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 지배 허위의식 비판
자유의 폭력 전환 위험성 논증
다원주의 수용 행복 실현 모색
신자유주의 시대가 끝나고 인터레그넘의 시기를 겪고 있는 인류의 미래와 자유가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박구용 전남대 철학과 교수가 최근 '자유의 폭력'(길刊)을 펴냈다.
2008년 금융위기와 함께 1970년대부터 40년 가까이 시대정신의 지위를 누렸던 신자유주의가 뇌사 상태에 빠졌다. 그리고 2020년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과 함께 시대정신으로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사망 선고가 내려졌다. 인간에 의한 자연의 약탈과 파괴, 경제적 불평등과 정치적 양극화, 독점 강화와 성장 둔화를 야기했거나 혹은 기여한 것으로 신자유주의가 지목되었다. 하나의 시대정신이 생명을 다한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새로운 시대정신이 태어난 것도 아니다.
지금 인류는 최고 권력의 공백 상태, 시대정신의 부재 기간, 다시 말해 궐위의 시간인 인터레그넘(interregnum) 상황에 빠져 있다. 신자유주의라는 낡은 이념은 해체되었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대체할 새로운 이념이 등장하지도 않았다.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의 말처럼 "위기는 정확히 낡은 것이 죽었는데 새로운 것이 태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구성된다. 이 인터레그넘 속에 매우 다양한 병적 증상이 나타난다". 인터레그넘의 위기는 이미 죽은 것이 무덤으로 가지 않고 산 것처럼 활보하고 다닌다는 사실에 있다. 좀비가 된 신자유주의, 곧 좀비-자유주의가 부활의 가능성을 찾아 떠돌고 있다.
인터레그넘은 위기의 공간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정치적 공간이다. 이 열린 공간에서 새로운 시대정신을 찾아가는 담론이 생성되어야 한다. 자유의 이념과 폭력은 이 담론을 형성하는 중요한 하나의 주제일 수 있다. 미래의 시대정신이 요구할 자유는 그것의 최대화가 폭력의 최소화를 동반해야 한다는 요구에 부응해야만 한다. 이 요구에 맞추어 저자는 자유 담론을 재구성했다.
책에서 저자는 사회철학과 정치철학의 경계에서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허위의식을 비판하기 위한 실천철학의 규범적 모델로서 '우리 안의 타자 철학'을 제안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는 우리주의 철학과 세계주의 철학이 갖는 위험성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적 사유를 '우리 안의 타자'에서 찾고자 한다. 상호 주관성과 탈주관성의 경계에 있는 '우리 안의 타자' 철학을 통해 이 책은 현재 한국 사회에서 사회, 정치 철학의 핵심 의제를 중심으로 "자유의 최대화와 폭력의 최소화"를 동시에 성취할 수 있는 길을 찾아간다.
제1부에서 저자는 세계주의와 우리주의 속에 은폐된 경제제국주의와 도덕제국주의 사이의 도덕적 화해 상태에서는 자유가 폭력으로 전환될 위험이 크다는 가설을 논증하면서 사회 바판의 규범적 척도로 '의사소통적 자유'와 '상호 주관적 소통'의 정당화 가능성을 탐구한다.
제2부에서는 자유주의의 철학적 뿌리를 탐색하는 일에 먼저 집중한다. 특히 토머스 홉스, 존 로크, 데이비드 흄, 존 스튜어트 밀 등을 집중 분석하는데, 이들의 철학을 관통하는 자유는 자연주의에서 길어 올린 이념이면서 동시에 개인의 사적 영역 보호에 우선성을 두는 권리임을 밝힌다. 분명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모두 공적 영역에서 행사되는 자유, 곧 공적 자율성에 큰 가치를 두지 않았다는 점에서 매우 유사하다. 그 까닭을 찾아가기 위해 저자는 제5장에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유와 정치체제에 대한 입장을 정리한다.
제3부에서는 다원화와 세계화가 정점에 이른 상황에서 폭력을 최소화하는 자유의 최대화 가능성을 탐색한다. 무엇보다 다원주의를 사실로서 받아들이면서 세계시민이 공동의 자유와 평화, 그리고 행복을 실현할 수 있는 길을 찾는다.
마지막 제4부에서는 인권과 복지, 그리고 자치의 철학적 정당화 문제를 다룬다. 자유는 주관적이면서 보편적인 권리이다. 민주적 법치국가의 최소 권리로서 자유는 한 사람의 주체가 자신의 의지에 따라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 주관적 권리이다. 주관적 행동의 자유는 다른 사람의 동의와 승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따라서 주체는 주관적 행동의 자유에 대해 책임 부담을 가질 필요가 없다.
