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선 줄이고 보행로 넓히니 활기 돈 거리, 그 비결은?

입력 2025.09.24. 10:27 강승희 기자
길 위의 공존: 자동차 지배를 넘어 ③보행 친화적 도로 재편
서울시, 1990년대부터 '보행 친화 도로' 정책 추진
인사동·명동·천계천·대학로·정동길 등 명소화 성과
내년엔 '2040 미래서울 보도공간' 마스터플랜 수립
'차 없는 거리' 주민·상인 불만도…"탄력 적용 현실적"
서울 종로구 혜화역 인근 소나무길(대학로 11길). 낙후된 이면도로 상권이었던 소나무길은 지난 2016년부터 보행환경 개선사업이 이뤄지면서 보행자와 관광객이 몰리는 거리가 됐다. 이삼섭기자 seobi@mdilbo.com

"예전에는 불법주차가 난무해 상점들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어요. 운전자, 행인, 상인 모두가 불편했죠. 지금은 차도가 줄어들면서 불법주차를 할 수 없게 되니깐 가게들이 훤히 보이고, 길가 나무와 벤치 덕분에 사람들이 많아졌어요. 거리가 훨씬 살아난 걸 느껴요."

서울 종로구 소나무길에서 20여년째 약국을 운영해 온 이모 씨의 말이다. 대학로 상권의 이면도로에 불과했던 소나무길은 상대적으로 보행량이 적어 침체돼 있었다. 그랬던 거리가 2016년 '차 없는 거리'(보행자 전용 도로)를 계기로 보행환경 개선 사업까지 이뤄지면서 지금은 사람들로 발 디딜 틈 없는 거리가 됐다.

비결은 차로를 줄이고 보행로를 넓힌 것이다. 넓힌 보행로는 방문객이 채웠고 자연스럽게 상권에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불법주차로 몸살을 앓던 거리는 나무와 벤치가 놓이면서 대학로의 명소가 됐다. 외국인 관광객에게 서울의 매력을 담는 포토존이 된 건 덤이다.

서울 종로구 혜화역 인근 소나무길. 당초 왕복 2차로였던 도로를 일방 1차로로 바꾸고 보행로를 넓히면서 쾌적한 거리로 탈바꿈한 모습이다. 이삼섭기자 seobi@mdilbo.com

◆소나무길 가보니…사람과 차 '공존'

서울 대학로 한 축인 대명길, 그 중에서도 소나무길(대학로 11길)은 서울시가 추진한 '보행환경 개선 사업'으로 탈바꿈한 대표적 사례다. 소나무길은 혜화역과 창경궁로를 잇는 270m 길이의 도로다. 주말 일부 시간대에는 보행 전용 거리(차 없는 거리)로 바뀐다.

무등일보 취재진은 최근 소나무길을 찾아 서울시의 보행환경 개선 정책 결과를 살펴봤다. 혜화역에 내려 소나무길 초입을 마주하자마자 주변 도로와는 확연히 다른 외관으로 구별됐다. 붉은 색감의 보도블럭이 널찍한 보도를 채운 거리에는 차로 하나만이 일방통행으로 놓여 있었다. '소나무길'이라는 이름답게 소나무들이 가로를 따라 조성된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입구에 세워진 '소나무길 보행전용거리'라는 간판을 지나 소나무길에 들어서자 특색 있는 상가들이 가득했다. 보도가 넓은 탓인지 제법 사람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쾌적한 보행이 이뤄지는 모습이었다. 인도를 따라 형성된 가로수는 뜨거운 햇살을 막아주는 그늘이 됐고, 가로수 사이사이에 놓인 벤치는 잠시 머무를 수 있는 쉼터였다.

특히 보행자가 차량과의 충돌을 불안해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었다. 차량은 꾸불꾸불하게 놓인 일방통행으로 저속 주행했다. 불법주차가 사라지면서 상점 간판과 진열대 등이 훤히 드러났다. 그렇다고 차를 배제한 것도 아니다. 최소한의 통행로를 남기되 자투리 공간에 노면 주차장을 만들었다. 보행과 차량 간 균형이 유지되는 모습이었다.

이 곳을 자주 찾는다는 한 시민은 "1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왕복 2차로에 갓길 불법주차가 많아 잘 안 찾던 거리였다"며 "보행자에게 편해진 길로 만든 이후에는 혜화역 4번출구 쪽 길(대명길)보다도 소나무길을 더 자주 걷는다"고 말했다. 실제 소나무길과 이어지는 대학로 주요 거리인 대명길은 소나무길과 달리 사람과 차가 엉키며 보행자 안전이 위협 받는 모습이었다.

상인들의 반응도 긍정적이다. 소나무길 내 한 상인은 "걷기 좋은 환경이 되면서 보행자들이 많아졌다. 이런 길이 별로 없다"고 만족했다. 그러면서 "거리를 이렇게 조성해 놓으니까 불법주차가 거의 없어졌다. 일방통행인줄 모르고 들어왔다면 불편을 느낄 수 있겠지만, 알고 있는 사람들은 불편하지 않다"고도 덧붙였다.

◆'걷고 싶은' 서울, 30년의 결과

서울시는 자동차 중심의 도로 환경을 보다 더 보행친화적 공간으로 바꾸는 시도를 꾸준히 해왔다. 과거 자동차 중심의 교통 정책으로 인해 떠오른 환경·교통 문제를 보행 친화적 정책으로 완화하겠다는 취지다. 급격한 인구 증가와 그에 따른 차량 증가로 보행자 교통사고가 잦았다. 보행 공간은 협소해지면서 보행 친화 환경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요구가 커졌다.

