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 풍광 담은 사진과 땅끝의 시
'그대 땅끝에 오시려거든/일상의 남루 죄다 벗어버리고/빈 몸 빈 마음으로 오시게나/행여 시간에 쫓기더라도 지름길일랑 찾지 말고/그저 서해로 기우는 저문 해를 이정표 삼아/산다랑치 논에 소를 몰 듯 그렇게 고삐를 늦추고 오시게나'('그대 땅끝에 오시려거든')
해남군 출신의 김경윤 시인이 시화집 '그대 땅끝에 오시려거든'(문학들)을 발간했다. 땅끝 해남을 노래한 저자의 시 57편에 해남의 풍광을 담은 고금렬, 김총수, 민경, 박흥남의 컬러사진 73컷을 엮었다.
책의 부제는 '세 개의 눈으로 보는 땅끝 해남'이다. 세 개의 눈은 다름 아닌 '눈과 마음과 렌즈'다. '마음'을 '시'로 바꿔도 좋다.
저자에게 고향 해남은 삶의 터전이자 시의 원천이다. 첫 시집 '아름다운 사람의 마을에서 살고 싶다' 이후 '신발의 행자', '바람의 사원', '슬픔의 바닥', '무덤가에 술패랭이만 붉었네'에 이르기까지 해남은 그의 시의 무대이자 사유의 텃밭이 되었다. 해남에서 나고 자란 그는 군과 대학 시절을 제외한 생의 대부분을 이곳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살아왔다. 땅끝문학회와 김남주시인기념사업회를 이끌며 '땅끝시인'으로도 이름났다. 이 책이 흔히 보는 '해남 땅끝' 여행서들과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군부독재와 광주항쟁을 겪고 전교조 해직교사로서 교육 운동에 투신하기도 했던 시인은 이 땅의 모순된 현실을 직시하고 이를 극복하려는 의지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점차 불교적 세계와의 접목을 통해 시적 사유와 감각의 깊이를 더해왔다.
고재종 시인은 발문에서 "이성과 합리성이라는 이름으로 시인 같은 '오래된 미래'의 한 생활방식을 사라져야 할 유물로 간주하는 현대 속도 문명인에게 통렬한 일갈을 놓는 풍자이다"고 말했다.
김경윤 시인은 1957년 생으로 1989년 무크지 '민족현실과 문학운동'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89년 전교조 활동으로 해직됐고 1994년 복직하여 고향인 해남에서 교사와 시인으로서 살면서 김남주, 고정희 시인 추모사업과 고산문학축전 등 지역 문화운동에 힘써왔다. 시집으로 '아름다운 사람의 마을에서 살고 싶다', '신발의 행자', '바람의 사원' 등이 있으며, 시해설서 '선생님과 함께 읽는 김남주' 등을 펴냈다. 땅끝문학회회장, 광주전남작가회의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김남주기념사업회 회장, 고정희기념사업회 이사, 고산문학축전 사무국장, 한국작가회의 부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최소원기자 ssoni@mdilbo.com
- "제주의 사람과 풍경 글과 그림에 담았어요" 384 시인에게 시는 밥줄이자 자신을 지탱하는 버팀목이다.박노식 시인은 등단 후 9년 동안 5권의 시집과 1권의 첫 시화집을 출간, 왕성한 창작활동과 필력으로 자신만의 시탑(詩塔)을 쌓아가고 있다.박노식 시인이 자신의 대학동문인 이민 화가와 두번째 시화집 '제주에봄'(스타북스刊)을 펴냈다.이번 시화집에는 제주도의 아름다운 풍경과 문화유적, 박물관, 카페 등을 여행하며 두 사람이 쓰고 그린 100편의 글과 100편의 그림이 실려 있다.각각의 글과 그림은 제주의 숨겨진 풍경과 매력을 새롭고 다채롭게 펼쳐냈다.지금은 국내 최고의 휴양지이지만 제주는 눈부신 풍광 속에 4·3이라 불리는 역사적 아픔과 상처를 간직한 슬픔의 땅이자 사람과 자연, 바다가 치유와 행복을 건네는 '천국'이다.