부으며 독선적인 행동을 이어갈 때부터였다.
누구든 추한 것보다는 아름다운 것을 선호하고 사랑한다. 하지만 그 추한 것과 아름다운 것이 무엇을 일컫는지에 대한 판단은 결국 우리에게 달려있다. 얼굴, 몸매, 혹은 성격, 그리고 우리 존재 자체가 그 객체가 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서브스턴스'를 주입할 것인가?
최소원기자 ssoni@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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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민주화 성지에서···" 광주 출신 장성호 감독의 고백 '킹 오브 킹스' 장성호 감독. 뉴시스북미를 강타한 '킹 오브 킹스'를 연출한 장성호 감독이 4년 장학금을 받고 들어간 전남대학교를 한 달 만에 그만둘 수 밖에 없었던 경험을 고백했다. 5·18민주화운동 주역인 곳에서조차, 더군다나 가장 폭력을 비판해야 할 미대에서 폭력이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된 데 충격받았다는 내용으로 파장이 예상된다. 이에 더해 '민주화의 성지'를 자부하면서도 민주적이지 않은 관행들이 여전히 광주사회 곳곳에서 자행되는 현실에 더해 성찰하는 목소리도 나온다.장 감독은 16일 보도한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이 같은 경험을 밝혔다. 장 감독은 인터뷰에서 1989년 전남대학교 미술대학에 4년 장학생으로 입학했지만 끔찍한 경험 후 한 달 만에 학교를 떠나야 했던 사실을 털어놨다. 서강고등학교에 재학한 장 감독은 전교 두세 손가락 안에 드는 우수한 성적에도 불구하고 가정형편상 전남대에 입학한 것으로 알려졌다.장 감독은 "어느 날 선배들이 단과대 옥상에 후배들을 집합시켜 엎드려뻗쳐를 시켰다. 곧 팰 분위기였다"면서 "민주화의 성지 전남대에서, 그것도 예술혼을 불태워야 할 미대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게 납득되지 않아 반항하고 그 길로 자퇴했다"고 고백했다.장 감독이 겪은 1989년은 1980년 5월 항쟁(5·18민주화운동)과 1987년 6월 항쟁을 거치며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최고조에 달했던 시기다. 특히 5·18 민주화운동의 시작점이자 중심지였던 전남대학교는 당시 민주화 투쟁의 상징적 공간이었다. 5·18민주화운동 과정에서 또 군부 정권에 맞서 수많은 전남대 학생이 희생됐다. 그러면서 전남대는 '민주화의 성지'로 불리며, 매년 5월이면 전국에서 이를 기리는 사람들이 찾는다.이런 곳에서 그것도 자유로운 영혼이 존중받아야 할 미대에서 비이성적인 '군기 잡기'와 폭력이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됐다는 사실은 장 감독이 충격을 받기에 충분했다. 더군다나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은 구금한 학생들과 시민들을 대상으로 옷을 벗겨 얼차려(군기 훈련)를 준 뒤 물리적 폭력을 저지르는 일을 수없이 반복했다.특히 이 같은 폭력적 악습은 오랜 기간 전남대에서 사라지지 않으며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바 있다.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전남대 예술대학에서 선배가 후배들을 대상으로 얼차려를 주는 모습이 SNS를 통해 알려지면서 큰 논란을 일으켰다. 이 문제로 정기 연주회가 취소되는 일로 이어졌다. 지난 2013년에는 전남대 신문방송사가 실시한 실태조사에서 104개 학과 중 77개 학과가 후배들에게 '얼차려'를 포함한 기합을 준 것으로 나타났다.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던 자랑스러운 역사 이면에는 부끄러운 민낯이 공존해 왔던 셈이다.다만, 201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얼차려와 같은 폭력은 대부분 사라진 것으로 알려졌다. 선배가 후배를 집합하는 문화가 이른바 '똥군기'로 불리며 사회적으로 자정이 이뤄진 탓이다.#D 애니메이션 '킹 오브 킹스' 내 한 장면. 모팩 스튜디오장 감독 고백을 접한 지역사회에서는 성찰의 목소리도 나온다. 민주와 인권, 평화를 자부하면서도 여전히 비민주주의적인 행태가 이뤄지고 있다는 자조적 고백이다. 실제 해당 기사가 공유된 SNS에서는 "전남대 전체가 이 하나만으로 부끄러워 쥐구멍을 찾을 만큼 통절한 성찰이 있어야 한다", "전남대뿐만 아니라 민주 성지 광주에서도, 이 사회에서도 전체주의적이고 폭력적인 문화가 드글드글할 것이다"는 반응을 보였다.한편, 킹 오브 킹스는 장 감독이 연출과 각본, 제작 등을 맡아 예수의 일생을 다룬 장편 3D 애니메이션 영화다. 북미 박스오피스 6천만 달러를 돌파하면서 국내 단독 제작 영화로는 북미 흥행 역대 1위 기록을 달성했다. 이에 힘입어 이날 국내 전국 500개관·1천200개 스크린에서 동시 개봉한다.이삼섭기자 seobi@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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