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에 휘몰하진 고독과 쓸쓸함
노모와 함께 보낸 순간의 기록들
일상 소란 속에서 보이는 께달음

이광이 작가는 언제부터인가 시작된 탈모로 머리카락이 절반 밖에 남지 않았다고 자신을 '오할스님', 호를 '반승(半僧)'이라 불렀다.
그의 글은 예리한 통찰력과 능청스러운 찰진 단어들이 돋보인다.
무등일보 기자 출신인 이광이 작가가 산문집 '행복은 발가락 사이로'(삐삐북스刊)를 펴냈다.
이 산문집은 한겨레 '삶의 창'에 연재하며 인기를 끌었던 작가의 글과 10여 년 동안 써 놓은 글들을 한데 모은 결과물이다. 삶의 희로애락을 종일 열심히 뛰어다닌 양말 속 발가락의 구릿함으로 승화시키고 '탱탱하던 삶의 테두리가 서서히 오그라드는 그 궁한 틈'을 구성진 언어로 맛깔나게 풀어냈다.
작가는 인생의 늦가을 중년의 마음에 쓰나미처럼 휘몰아친 고독과 쓸쓸함을 자연스럽게 펼쳐 보인다. 또 본가로 내려가 인생의 황혼기를 보내는 노모와 함께하며 보고 듣고 느끼고 깨달은 순간의 다정한 기록이기도 하다.
길이도 사연도 제각각인 글은 포복절도할 정도로 웃기고 어처구니 없게 허망하다. 밤새 베갯잇에 안녕을 고하고 야멸차게 떠나버린 머리카락들을 향한 '헤어 소수자'의 애달픈 몸부림처럼 뻔뻔스럽고, 노인들의 집 문고리에 걸려 매일매일 안부를 묻는 야쿠르트 담은 비닐봉지처럼 다정하다. 과거와 현재, 인간의 나약함과 힘, 유머와 엄숙함 사이의 섬세한 균형을 탐구하는 이야기들은 가벼우면서도 심오하고, 단순하면서도 풍성하다.
삶의 순간들은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종종 서둘러 지나가 버리고 만다. 이 책은 은행잎이 바스락거리는 소리, 노화에 대한 고요한 성찰 등 사소하지만 아름다운 순간 속으로 읽는 이를 이끈다.
작가는 일상의 소란 속에서 잠시 멈춰 서면, 비로소 보이는 찰나의 깨달음을 태연하게 건넨다.

그는 행복이란 '퇴근하고 소주 한 잔 하는 것, 밥 먹고 담배 한 대 깊게 피우는 것, 그리고 아름다운 어떤 것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말한다. 일상의 소란 속에서 잠시 멈춰 서면, 그제야 보이는 찰나의 순간을 성찰하도록 한다. 그러고는 그 순간 느낀 위안에 '행복'이라는 이름을 붙여 준다.
불교에서 육바라밀은 '깨달음의 세계에 이르는 길'이라는 뜻이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초월의 경지로 가는 수행 방법이라고 하는데, 삶 자체가 어떤 경지에 이르는 수행 과정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문득 베토벤의 웅장한 연주를 들으며 이미자의 노래를 흥얼거린다면, 이것이 바로 어떤 경지에 이르는 순간이 아닐까. 뻘뻘뻘뻘 사방으로 도망치는 펄 밭의 칠게처럼 우리네 삶 역시 종잡을 수 없이 사방으로 흩어지고 만다. 그 가운데 누군가는 그냥 지나쳤을 소소한 일상이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와 감칠맛 나는 문장이 빚어낸 기막힌 이야기로 다시 태어났다.
책 끝에 수록된 글 '엄니 시집'에는 지난 2022년 3월 타계한 모친 최봉희 시인에 대한 일화와 그리움을 담았다.
이광이 작가는 4·16세월호 참사 이후 생전 어머니가 쓴 시들을 모아 시집 '5·18 엄마가 4·16 아들에게'를 펴낸 사연을 전한다.
'세월호 참사 1년 기록 시집'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시집은 4·16을 잊지 말자는 뜻을 담아 가격을 4천160원으로 정해 세상에 나왔다.
이광이 작가는 "글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벌거벗은 몸으로 써야 하기 때문에 그 일은 필연적으로 성찰이며 성찰이 덜 익었을 때는 부끄러움일 것"이라며 "성찰은 시계의 초침처럼 늘 새롭고 끝이 없는 것이라 그것으로 부끄러움을 가리기는 어려운 일"이라고 밝혔다.