박노식 시인과 이민 화가는 책머리에서 책에 담고자 하는 뜻을 전한다."오직, 시만 쓰고 오직, 그림만 그리는 순한 두 사람이 만나서 세상에 하나뿐인 아름다운 책을 낳았습니다. 제주는 슬픔의 섬이고 예술적 상상력의 바다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더 아픈지도 모릅니다. 이 책은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그곳의 아포리즘과 그림이 당신에게 위로가 되었다면 당신과 우리는 한 수평선에 누워서 낮의 흰 구름과 밤의 푸른 별을 함께 바라보는 것과 같습니다."첫 장 이민 작가의 작품 '밤 11시30분 솔동산로'에 입힌 박노식 시인의 글을 보자."홀로 밤길을 걷는 사람은/ 가로등 아래에서 어떤 슬픔을 찾으며/ 누군가를 오래 생각하는 버릇이 있어요."익숙한 길이건 낯선 거리건 우리는 어두운 밤 홀로 걸을 때 누군가를 만났던 장면과 감정을 떠올린다.생각은 기억을 부르고 그 기억은 흘러버린 시간으로 우리를 데려가며 그 때의 그 장면들을 되새기게 한다.그것은 때로 아쉬움과 그리움으로 혹은 추억과 후회로 가슴을 후벼파기도 한다.박 시인은 이민 작가와 함께 제주 곳곳의 공간과 풍경을 포착한 순간과 그림에 담긴 모습을 오버랩하며 자신만의 언어로 느낌과 서정, 서사를 입혔다.그는 비 내리는 서귀포 명동거리에서 먹먹한 가슴을 떠나보내야만 했던 자신과 눈물을 훔치기도 하고 기억의 고통을 감내한 인내로 내일을 기약하기도 한다.'신서귀포 메밀꽃밥'에서는 상처 받은 마음을 어루만지듯 피어난 꽃을 보며 상처도 삶의 일부임을 말한다.그의 시선은 계속 이어진다. 간밤의 고통을 이겨내고 떠오른 아침햇살을 보며 이별의 아픔도 영원하지 않음을 이야기하며 자신을 붙들지 않고 놓아주지 않는 기억 하나가 있다면 이 또한 자기의 전부였음을 인정하는 것이 올바른 선택임을 보여준다.이렇듯 각각의 글과 그림에는 사실적 풍경 속에 담긴 화폭에 입힌 작가의 손길과 시인의 눈으로 건져올린 그림 속 언어들이 슬픔과 상처를 어루만지는 위로와 희망을 건네준다.박노식 시인은 "보석 같은 제주도 곳곳의 풍경과 공간들을 담백한 필치와 색채가 어우러진 이 민 작가의 그림을 매개로 그때 그때의 느낌의 단상들을 간결한 시적 언어로 고백하듯 써 냈다"며 "고단한 삶 속에서 잠시나마 하늘과 구름, 별을 보듯 쉬어가는 마음으로 읽어줬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박노식 시인은 어느 봄날, 꿈속의 그에게 불현듯 나타난 또 다른 그가 했던 말 "한 권 시집도 없이 위로 올라오지 마라!" 그는 이 현몽을 얻고 생업을 접었다. 독한 마음으로 화순군 한천면 가천마을에 둥지를 틀고 오직 시만 썼다. '유심'에 '화순장을 다녀와서' 외 4편으로 신인상을 받고 등단, 2018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을 수혜했다. 조선대 국문과를 나와 현재 광주 동구 '시인 문병란의 집'큐레이터로 활동 중이다.이민 화가는 조선대학교 미대 회화과와 일본 동경 다미미술대학 판화과 석사학위 취득 후 국립현대미술관 아카데미와 국내 여러 대학에서 겸임교수로 재직했다. 작가는 자신만의 '판타블로 : 판(판화)+타블로(서양화)'라는 특수한 기법을 고안, 90회가 넘는 개인전을 열었다. 서울과 제주를 오가며 왕성한 창작 활동을 하고 있으며 제주도 그림만 1천점을 목표로 창작에 전념하고 있다.최민석기자 cms20@mdilbo.com·사진=양광삼기자 ygs02@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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