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만 신작…삶의 가치 질문
세속에 물들지 않는 길 노래해

'시인아/그대가 진정 시를 쓰려거든/지상의 모든 시를/새벽 눈물 메마른 소금호수에/다 흘려버린 후//가난한 세월에도 물들지 않는/물염勿染의 시를 새기시라.'('물염의 시')
광주 출신의 나종영 시인이 시집 '물염의 노래'(문학들)를 발간했다. 지난 2001년 발간한 '나는 상처를 사랑했네' 이후 23년 만의 신작이다. 이번 시집에는 '물염' 사상을 기반으로 다양한 사물과 교감하며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삶의 궁극적인 가치가 무엇인지 질문을 던진다.
'물염'은 '세속에 물들지 말라'는 뜻이다. 고희에 이른 시인이 어느 날 전남 화순군에 위치한 정자 '물염정'에 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는 세상에서 '세속에 물들지 않는' 참다운 길을 물으며 노래했다.
송정순(1521~1584)이 지은 물염정은 사화와 거듭되는 죽음, 유배의 시대에 지어져 그가 무도한 세상을 뒤로하고 은둔한 곳이다. 하서 김인후(1510~1560)는 18세에 장성에서 물염정을 오가며 기묘사화로 유배 온 신재 최산두(1483~1536)를 사사하기도 했다.
'물염의 노래'는 총 89편의 시가 4부로 구성돼 실렸다. 1부 '물염의 시', 2부 '편백 숲에 들다', 3부 '무등산은 어디서 보아도', 4부 '어머니와 초승달'이 그것이다.
시인은 '시인의 말'을 통해 "그동안 나는 그냥 시를 쓰는 사람보다도 한 사람 '시인'으로서 시대를 살아오기를 염원해 왔다"며 "사물과 사람에 대한 사랑, 겸손, 겸애와 더물어 이 훼절의 시절에 세속에 물들지 않는 시인이 되고 싶었다"고 전했다.
임동확 시인은 해설에서 "기존의 질서가 동요되거나 일순간 정체성을 잃고 정지되는 위기 상황 속에서 당대의 모순을 해결하고 거기서 맞서 분노하거나 저항하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철인의 선비상의 추구와 깊게 연결되어 있다"고 밝혔다.

1954년 광주에서 태어난 나종영 시인은 전남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1981년 창작과비평사에 13인 신작 시집 '우리들의 그리움은'으로 등단했다. 1980년대 초 광주민중문화연구회와 도서출판 광주의 창립에 주도적으로 관여했으며 5·18민중항쟁 직후 결성된 '5월시' 동인 중 한 명이기도 하다. 광주전남작가회의의 출범을 이끌고 한국작가회의 부이사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조태일시인기념사업회 부이사장으로 있다.
한편 시인은 오는 26일 오후 4시 5·18민주화운동 기록관에서 출판기념회를 열고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갖는다.
최소원기자 ssoni@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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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선으로 그려낸 삶과 추억 384 시는 감성의 산물이다. 이성과 논리의 언어가 아니다.그래서 시는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읽힐 때 진정한 의미를 획득한다.김영자 시인이 최근 시집 '시꽃 물들다'(시와사람刊)를 펴냈다.이번 시집에는 감탄을 자아내는 새로운 해석과 착상이 돋보이는 시편들이 수록돼 있다.시인은 모서리 없는 향기처럼 함박웃음으로 너울거리는 모란을 보여 아슬히 푸른 울음소리를 내기도 하며 홀연히 춤추다 지는 절망을 노래하기도 한다.그는 낯설게 하기 기법을 바탕에 갈아 싱그런 표현들을 버무렸다."먼동 트이는 아침/ 눈부신 햇살 주워담은 개천가/ 물비늘의 눈빛 반짝거린다// 왁자한 소문 울컥이는 어둠 닦고/ 너스레한 노점 아지매들의 혈색 좋은 웃음소리삼백육십오 일 좌판 깔고 흥정한다// 줄줄이 엮은 부양가족 품기 위해/ 불구덩이라도 뛰어들 수 있다는/ 일념 하나로/ 시커멓게 멍든 주먹 가슴으로/ 애환의 물살 건넌다// 생채기로 찢긴 날카로운 비수/ 아린 침묵 꿰매며/ 도마 위에 납작 엎드린 오후/ 삐걱거리는 허리 통증 할퀴고 간/ 파닥이는 은빛 나래짓/ 황금빛 노을 떨이한다// 세느강이라 불리는 양동 다리 옆/ 역사 깊은 광주의 푸른 기상 안고/ 무등의 젖줄기로 태어난/ 화이트칼라 미모와 흰 베레모 뽐내는/ 중앙여고// 양동 다리 밑/ 떡볶이와 오징어 튀김도/ 덩달아 튀어올라/ 발랄한 안색으로 무더기 수다 떤다// 철썩이던 광주천 계곡/ 지워도 지워지지 않는/ 버들강아지 빛으로 남아 있다."('추억의 양동시장' 전문)예나 지금이나 광주 양동시장은 사람과 상인들로 북적댄다. 그 시절 양동시장은 광주의 중심이며 정이 묻어나던 곳이었다. 힘겨운 나날을 보내던 이들도 양동시장의 활기와 생명력에서 힘을 얻었다. 그리고 그 풍경은 추억이 됐고 아련한 시간 속에서도 기억으로 자리해 있다.박덕은 시인은 "사실 시는 주제를 노출할수록 시의 특질에서 점점 더 멀어진다"며 "김영자 시인의 시들은 이러한 시의 특질을 잘 고루 구비하고 있어서 한층 돋보인다"고 평했다.김영자 시인은 "살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라며 "자연 안에 깃든 신성을 벗삼아 더 이상 헤매일 것 없는 내 안의 나를 만나 깊이 잠든 시심을 깨운다"고 말했다.그는 '현대문예' 추천신인상 수상으로 등단, 한국여성문학대전 최우수상, 독도문학상, 빛창문학상 우수상 수상, 광주문인협회 이사와 광주시인협회 이사, 한실문예창작회원, 둥그런문학회 회장으로 활동 중이다.최민석기자 cms20@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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