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년 문학인생 정리 결산
자연친화적 삶 실천 주목
"인생을 정리한다는 생각에서 이삭을 줍는 마음으로 책을 쓰게 됐습니다. 돌이켜보면 소설이 저를 이끌었다고 생각합니다. 삶이 문학이었고 문학이 저의 삶 그 자체였죠. 앞으로도 자연친화적 삶을 살고 이것을 작품으로 써낼 생각입니다."
장흥 출신의 한국문학 대표 시인이자 소설가 한승원씨는 자신의 삶과 문학을 이같이 피력했다.
그가 최근 인생 단 한 권의 자서전 '산돌키우기'(문학동네刊)을 출간했다.
올해로 등단 55주년, 반세기가 넘도록 소설을 써온 작가이자, 어느덧 망구(望九)의 나이도 지나 한 세기에 가까운 삶을 살아낸 한 인간의 촘촘한 발자취가 이 한 권에 들어차 있다.한국문학 아버지라 불리기도 하는 한승원은 실제로 두 작가(한강, 한규호)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그가 살아온 인생은 한국 현대사의 격동기와 일치한다.
해방 이후 혼란 속에서 유년시절을 보냈고 군부독재와 5·18 등 굵직한 현대사를 겪었다.
남은 생을 오롯이 문학에 헌신하기 위해, 그는 고향인 장흥으로 되돌아가 '해산토굴'에 자신을 가두어 하루도 빠짐없이 글을 쓴다.
작가는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코린토스의 왕 시시포스와도 같은 구도자적 삶을 살며 이 책 서문에 "(고려장 전설 속) 아들의 등에 업혀 가는 어머니가 자기를 버리고 귀가할 아들이 길을 잃을까봐 돌아갈 길 굽이굽이에 솔잎을 따서 뿌리듯 이 글을 쓴다"고 밝힌다.
자서전은 한 작가의 태몽으로 시작한다. "하늘복숭아같이 탐스러운 유자를 주워 치마폭에" 담는 어머니의 꿈. 어머니는 그에게 여느 유자보다 크고 탐스러웠다는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말해주고, 작가는 이를 여느 사람과는 다른 특출한 삶을 살게 될 것이란 예언처럼 받아들인다.
어머니의 자식 사랑이 묻어나는 곰살궂은 태몽을 작가는 허투루 흘려듣지 않고, 그것을 마치 신탁이자 의지로 삼아 자신의 삶을 개척해나간다.
그는 문예반에 가입해 할아버지의 옛날이야기로만 길든 세계를 벗어나 한국 현대문학으로, 세계문학으로 도약한다. 감수성과 경험이 풍부할 수밖에 없었던 예외적 내력, 자신의 눈에 담긴 풍경을 언어로 표출하고자 했던 시심, 자신을 구원했던 이야기의 힘을 타인과 나누고자 했던 마음은 이윽고 그에게 문학이란 병으로 발현한다.
결국 그는 아버지를 거역하고, 삭발로 의지를 표현하며, 결국 설득해 서라벌예대(현 중앙대) 문예창작과에 입학 장차 시인 소설가가 되는 본격적인 궤도에 오른다.
교직을 부업으로 삼으며 신인 작가로 살던 시절, 작가에게 또 한번 변곡점이 될 시련이 찾아온다. 갓난아이를 여의는 일을 겪은 뒤 새로운 삶을 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결심에 이르게 된 그는 두번째 삭발을 감행하며 참회와 회심의 시간을 가지고, 상경해 전업작가로 살며 명작들을 쏟아낸다.
한승원의 문학세계는 자신의 표현을 빌리자면 '자연친화적 삶의 회귀'로 요약된다.
그가 작품 집필을 위해 고향 장흥에 다시 돌아온 것도 이같은 맥락이었다.
