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공된 신화···세상은 정말 나아지고 있을까?

입력 2024.08.02. 11:00 최소원 기자
격차
제이슨 히켈 지음, 김승진 옮김|아를|464쪽
빈곤과 불평등 비롯된 곳 조명
'1%'위한 자본주의 타파하다
데이터와 독창적 접근 기반으로
글로벌 경제 체제 민낯 파헤쳐
아르헨티나의 지난 1월 빈곤율이 20년 만에 최악을 기록한 가운데,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외곽의 한 무료급식소 밖에서 한 남성이 반려견과 함께 식사 배급을 기다리고 있다. 뉴시스

'길에서 노숙인을 보면 그의 불행에 책임이 있는 사람은 그 사람 자신일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이 가장 쉽다. 게으르고 의지가 약해서 학교에서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거나 직장에서 충분히 노력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 그는 대형 은행들이 일으킨 무분별한 주택 시장 투기로 집을 잃었을지 모른다. 금융 위기로 연금이 증발해버렸을지도 모른다. 노동자 보호법이 없는 상황에서 부당한 해고의 희생자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미국 뉴욕 센트럴 파크에서 시민들이 건설 중인 세계 최고(472m) 주거용 아파트 '센트럴파크 타워'를 배경으로 걸어가고 있다. 뉴시스

'우리의 꿈은 빈곤이 없는 세상입니다' 유엔 협력 기구이자 국제 금융기관으로 미국 워싱턴 D.C.에 위치한 세계은행 본부의 로비에 붙어 있는 슬로건이다. 세계은행과 함께 설립된 국제통화기금(IMF)의 공식적인 임무도 '세계의 경제적 불안정을 줄이는' 것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 유엔을 비롯한 이 국제기구들이 펴내는 연례 보고서에는 '개발', '발전', '원조', '성장' 같은 표현이 각종 통계 데이터들과 함께 들어 차 있고 '선진국의 개발 노력 덕분에 빈곤과 기아 인구가 줄어들고 있으며, 세상은 점점 나아지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파하는 데 여념이 없다. 그리고 이는 또다시 언론과 학자, 유명 인사 들을 통해서 '안심이 되게 하는 뉴스'로 대중에게 전파된다. 그들의 말처럼 세상은 정말 나아지고 있을까? 빈곤과 기아 인구가 줄어들고, 불평등은 해소되고 있을까?

신진 경제인류학자인 저자는 책에서 세상이 점점 나아지고 있다는 주장이 미국과 유럽 선진국의 입맛에 맞게(대표적으로 국제 빈곤선을 미세하게 조정하는 식으로) 가공된 신화라고 지적한다. 그렇다면 진실은 무엇인가? 세계 인구의 60%가 넘는 약 43억 명이 인간의 역량이 훼손될 정도의 빈곤 속에서 불안정한 생계를 이어가는 반면에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단 8명의 부는 하위 인구 절반이 소유한 부를 모두 합한 것보다 많다. 이것이 진실이며, 이러한 극단적 불평등은 우리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특정한 종류의 경제 체제, 즉 '자본주의'가 일으킨 결과다.

이뿐만이 아니다. 겨우 500년 전에 서구 유럽에서 생겨난 자본주의 체제와 산업 문명은 극심한 환경 파괴와 기후의 복수를 불러일으켰다. 그 결과 오늘날 인류는 '여섯 번째 대멸종'에 직면한 시대를 살고 있다. 이처럼 전례 없는 극단적 불평등과 기후 위기 앞에서 '실제로 효과를 낼 진짜 해법을 찾고 미래를 향한 길을 상상'하려면 세상이 왜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구성됐는지 그 근원을 살펴봐야 한다. 이에 단단한 역사적, 지리적 맥락에 대한 인식을 기초로 삼아 풍부한 데이터와 여러 담론들을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벼려냄으로써 대담하면서도 현실적인 해법을 제시한다.

현상에 대한 인과관계만을 분석한다면 '가난한 나라들은 원래 가난해서 가난한 것이다'라는 답이 영원히 반복될 것이다. 빈곤과 불평등과 기후 위기가 선진국의 막대한 원조 예산 및 호혜적인 개발 노력에 의해 극복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 역시 현실과 무관하게(또는 현실을 더욱 악화시키면서) 무한 반복될 것이다. 저자는 그 이야기들의 이면에 감추어져 있는 '더 큰 진실'을 정확하게 볼 수 있도록 '역사'라는 차원을 가져온다. 그럼으로써 훨씬 더 방대하고 복잡하며 심각한 함의마저 지닌 빈곤과 불평등의 기원, 그 이면에서 드러내놓고 때로는 은밀하게 작동해온 자본주의 경제 체제의 민낯을 날카롭게 파헤친다.

최소원기자 ssoni@mdilbo.com

# 연관뉴스
슬퍼요
0
후속기사 원해요
0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광주・전남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 교통정보, 미담 등 소소한 이야기들까지 다양한 사연과 영상·사진 등을 제보받습니다.
메일 mdilbo@mdilbo.com전화 062-606-7700카카오톡 플러스친구 ''무등일보' '

댓글0
0/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