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탐구자와 걷는 도시건축 산책

[공간탐구자와 걷는 도시건축 산책 ①남선산업 연탄공장] 삶의 체취 가득한 추억 공간···소멸이 답일까

입력 2021.02.04. 18:25 김혜진 기자
무등일보·대한건축학회 공동 기획
48년 전 모습 그대로를 지니고 있는 남선산업 연탄공장 전경. 언뜻 폐건물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설비는 돌아가고 있다.

건축을 이해하면 도시는 예술이 된다. 건축물에는 보다 건강하고 아름다운 사회를 향한 건축가들의 마음이 담겨있다. 광주의 역사와 문화를 간직한 공간, 건축물들이 사라지며 도시가 생명력을 잃어가고 있다. 다른한편 보석같은 공간과 건축물들이 건축의 사회적 역할과 주변 공간, 시민들과 관계설졍을 고민하며 새로운 숨결을 모색하고있다. 무등일보가 대한건축학회와 함께 광주 도시공간의 가치와 역사, 문화사적 아름다움읊 찾아나서는 연중시리즈를 전개한다.<편집자 주>

약속한 오후 시간이 되었다. 필자는 48년 전 그곳으로 시간여행을 떠난다. 무심코 지나쳤던 광주, 목포 간 국도 1번 도로 송암공단 철도 뒤편에 낙후된 박공지붕 세 동이 보인다. 언뜻 폐허 건물로 인식될 수 있지만, 그 지붕은 광주의 역사를 품고 있다. 남선연탄 공장 정문에 다다랐을 때 잘못 찾아온 게 아닌지 의문이 들 정도로 대문은 검소하고 조용하다. 나를 맞아준 마당 한쪽에 자리한 오래된 고목 한그루, 어떤 일로 왔느냐며 묻는다. 이곳에선 그가 주인이다. 정문 우측에 있는 2층의 건물은 화려하지도 압도적이지도 않고 단아하여 오랜 세월이 흘렀음을 짐작하게 한다.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니 연통을 갖춘 연탄난로가 익숙한 장소 한 곳을 차지하고 있다.

초등학교 시절 교실 난로와 흡사하다. 물 주전자가 놓일 철근 선반도 있다. 행복한 기분이다. 공장 관계자 두 분이 기다렸다는 듯 밝은 미소와 함께 테이블로 나를 안내해준다. 내부로 향하는 길 마주한 것은 70~80년대 극장 앞 대형 영화 포스터를 연상시키는 조감도가 그려진 커다란 액자 하나. 벽면 한쪽을 가득 채우고 있다.

액자를 가리키며 "이것 보시면 됩니다. 48년 전 공장 그대로입니다." 정말 오래된 그림이다. 혹여 작가의 이름이라도 적혀있는지 여기저기 찾아봤지만 굳어버린 물감이 탈락한 흔적만 있을 뿐 조감도에 작가의 이름이 있을 리 없다. 이야기는 이어지고 노을이 지붕에 내려온다. 도시가 팽창할 때면 오랜 시간 축적된 소중한 가치는 흔적 없이 지워지고 추억은 기억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에 기록하고 보전하여야 함을 공감하며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공장 내부. 몇 십년 전에 시간이 멈춘 듯 고요한 모습이다. 연탄 소비량이 크게 줄어듦에 따라 공장은 매일 주문된 양만큼만 생산하고 멈춘다.

현장을 사진에 담고 싶은 욕심에 공장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내부를 본 순간 시간이 멈춰 버린 걸까. 몇십 년 전의 시간일까? 언제부터 기계는 멈췄을까? 활기찬 공장의 생산설비를 생각하고 들어갔는데, 고요함 그 자체이다. "내일 아침 7시쯤 오시면 기계 돌아가는 것 볼 수 있어요. 주문량이 완료되면 멈춰요, 주문한 만큼만 생산해요", "아! 네네 그럼 내일 아침에 재방문해도 될까요?", "작업복에 장화 신고 오셔야 들어갈 수 있어요"

