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박물관·루브르·중앙박물관 망라
다양한 전통 전시 소비되는 장 펼쳐
시대 변화 설명 박물관 역할 설파
우리가 흔히 '보물창고' 아니면 '고물 창고'로 치부하는 박물관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엄청나게 다양하고 다채로운 이야깃거리가 숨어있다는 사실에 놀란다.
최근 나온 '어느 인류학자의 박물관 이야기'(민속원刊)는 인류학자인 최협 교수가 세계 여러 곳의 박물관들을 다니며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들추어내는 여정의 기록이다.
저자가 방문한 박물관은 영국 런던의 대영박물관과 같이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박물관은 물론, 홀로코스트박물관처럼 소수집단의 기억을 담은 특수박물관에 이르기까지 그 종류가 다채롭다.
지역적으로도 화려한 도시 파리의 루브르박물관에서 일본 시골변방의 작은 미술관까지 여러 구석을 포함시켰고, 박물관이 드러내 주는 이야기도 방문자가 국가의 거대 담론에 압도당하는 중국국가박물관의 경우에서부터 한 인디언의 슬픈 이야기를 담고 있는 어느 대학의 인류학박물관에 이르기까지 여러 갈래와 여러 층위의 사례를 넘나들며 곳곳에서 독자들에게 사색과 통찰을 위한 여백을 제공한다.
특히 그의 이번 저술은 일반독자들을 다양한 박물관의 세계로 안내하는 길잡이 역할을 해 줄 뿐만 아니라 박물관학이나 박물관과 관련이 있는 분야인 인류학, 고고학, 민속학, 미술사학 분야의 학도들에게도 유용한 자료를 충실히 담고 있다.
사회의 다원화 추세에 발맞춰 세계적으로 다양한 형태의 박물관이 설립되어왔다. 이는 박물관이 사라져가는 고물 창고가 아니라 앞으로도 새로운 모습으로 더욱 번창해 가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여러 형태의 새로운 박물관들은 박물관이 다양한 전통(heritage)들이 선택되고 전시되며 소비되는 복합적인 장임을 증명한다.
최근 박물관들은 박물관이라는 장을 통해 경제와 관광이 만나고, 도시와 지역의 정체성과 이미지의 구축이 이루어지며, 전시의 기술과 교육이 오락과 접합되는 양상이다.
박물관은 다가오는 미래에도 문화유산의 보존에 머물지 않고 더 나아가 시대의 변화를 나름대로 설명하고 해석하는 역할에 변함이 없을 것이라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이 책은 문학과 역사, 철학이 교양의 핵심이라는 전제 아래 시대적 흐름에 부응해 새로운 이야기와 성찰을 담은 '문화와 역사를 담다' 시리즈 중 하나로 출간됐다.
인문학이 교양의 기초이고, 인문학의 핵심은 역사라는 측면에서 다양한 시각과 형식으로 역사이야기를 담아냈다는 점에서 주목되고 있다.
독자들은 이를 통해 역사와 문화를 좀더 흥미롭고, 깊이 있게 만날 수 있는 계기가 되고, 문학적인 감수성, 역사에서 얻는 지혜, 깊이 있는 성찰을 통해 일상과 사회생활에서 마주치는 문제들에 해답을 찾을 수 있는 기회를 접할 것으로 기대된다.
최협 교수는 서울대 문리과대학 고고인류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신시내티대학에서 인류학 석사, 켄터키대학에서 인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전남대 인류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하버드-옌칭연구소 방문학자, 스미스소니언연구소와 버클리소재 캘리포니아대학에서 풀브라이트 선임연구원을 역임했다.
한국문화인류학회 회장, 대통령자문 21세기위원회 위원,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했다. 주요 저서로는 '부시맨과 레비스트로스', '다민족사회, 소수민족, 코리안 아메리칸', '판자촌 일기', '호남사회의 이해'(공저) 등이 있다.