그는 "먹고 살기는 풍족해졌지만 세상과 시대가 악랄해졌다"며 "모두가 자본주의에 뿌리를 둔 물질적 욕망에만 사로잡혀 탐욕스런 삶을 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같은 맥락에서 "후배 작가들이 이같은 시대의 흐름을 포착해 인간성 회복과 자연친화적 삶의 회귀를 위한 작품들을 많이썼으면 하는 바람"이라며 "건강이 허락하는 한 작품 창작을 이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최민석기자 cms20@srb.co.kr
- 대장간에 남아 있는 우리의 모습 "누군가 기록해두지 않으면 영영 사라질 우리들의 이야기이다. 그것이 쌓여 이야기가 되고, 역사가 된다. 이 책의 귀함과 무게가 거기에 있다."한때 서울 을지로 7가는 대표 대장간 거리였다. 녹번동,수색, 구파발 등지에도 대장간이 많았다. 그랬던 대장간들이 1970∼80년대 급격한 산업구조 개편과 도시개발을 거치면서 사양길로 접어들었다.이제는 대장간이 모여 있는 곳을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대장간 셋이 붙어 있는 인천 도원동이 국내에 마지막 남은 대장간 거리라 할 수 있다.도원역 부근에 있는 인일철공소, 인천철공소, 인해대장간 중 맏형 격은 1938년생 최고령 대장장이 송종화 장인이 운영하는 인일철공소다.책 '대장간 이야기'는 사라져가는 우리 시대의 마지막 장인 대장장이와 대장간의 모든 것을 담았다.저자는 대장간 현장과 거기서 일하는 대장장이들, 대장간에서 만들어낸 연장들을 사용하는 우리 삶의 현장을 누빈다.역사 속 대장장이들이 어떻게 그려졌는지, 대장간이나 대장장이는 우리 문화에서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는지도 살핀다.저자는 또 대장간이 우리말의 아주 오랜 곳간임에 틀림 없다고 말한다.이 책에는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때 참전한 명나라군에 건넨 선물 중 휴대용 불붙이는 도구 부시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다.당시 이순신 장군이 부시를 일컬어 적었던 화금(火金)은 불을 일으키는 쇠라는 말이다. 부싯돌을 쳐서 불을 일으키는 쇳조각이 부시인데, 그 어원을 따져보면 불과 쇠가 합쳐져 이뤄진 말이다.이 책은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온 우리 대장간과 대장장이의 세계를 현장에서 관찰하고 정리한 결과물이다. 대장간과 관련한 거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대장간의 인문학적 향기를 다양한 관점에서 드러내고자 애썼다"고 말하는 저자는 대장간 현장과 거기서 일하는 대장장이들, 나아가 대장간에서 만들어낸 연장들을 사용하는 우리 삶의 현장 속을 누빈다. 또한 역사 속에서 대장장이들이 어떻게 그려졌는지, 대장간이나 대장장이는 우리 문화 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는지도 살핀다. 이 책은 우리나라 대장간 다섯 곳, 일본의 다네가시마 대장간 한 곳의 현장 모습을 보여준다. 인천의 도심 한복판에 있는 네 곳 등인데, 이제는 모두 70대 이상의 노인 혼자서 일한다. 젊은 누구도 대장간 일을 배우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노인 대장장이들이 일을 그만두면 그 대장간들은 영영 사라지고 말 것"이라고 저자는 아쉬워한다.뭐니 뭐니 해도 가장 고마운 건 이때껏 대장간 현장을 지켜내온 이 땅의 나이 드신 대장장이 장인들이다. 힘에 부칠 때마다 대장간 현장을 찾아 그분들의 망치질 소리를 들으며 힘을 얻고는 했다.대장장이와 도구, 그리고 쇠. 대장간의 3요소라고 할 수 있다. 대장장이가 있어야 쇠를 달구고 두들겨서 뭔가를 만들 수 있다. 원자재인 철물이 없어도 대장간은 돌아가지 않는다. 기술을 가진 대장장이나 원재료인 쇠 말고도 화로, 모루, 망치, 집게 같은 필수 도구가 있어야 한다. 대장간 일은 쇠를 불에 달구는 작업이 우선이다. 화로에는 풀무가 따라붙는다. 바람이 없으면 화로에 불길을 일으킬 수 없기 때문이다.대장간 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게 성냥이다. 충청도 등 일부 지역에서는 대장간을 승냥깐이라 한다. 이 승냥이라는 말이 성냥에서 나왔다.최민석기자 cms20@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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