다음 날 아침 설레는 마음으로 익숙한 대문을 지나 마당으로 들어간다. '그래 고목, 반가워 구면이지.' 컴컴한 공장 내부는 연탄을 찍어내는 윤전기 기계음과 뿌연 먼지로 가득 찼다. 천창을 통해 바닥까지 내려오는 햇살은 작은 먼지와 바람의 흐름, 그리고 근로자가 내 쉬는 숨결까지도 느끼게 했다.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컨베이어와 그 위로 쏟아져 나오는 까만 연탄은 전날부터 줄지어 대기하던 트럭 짐칸에 차곡차곡 옮겨 싣고 있다. 추억과 애환의 연탄 트럭은 오늘도 남도 방방곡곡 오지를 마다하지 않고 작은 온정을 담아 배달할 것이다. 필자의 기억 속에도 연탄은 애잔함과 행복으로 남아 있다. 어린 시절 무더운 여름을 지나 초가을이 되면 어김없이 어머니는 손님을 맞이하듯 연탄창고와 마당을 쓸고 정리하시느라 바쁘셨다. 대문이 활짝 열리면 연탄을 가득 실은 트럭이 마당에 들어오고 어린 동심은 한없이 들떠 가슴 한편에는 넉넉한 뭉클함이 느껴지곤 했다. 남선 가족들은 소외된 이웃들에게 사랑의 연탄 나누기로 이웃들과 함께하고 있다. 작은 나눔으로 이웃이 우리가 되고 공동체로 하나 되는 아름다운 노력이다.

지붕 아래 역사를 품은 장소, 1972년 도시의 외곽인 송암공단으로 자리를 옮긴 남선 연탄은 국민의 주 연료인 연탄을 생산하며 서민들의 삶 가까이서 묵묵히 함께하며 48년이 되었다. 백여 명이었던 남선 연탄의 가족은 십여 명만이 생산설비에 종사하며 그나마도 주문생산방식으로 여름철에는 생산을 멈출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때 강원도와 화순 등지에서 공급된 원료 탄을 나르던 철로는 이제 수요의 감소로 철로 이용이 원가절감에 도움이 되지 못한 실정이다.

광주역에서 효덕초에 이르는 철도는 철거되어 시민의 품에 푸른길 공원으로 돌아왔으나 송암공단에서 효천역에 이르는 구간은 아직도 존치되어 활용되고 있다. 도시가 팽창하여 외곽이던 송암공단은 도심 내 공단이 되었고 철도는 도시의 유기적 연속성을 단절시키며 정주성을 해치고 있다. 철로의 이용 빈도와 경제성이 떨어지면 철거되고 산업시설 또한, 또다시 외곽으로 밀려 나가거나 소멸할 수밖에 없다.

옛것을 모두 지우고 새로운 것으로 채워나가는 방법으로 환경을 개선할 수 있으나 시민의 기억에 내재된 감성까지 채워주기는 어렵다. 폐선부지는 시민에게 돌려지고 산업시설은 가치를 검토하여 지역의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는 도시재생으로 시민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시민에게 감동을 주는 도시공간으로 변화될 수 있을 것이다. 정명환 ㈜건축사사무소 지읒 대표

정명환 ㈜건축사사무소 지읒 대표

정명환

'도시 풍경은 시민의 공유 자산이다'를 모토로 건축의 공공성을 찾아나가는 건축가다. 사유의 건축과 집합체인 도시풍경, 시민의 자존감과 자기 정체성, 건강한 이웃 공동체와 공정한 도시시스템 등 향유하는 시민들의 자산으로서 풍경, 공공의 가치를 찾아가는 발걸음의 시작이다.

광주대 건축학 석사로 강남건축사사무소에서 실무를 시작했다. ㈜건축사사무소 지읒을 운영하며 광주시·전남도 공공건축가, 광주대 건축학부 겸임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남구 백운동에 푸른길 인근에 선보인 근린 상업 건축물 '플로팅매스'는 지역건축계에 화제를 불러온 대표건축물이다. 광주시 아름다운 공간상, 남구 건축상을 수상했다. 이밖에도 복합문화공간 어반브룩, 사옥 지읒컴퍼니도 광주시 건축상을 수상하는 등 작품성 있는 건축물로 주목을 받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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