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엉뚱함' 주목 '공동 창작자' 정의
바라보는 관점 자체가 중요 출발점
"상생적 공진화만이 미래 문 열 것"

연출가이자 미디어 아티스트인 김제민 교수와 AI 연구자 김근형이 결성한 미디어아트 그룹 ‘슬릿스코프’는 문법적 오류의 경계에서 역설적으로 시적인 문장이 탄생한다는 점에 착안해 KoGPT 기반의 시 쓰는 인공지능 ‘시아(SIA)’를 지난 2021년 개발했다.
시의 제목을 입력하면 30초 만에 한 편의 시를 완성하는 시아의 첫 문장을 마주했을 때, 김 교수는 “마치 어떤 시인의 창작물을 본 것처럼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라고 당시의 소회를 밝혔다. 그는 ‘시작하는 아이’라는 의미를 담아 ‘시아(詩兒)’라는 이름을 붙였으며, 이를 통해 기존 예술 패러다임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올 ‘AX(Art Transformation·예술적 전환)’로의 시대를 직감했다고 설명했다.
보통 인공지능에게는 완벽한 효율성을 기대하기 마련이지만, 김 교수는 오히려 AI의 ‘엉뚱함’에 주목했다. 그는 “처음 AI 작업을 시작할 때, AI의 스마트한 효율성은 빅테크 기업의 몫이라고 생각했다”라며 “슬릿스코프는 창작자로서 AI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고민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최적화된 해답을 제시하는 것과 달리, 우연적이고 의외성을 띠며 비논리적인 결과로 우리에게 미처 생각하지 못한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측면이 있다”며 AI의 비논리적 결과물이 주는 자극을 높게 평가했다. 이에 따라 그는 AI를 정적인 알고리즘에 가두지 않고, 창작자와 관객의 참여를 통해 지속적으로 발전하는 ‘진화하는 AI’이자, 예측 불가능성을 수용하는 ‘공동 창작자’로 정의했다.
미래 예술 현장에서 AI가 가질 위상에 대해 김 교수는 도구와 주체라는 이분법적 구분을 거부했다. 그는 “어떤 예술가에게 AI는 유용한 도구가 될 수도, 협력의 대상이 될 수도 있으며 자동 생성하는 창작의 주체가 될 수도 있다”며 “예술가가 인공지능을 바라보는 관점 자체가 작업의 중요한 출발점이자 다양성으로 인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개방적인 태도는 기존 예술 장르를 확장하거나 우리가 아직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형태의 예술을 탄생시키는 동력이 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특히 김 교수는 AI와의 작업을 통해 ‘시는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되찾게 됐다고 역설했다. 그는 “인공지능 작업을 하면서 느끼는 것은 그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 결국 인간을 향하고 있다는 것이다”라며 “시는 뭘까, 춤은 뭘까, 예술은 뭘까 하는 질문을 통해 우리는 당연히 알고 있다고 생각한 것들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다시 찾게 됐다”라고 말했다. AI와 작업을 하며 ‘우리가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 그에게는 가장 큰 수확이었다.
그는 인간과 기계의 관계를 설명하며 질베르 시몽동의 기술철학을 언급했다. 김 교수는 “‘인간과 기계적 대상의 상생적 공진화만이 미래의 문을 열리게 할 것’이라는 말에 공감한다”며 AI를 대하는 태도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질 수 있음을 시사했다. 이어 그는 “바둑을 이기고 지는 게임으로 볼 것인지, 수담(手談)으로 만들어가는 한 판의 예술로 볼 것인지에 따라 그 대상이 달라진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그는 기술이 고도화되는 시대에도 변하지 않을 인간 예술가의 고유한 가치에 대해 “예술가 자신이 살아온 데이터의 존재적 타당성을 무력화하고, 새롭게 그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과 시도가 중요한 가치로 지속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인간과 인공지능의 경계에서 제기된 물음들이 끊임없이 연쇄반응을 일으키며 예술의 가치를 되묻게 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현재 김 교수는 질문하는 AI ‘아이 퀘스천’, 시 쓰는 AI ‘시아’, 춤추는 AI ‘마디’ 등에 이어 촉각성에 기반해 소리정원을 만드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구상하며 예술의 영토를 넓혀가고 있다.