그는 무등일보 공채 3기 기자를 거쳐 현재 한겨레신문에 '이광이 잡녑잡상'을 연재 중이다. 동화 '엄마, 왜 피아노 배워야 돼요?', 책 '절절시시'를 썼다.
최민석기자 cms20@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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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시조로 펼쳐낸 삶의 사유와 서정 글은 삶의 시간과 풍경을 펼쳐내는 캔버스이다.경제학자에 이어 시인으로 인생 제2막을 채우고 있는 정언(柾彦) 손형섭씨가 제2시조집 '새벽'(도서출판 서석刊)을 펴냈다.그는 지난 2023년 '월간문학' 신인상 등당으로 시조시인의 이름을 얻고 지난해 5월 첫 시조집 '눈 내리는 저녁'을 펴낸 뒤 1년 만에 두 번째 시조집을 발표했다.이번 시조집에는는 단시조(短時調)만 100편이 실렸다.1부 '첫차', 2부 '고향의 강', 3부 '가을 산책', 4부 '첫눈' 등 봄, 여름, 가을, 겨울 등 4계절에 관해 각각 17편씩 68편을 수록했다. 5부 '인연'과 6부 '전라도여'에는 삶과 시대에 대한 32편을 담았다."아련히 들려오는/ 조선 닭 울음소리// 눈곱 낀 찬바람이/ 창문을 두드린다// 새벽은/ 새날을 믿는/ 희망이요 출발이다"('새벽'전문)동트기 전 눈을 뜨며 이를 하루를 시작하는 시인은 창으로 몸을 움직이며 새로운 문을 연다.어느새 황혼에 이른 나이에도 아침은 늘 새롭고 인생은 설렌다.그가 말하는 아침은 희망이자 출발이며 행복이며 기쁨이다.손 작가는 시인의 말에서 "시조는 정형률에 더한 민족 고유의 시이고, 품격을 얹어 감동을 우려낼 수 있어서 단시조를 쓰고 싶었다. 45자 내외의 짧은 언어로 사물에 대한 사유와 서정을 정형 틀로 담아내고 싶었다"면서 "그것은 고려 말부터 우리 선조들이 조상 대대로 즐겨 노래했던 멋과 풍류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은 우리 민족의 문학적 양식이므로 우리의 큰 자랑이 아닐 수 없다"고 밝혔다.이어 "그러나 막상 단시조를 쓰면서 느낀 것은,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깨닫게 되었다. 단, 한 편의 단시조를 쓰기 위해 얼마나 깊은 사색과 성찰이 필요한 것인가를 배우게 되었다"며 "따라서 '빈 항아리'란 나의 단시조 한 편을 소개하면서 시인의 말로 대하고자 한다"고 적었다.'몇천 번/ 다그쳐야/ 둥글게 되는 걸까// 몇천 도/ 견뎌 내야/ 소리가 나게 될까// 몇천 년/ 기다려야만/ 체워질 수 있을까.' (빈 항아리)손형섭 시인은 1942년 화순에서 태어나 광주상고와 전남대학교 농업경제학과를 나와 전남대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국립목포대학교에서 대학원장·사회대학장·경영행정대학원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명예교수로 활동하고 있다.지난 2007년 정년퇴임 후 고(故) 문병란 시인의 서은문학연구소에서 시 창작을 수강하며 늦깎이로 창작의 길에 들어섰다.75세인 2017년 '문학예술' 봄호에 시 부문 신인상을, 가을호에 수필 부문 신인상을 각각 받으며 문단에 데뷔했다. 이후 왕성한 창작욕으로 시집 '별빛', '파도', '만추', '겨울 나그네' 등 4권과 수필집 '삶의 흔적', '추억', '아무려면 어떠랴' 등 3권을 발간했다.또 2023년 '월간문학' 9월호에 시조 부문 신인상을 수상한 뒤 2024년 첫 시조집 '눈 내리는 저녁'을 펴냈다. 한국문학예술가협회 광주전남지회장과 광주시문인협회 이사를 지냈고, 현재 한국문인협회 이사와 국제펜 한국본부 이사, 광주시시인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광주시시인협회 문학작품상, 도서출판 서석 문학상, 한국문학비평가협회 문학상 등을 받았다. 최민석기자 cms20@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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