이에 서울시는 1997년 '서울시 보행조례'를 제정하고 이후 1년 뒤에는 '제1차 서울시 보행환경 기본계획'을 수립하면서 보행 환경과 보행권에 대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 지자체가 보행 조례를 제정한 건 세계 최초다.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보행자 전담 부서가 만들어졌다. 이와 동시에 서울시는 '차 없는 거리'(1997년)와 '걷고 싶은 거리'(1998)를 두 축으로 보행환경 개선에 나섰다.

그 결과 서울시의 보행 친화적 정책은 곳곳에서 명소가 되면서 어느 정도 성과를 입증했다. '차 없는 거리'의 대표 거리가 중구 명동길과 종로구 인사동길·대학로다.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지만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차와 보행자가 얽혀 혼잡하고 위험한 거리로 대표되던 곳이다.

2024년 9월 22일 서울 정동길에서 서울시와 녹색서울시민위원회가 개최로 열린 '2024 차(車) 없는 날, 차(茶) 있는 거리' 행사에서 시민들이 주말 나들이를 즐기고 있다. 정동길은 서울시의 '걷고 싶은 거리' 정책에 따라 보행로를 확장하는 등 보행 편의성을 개선했다. 뉴시스

서울시는 2004년 서울시청 앞 교차로와 차도를 없애 대규모 잔디광장을 만들었다. 2007년부터는 단순히 보행 환경을 개선하는 데 더해 디자인적 요소를 가미하며 '걷고 싶은 거리'를 만드는 데 주력했다. 이 때 걷고 싶은 거리 1호로 지정된 거리가 '정동길'이다. 2차선 도로를 1차선 일방통행으로 만들어 보행자 도로를 확장했다. 도로 형태를 구불구불하게 만들어 차량 속도를 내지 못하도록 했다. 낙엽이 그대로 쌓이게 두면서 더욱 잘 알려졌다. 지금은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가로이자, 산책로로 유명하다. 정동길의 가로 형태를 모델로 후에 많은 걷고 싶은 거리가 만들어졌다.

이후에도 서울시는 '보행 친화 도시 서울 비전'(2013년), '도심주요도로 차도축소'(2014년), '걷는 도시, 서울'(2016), '걷고 싶은 감성거리 조성'(2025) 등 보행 환경을 개선하는 데 집중해왔다. 특히 사대문 안 주요 도로에 대해 차로를 축소하고, 보행로·자전거도로를 확대하는 '도로공간 재편사업'을 지속해오고 있다. 내년까지 '2040 미래서울 보도공간 마스터플랜'을 수립해 서울 도심 보행환경 개선을 위한 밑그림을 그릴 계획이다.

마포구는 2023년 홍대 일대 공영주차장 140면을 없애고 보행자 전용도로로 바꾼 후 주말에는 차 없는 거리를 운영 중이다. 서울시

◆車 없는 거리, 끊임없는 갈등

서울시의 지속적인 보행 친화적 정책 결과 2024년 말 기준 서울에는 보행자 우선도로만 139개소가 지정돼 있다. 2022년 제도 시행 후 3년만에 이룬 결과다. 보행자우선도로는 차량 속도를 시속 30km 이하로 제한해 보행자 안전을 보장한다.

'차 없는 거리'도 141곳에서 운영 중이다. '차 없는 거리'는 보행로 통행이 많을 경우 보행자 안전을 위해 일정 시간과 구간을 정해 차량 통행을 제한하는 것이다. 예컨대, 혜화역 마로니에공원 옆 대학로 8길은 전일제 운영으로 24시간 차량 통행을 막는다. 반면 소나무길은 주말 동안 일부 시간대에서 차량 통행을 금지한다. 성북구 고려대로(고려대로 24길)처럼 행사에 맞춰 수시로 운영하기도 한다.

문제는 '차 없는 거리'의 경우 거리 내 상인들과 주민들의 반발이 빈번하다.

서울시는 지난 7월부터 청계천로 북측 광교에서 삼일교 구간 '차 없는 거리' 일부 구간에 대해 주말 차량 통행 제한을 해제했다. 지난 2005년 이후 20년 만이다. 이 같은 결정 배경에는 인근 종각역 '젊음의 거리' 상인들의 반발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상인들은 차량 이용객을 원천 차단해 매출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해 왔다.

올해 1월에는 신촌 연세로가 '차 없는 거리'에서 해제됐다. 연세로는 2014년 전국 최초 '대중교통 전용 지구'로 지정됐다. 평일에는 버스만 다니고, 주말에는 버스도 막아 보행만 가능했다. 그러나 상권이 위축됐다는 상인들의 반발과 교통 혼잡을 호소하는 주민 여론에 결국 백기를 들었다. 다만, '차 없는 거리' 해제 이후 신촌역 주변 가게의 매출이 떨어지고 유동인구가 크게 줄어들었다는 분석이 나왔다.

전문가들은 '차 없는 거리' 정책이 단순히 차량을 막는 것으로는 지속성을 담보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한상진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교수는 "차 없는 거리는 주변 토지 이용, 도로 네트워크의 위상, 주차 여건 등 여러 조건에 따라 달라지는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며 "차량을 배제해도 이로 인해 차량 이용이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거나 대체할 수 있는 이동 경로가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차량을 전면 배제하기보다 보행자에게 우선권을 주는 방향에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면서도 "대중교통 인프라가 부족한 도시에서는 무조건적인 전일제 시행보다 주 1회나 특정 시간대에 운영하는 등 탄력적 방식이 현실적"이라고 조언했다.

또 한 교수는 "차를 가지고 오는 것보다 차를 두고 오는 게 훨씬 낫다는 인식을 주는 게 중요하다"면서 "대중교통 접근성을 좋게 하거나, 주차를 힘들 게 하는 것도 한 방식이다"고 말했다.

이삼섭기자 seobi@mdilbo.com

강승희기자 wlog@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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