최소원기자 ssoni@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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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소설 완성에서 공저까지···확 달라진 창작 풍경
연출가이자 미디어아티스트인 김제민, AI 연구자인 김근형이 2018년에 결성한 미디어아트 그룹 ‘슬릿스코프’가 제작한 관객참여형 프로젝트 전시 ‘시간여행’. 관람객이 인터넷에 접속해 AI와 함께 시를 지은 후 전시장의 미디어월에 띄워볼 수 있다.
봄은 문턱에서 숨을 고르며겨울의 외투를 조용히 벗긴다얼었던 땅에 미세한 금이 가고그 틈으로 초록의 비밀이 웃는다바람은 꽃 이름을 하나씩 불러잎새의 귀에 속삭이고햇살은 시간을 풀어 놓아그림자마저 가벼워진다골목의 웅덩이에도 하늘이 피고발걸음마다 시작이 따라온다오늘은 어제보다 조금 더 따뜻해내 마음에도 새싹이 난다-생성형 AI의 ‘봄’ 주제 시인공지능(AI)이 문학 창작의 영역으로 본격 진입하며 문학 생태계 전반에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문장을 다듬는 보조 도구에 머물던 AI는 서사를 만들어내고, 때로는 작품의 공동 창작자로 호명된다. 이를 통해 창작의 주체는 누구인가, 작가성은 어디까지 유효한가라는 질문이 문학계 안팎에서 다시 제기되고 있다.시 쓰는 AI 시아가 지은 시를 바탕으로 제작된 슬릿스코프의 시극 공연 ‘파포스 2.0’ 무대.◆소설에서 시극까지, 확장되는 AI 문학 스펙트럼AI를 이용한 문학 실험의 대표적 사례로는 OpenAI의 GPT-3가 참여한 ‘원 더 로드(1 the Road)’ 프로젝트가 꼽힌다. 이 프로젝트는 작가 로스 굿윈(Ross Goodwin)이 2017년 미국 횡단 여행을 하며 수집한 차량 이동 경로, 위치 정보, 이미지, 주변 환경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AI에 입력하고 이를 바탕으로 AI가 즉흥적으로 텍스트를 생성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작가는 AI가 생성한 문장을 편집·구성해 최종 소설로 완성했다. 이 실험은 AI가 보조 도구를 넘어 창작 과정에 능동적으로 개입할 수 있음을 보여주며, ‘인간-기계 공저’라는 새로운 창작 모델을 제시했다.2021년 영국 런던의 영 빅(Young Vic) 극장에서는 GPT-3와 인간 창작진이 협업해 실시간으로 극본을 생성하는 실험적 연극 ‘AI’가 무대에 올랐다. 이 프로젝트에서 AI는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를 현대적인 말투로 재구성하거나 기묘한 캐릭터 설정을 즉석에서 만들어내는 등 인간 작가의 프롬프트에 따라 다양한 대사와 장면을 생성했다. 공연은 관객과 평론가들로부터 “기묘하면서도 매혹적인 실험”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기술이 예술적 창작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새로운 화두를 던졌다.AI 활용을 둘러싼 논쟁은 제도권 문학에서도 본격화됐다. 일본에서는 2024년 아쿠타가와상 수상 작가 구단 리에가 소설 ‘도쿄도 동정탑’ 집필 과정에서 챗GPT의 도움을 받았다고 밝혀 논란이 일었다. 작가의 고백 이후, AI 활용이 창작 윤리와 작가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두고 일본 문단 안팎에서 치열한 토론이 이어졌다. AI를 활용했다는 사실 자체보다, 이를 어디까지 ‘창작’으로 인정할 수 있는지가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시 창작 영역에서도 AI 실험은 더욱 급진적인 형태로 나타난다. 2022년 국내에서 출간된 시집 ‘시를 쓰는 이유’는 시를 쓰는 AI 모델 ‘시아(SIA)’를 전면에 내세운 프로젝트다. 시아는 카카오브레인이 개발한 초거대 언어 모델 KoGPT를 기반으로 1만3천여 편의 시를 학습해 시를 생성하도록 설계됐다. 주제어와 명령어를 입력하면 맥락을 이해해 즉각 시를 생산하는 구조다.이 프로젝트는 미디어아트 그룹 슬릿스코프와의 협업으로 완성됐다. 시집은 총 53편의 시로 구성되며, 디지털 언어의 기본 단위인 0과 1에서 착안해 1부 ‘공(0)’과 2부 ‘일(1)’로 나뉜다. ‘공’은 비존재와 무의미, 주관적 감정을, ‘일’은 존재와 의미, 객관적 사실을 시상으로 삼았다. 슬릿스코프는 AI가 생성한 방대한 결과물 가운데 최종 시를 선별하고 다듬는 역할을 맡았다. 이들은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 시집 수록작을 바탕으로 한 시극 공연 ‘파포스’도 선보이며 AI 문학을 공연 예술로 확장했다.