최민석기자 cms20@mdilbo.com
- 시와 그림으로 피어난 꽃의 절규와 함성 시는 시인의 얼굴이자 내면이다.시인은 시를 통해 속내를 털어놓고 표정에 담지 못한 언어를 끄집어낸다.박노식 시인의 시도 이와 다르지 않다.박노식 시인이 최근 신작시집을 낸 데 이어 올봄을 넘기지 않고 시화집을 내놓았다.그의 첫 시화집 '기다림은 쓴 약처럼 입술을 깨무는 일'(달아실 刊)을 펴냈다.박노식 시인은 등단 후 9년 동안 5권의 시집을 냈고, 이번에 첫 시화집을 내는 것이니 부지런히 시를 쓴 셈이다. 그 원동력이 어디에 있냐고 묻자, "세상과 싸우기 위해, 밥벌이를 위해 삼십여 년을 접어두어야 했던 만큼 '시'를 미치도록 그리워했다"며 "남보다 늦은 나이에 꿈을 향해 걸음을 내디딘 만큼 더 치열하게 시 창작에 몰두하였다"라고 답했다.시화집 '기다림은 쓴 약처럼 입술을 깨무는 일'에는 모두 37편의 시가 실렸는데, 각 편마다 꽃말을 제목으로 하고 부제로 꽃 이름을 달았다. 각 시편마다 서양화가 김상연의 그림이 곁들여져 있어, 꽃시(詩)와 꽃말과 꽃그림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시화집이라고 할 수 있다.가령 "자기애"라는 꽃말을 지닌 "수선화"를 시인은 이렇게 시로 적고 있다."마주 앉아서 그대의 말끝을 따라갈 때면 어느새 저녁이 오고 나의 눈빛은 강 하구에 이릅니다/가만히 보면 그대 얼굴이 우물 같아서 달이 뜨고 거기에 내 얼굴도 떠 있습니다/그대는 흰 꽃잎으로 나는 노란 꽃잎으로 다시 태어나서 우리는 지금 서로의 운명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자기애-수선화' 전문)"모든 슬픔이 사라진다"라는 꽃말을 지닌 "미선나무꽃"은 또 이렇게 시로 풀어냈다."아득한 기억처럼 슬퍼지는 시간들이 있지요/ 폭발 직전의 꽃망울은 순수의 가지에 놓여서 눈을 감아요/ 지난 노래를 부르지 말아요/ 한 장 꽃잎이 강물에 떠내려간들 누가 울어주나요/ 눈물은 온몸에 있어요/ 온몸이 울어요/ 당신이 다시 돌아와 내 눈물의 노래가 되었어요('모든 슬픔이 사라진다-미선나무꽃' 전문)독자들은 시화집을 통해 37개의 꽃과 꽃말을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다. 그런데 꽃말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사람들이 자신의 삶과 이야기를 꽃에 투영한 결과이며 오랜 세월 인구에 회자되면서 꽃말로 굳어진 것이 아닐까 싶다.시인이 이번 시화집의 부제를 '꽃말을 시로 읊은 가슴 저민 자화상'으로 명명했다. 시인이 정작 쓰고 싶었던 것은 꽃이 아니라 꽃 너머, 꽃말이 아니라 꽃말 너머, 그러니까 우리 모두의 자화상인 셈이다.박노식 시인은 이번 시화집 출간에 맞춰 '꽃말시'를 화가 김상연이 그림으로 표현해 낸 특별한 시화전을 연다.시화전은 광주시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에서 5월2~14일까지 박노식 시인의 첫 시화집 '기다림은 쓴 약처럼 입술을 깨무는 일' 출판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마련됐다.전시회 첫날인 5월 2일 오후 6시 오프닝과 출판기념회를 함께할 예정이다.김상연 화가는 "기존의 시화와는 전혀 다른 느낌의 그림, 화가의 눈으로 시를 재해석한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며 "시화집에 인쇄된 그림과 원화가 주는 느낌은 또 다른 것이니 전시회에 오셔서 직접 감상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박노식 시인은 "'꽃말시'는 처음부터 시화집을 목적으로 구상했었다. 시집 한 권 분량의 60여 편을 염두에 두었으나 시화집으로 묶기에는 다소 벅찰 것이라며 그가 말렸다. 그래서 37편에 머물렀으나 꽃만 남고 훗날 그는 구름이 되어버렸다"며 "더는 가슴 저미는 일이 없길 바라므로 나는 죽은 사람처럼 이 시화집을 열어보지 못할 것이다"고 말했다.시인은 차마 더 이상 열어보지 못하겠다고 하니 시화집을 열어 꽃말시를 읽는 일은 우리들의 몫이다..박노식 시인은 광주에서 태어나 조선대 국문과를 나와 지난 2015년 '유심' 신인상을 받고 등단했다. 그동안 시집 '고개 숙인 모든 것' '시인은 외톨이처럼' '마음 밖의 풍경'을 펴냈으며, 화순 한천면 오지에서 시 창작에 몰두하고 있다. 지난 2018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을 수혜했다. 현재 광주 동구 '시인 문병란의 집'큐레이터로 활동 중이다.김상연 화가는 화순에서 태어나 전남대와 중국 미술대학원을 거쳐 현대미술을 특유의 기법으로 회화와 설치, 미디어, 판화 등 다양한 장르로 표현, 주목을 받고 있다.최민석기자 cms20@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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