박구용 교수는 전남대 철학과를 나와 독일 뷔르츠부르크대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광주시민자유대학에서 세계시민적 관점으로 학문과 예술을 연구 교육하고 있으며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본부장으로 다원적 학문성장과 건강한 학술정책 방향을 모색했다.
주요 저서로 '우리 안의 타자', '부정의 역사철학', '문파, 새로운 주권자의 이상한 출현', '프랑크푸르트학파의 테제들'(공저), 번역서로 '정신 철학', '도구적 이성 비판' 등이 있으며 '폭력의 최소화, 자유의 최대화'를 학문연구와 사회적 실천의 주된 동력으로 삼고 있다.
최민석기자 cms20@mdilbo.com
- 대장간에 남아 있는 우리의 모습 "누군가 기록해두지 않으면 영영 사라질 우리들의 이야기이다. 그것이 쌓여 이야기가 되고, 역사가 된다. 이 책의 귀함과 무게가 거기에 있다."한때 서울 을지로 7가는 대표 대장간 거리였다. 녹번동,수색, 구파발 등지에도 대장간이 많았다. 그랬던 대장간들이 1970∼80년대 급격한 산업구조 개편과 도시개발을 거치면서 사양길로 접어들었다.이제는 대장간이 모여 있는 곳을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대장간 셋이 붙어 있는 인천 도원동이 국내에 마지막 남은 대장간 거리라 할 수 있다.도원역 부근에 있는 인일철공소, 인천철공소, 인해대장간 중 맏형 격은 1938년생 최고령 대장장이 송종화 장인이 운영하는 인일철공소다.책 '대장간 이야기'는 사라져가는 우리 시대의 마지막 장인 대장장이와 대장간의 모든 것을 담았다.저자는 대장간 현장과 거기서 일하는 대장장이들, 대장간에서 만들어낸 연장들을 사용하는 우리 삶의 현장을 누빈다.역사 속 대장장이들이 어떻게 그려졌는지, 대장간이나 대장장이는 우리 문화에서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는지도 살핀다.저자는 또 대장간이 우리말의 아주 오랜 곳간임에 틀림 없다고 말한다.이 책에는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때 참전한 명나라군에 건넨 선물 중 휴대용 불붙이는 도구 부시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다.당시 이순신 장군이 부시를 일컬어 적었던 화금(火金)은 불을 일으키는 쇠라는 말이다. 부싯돌을 쳐서 불을 일으키는 쇳조각이 부시인데, 그 어원을 따져보면 불과 쇠가 합쳐져 이뤄진 말이다.이 책은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온 우리 대장간과 대장장이의 세계를 현장에서 관찰하고 정리한 결과물이다. 대장간과 관련한 거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대장간의 인문학적 향기를 다양한 관점에서 드러내고자 애썼다"고 말하는 저자는 대장간 현장과 거기서 일하는 대장장이들, 나아가 대장간에서 만들어낸 연장들을 사용하는 우리 삶의 현장 속을 누빈다. 또한 역사 속에서 대장장이들이 어떻게 그려졌는지, 대장간이나 대장장이는 우리 문화 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는지도 살핀다. 이 책은 우리나라 대장간 다섯 곳, 일본의 다네가시마 대장간 한 곳의 현장 모습을 보여준다. 인천의 도심 한복판에 있는 네 곳 등인데, 이제는 모두 70대 이상의 노인 혼자서 일한다. 젊은 누구도 대장간 일을 배우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노인 대장장이들이 일을 그만두면 그 대장간들은 영영 사라지고 말 것"이라고 저자는 아쉬워한다.뭐니 뭐니 해도 가장 고마운 건 이때껏 대장간 현장을 지켜내온 이 땅의 나이 드신 대장장이 장인들이다. 힘에 부칠 때마다 대장간 현장을 찾아 그분들의 망치질 소리를 들으며 힘을 얻고는 했다.대장장이와 도구, 그리고 쇠. 대장간의 3요소라고 할 수 있다. 대장장이가 있어야 쇠를 달구고 두들겨서 뭔가를 만들 수 있다. 원자재인 철물이 없어도 대장간은 돌아가지 않는다. 기술을 가진 대장장이나 원재료인 쇠 말고도 화로, 모루, 망치, 집게 같은 필수 도구가 있어야 한다. 대장간 일은 쇠를 불에 달구는 작업이 우선이다. 화로에는 풀무가 따라붙는다. 바람이 없으면 화로에 불길을 일으킬 수 없기 때문이다.대장간 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게 성냥이다. 충청도 등 일부 지역에서는 대장간을 승냥깐이라 한다. 이 승냥이라는 말이 성냥에서 나왔다.최민석기자 cms20@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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