문학 창작 영역에 AI가 적극 활용되며 창작의 주체는 누구인지, 작가성은 어디까지 유효한지에 대한 질문이 제기되고 있다. 생성형 AI ‘Chat GPT’가 생성한 이미지.◆창작인가 보조인가…AI가 흔드는 문학의 경계AI의 이용이 문학 창작 영역으로 빠르게 확산되면서 신춘문예와 각종 문학 공모전의 풍경도 달라지고 있다. 일반적인 글쓰기를 넘어 소설과 시 등 본격 창작 전반에 AI 활용이 늘어나자, 문학계 안팎에서는 작품 수 증가라는 변화와 함께 창작의 독창성과 작가 고유의 창의성을 어떻게 판단할 것인지를 둘러싼 논의도 이어지고 있다.최근 몇 년 사이 주요 신춘문예와 문학 공모전의 투고작 수는 뚜렷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문학계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단순한 관심 확대를 넘어 생성형 AI의 대중화와 맞물려 나타난 변화라는 해석을 내놓는다. AI를 활용하면 집필의 진입 장벽이 낮아지고, 아이디어 구상이나 문장 구성에 대한 부담이 줄어들면서 응모 자체가 쉬워졌다는 것이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등 외부 요인을 감안하더라도 최근 투고작 증가 속도는 예년과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는 평가다.이 같은 흐름 속에서 일부 신춘문예와 공모전에서는 응모 요강에 생성형 AI 활용을 제한하거나, AI 사용 사실이 확인될 경우 불이익을 줄 수 있다는 내용을 명시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AI 활용 여부를 둘러싼 기준을 제도적으로 정리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는 셈이다.창작 현장에서는 AI를 전면적인 대필자가 아닌 ‘보조 도구’로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실제로 신인 작가들 사이에서는 AI를 활용해 글의 방향성을 잡거나 초안 단계에서 문장의 흐름을 점검하는 방식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특히 첫 문장을 여는 과정이나 서사 구조를 설계하는 데 도움을 받는다는 목소리가 많다. AI가 제시하는 결과물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참고해 인간 작가가 선택과 수정의 과정을 거쳐 작품을 완성하는 방식이다.생성형 AI의 개입이 늘어나면서 공모전 운영을 둘러싼 새로운 쟁점도 떠오르고 있다. AI 활용 여부를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지, 그 경계를 어떻게 판단할 것인지에 대한 합의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향후에는 공모 작품의 저작권 귀속 문제나 창작 기여도를 둘러싼 논쟁이 불거질 가능성도 거론된다.전문가들은 AI 활용을 무조건 배제하기보다 창작 도구로서의 활용 가능성과 그에 따른 위험을 동시에 살펴야 한다고 지적한다. AI가 학습하는 데이터는 대부분 기존 문학 작품과 방대한 텍스트에 기반하고 있어 결과물이 원작자의 저작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점이 대표적이다. 또한 학습 데이터에 내재된 사회적 편향이나 특정 문화·이데올로기가 그대로 반영될 경우, 창작 결과물이 특정 가치관을 과도하게 재생산하거나 소외를 낳을 가능성도 있다.특히 영어권 중심의 데이터로 학습된 AI는 비서구권의 언어와 문화, 정서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해 문학 생태계의 다양성을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성별, 인종, 계층 등에 대한 편견이 무비판적으로 재현될 경우 문학 창작의 공정성과 포용성 역시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또한 전문가들은 AI가 인간의 감성이 만들어 내는 고유한 영역까지 완전히 대체하기는 어렵다고 보고 있다. AI가 방대한 텍스트 데이터를 학습해 문장과 서사를 만들어낼 수는 있지만, 인간의 삶에서 비롯된 감정과 경험, 기억의 층위까지 재현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문학은 개인의 체험과 시대적 맥락 속 축적된 감정의 언어라는 점에서 인간 작가의 감수성과 삶의 경험이 여전히 중요한 창작의 원천으로 남을 것이라는 분석이다.최소원기자 ssoni@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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