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윤 지음|문학동네|248쪽
디지털 시대 불안정노동의 도래
프리랜서, 유튜버 등 신종 직종
다양한 얼굴의 일 관통하는 이론
사회안전망은 왜 보호에 무력한가
세대론이 지워낸 '청년노동자'들
일터 권리 보장·공동체 노력 중요
지난 몇십 년간 노동의 형태가 변하면서 '노동자 계급'이나 '프롤레타리아트'와 같은 전통적인 범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새로운 형태의 일이 등장했다. 콜센터 노동자, 프리랜서, 새벽 배달노동자,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와 가짜 자영업자(종속적 자영업자) 등이 그 예다. 불안정노동자는 비정규직, 일일 노동자, 단기계약자뿐 아니라 유튜버, 크리에이터, 플랫폼노동자 등 신종 직종으로 범위가 확장되고 있다. 표면적으로 이들은 독립적인 자영업자나 프리랜서로 보이며, 자유롭고 창의적인 방식으로 노동하는 듯하지만 실상 고용은 더 불안하고, 임금은 더 적게 받고, 일터는 더 위험한 경우가 많다. 기술 발전에 따른 플랫폼경제 확산이라는 변화에도 불구하고, 왜 노동자들의 권리는 발맞추어 신장되지 못하는가? 우리는 왜 일할수록 불안정해지는가?
이 책은 불안정노동자들의 삶에 밀착해 이들의 노동현장을 관통하는 이론은 무엇일지, 불안정노동의 확산은 어떤 메커니즘으로 설명될 수 있을지를 고찰한 연구노트다. 동시에 저자는 불안정노동자들의 삶을 보호하는 데 현재의 사회안전망이 얼마나 무력한지를 진단하고, 이를 넘어설 더 나은 사회보장제도를 제안한다. 저자인 이승윤은 중앙대학교 사회복지학부 교수로 지난 2020년부터 2022년 국무총리실 직속 청년정책조정위원회 초대 민간부위원장을 역임했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자문위원 등으로 활동했다.
노동자 10명 중 4명이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불안정노동자들을 가리키는 용어로 프레카리아트(precariat)가 쓰이기도 하는데, 이들은 언제든 쉽게 쓰다 버릴 수 있는 '일회용' 노동력으로 취급받는다. 과거 노동자 계급을 대표하던 임금노동자들 역시 고용과 소득의 불안정성을 겪었지만 산업화 이후 정치적 노력, 사회안전망 구축, 법 제도 개선 등을 통해 어느 정도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노동자 계급'이나 '프롤레타리아트'와 같은 전통적 범주에서 벗어난 비표준적 형태의 불안정노동자들은 노동시장에서 새로운 계층을 형성하면서도 취약한 노동 조건에 그대로 노출됐다. 고용 불안정, 소득 불규칙, 일터에서의 통제권 부재, 사회보장 접근성 제한 등이 그것이다.
최근 통계청 조사 결과(2024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에 따르면 20대 임금 근로자 중 비정규직 비중이 43.1%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저자 또한 청년노동 문제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는데, 여기에는 그의 몇 가지 경험이 자리한다. 우선 그는 연구 진행중 불안정노동 시장으로 주요하게 유입되는 이들이 청년층임을 확인했다. 지난 2020~2022년 국무총리실 직속 청년정책조정위원회의 초대 부위원장으로 활동하던 시기에는 청년이라는 '세대'와 불안정노동자라는 '계급'의 교차점을 목격했다. 청년층은 노동시장에 새롭게 진입하는 집단으로 변화의 최전선에 있는 만큼, 그 불안정성은 노동 연구에 있어 세대 변수를 고려하도록 자극한 것이다.
심층적으로 연구한 청년 불안정노동자들의 실상은 어땠을까. 연구 결과 청년들은 '매우 불안정한 집단'과 '전혀 불안정하지 않은 집단'으로 양극화됐으며 불안정노동 경험은 새로운 형태의 계급 분화로 이어지고 있었다.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보이지 않는 노동자들'에게 더 나은 내일을 위한 목소리를 전한다. 2021년 잇따른 청년 산재사고 이후 중대재해처벌법의 제정과 시행을 위해 다방면으로 연대 활동을 진행했던 에피소드를 담았다. 그는 중대재해처벌법의 입법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훨씬 더 많은 이들이 자리한 매일의 일터에서 서로의 권리를 보장하고 노동자의 산업안전을 실천해나가는 것'이라고 강조하며, 공동체의 노력이야말로 우리 사회를 더욱 단단하고 회복력 있게 만드는 '근본적인 추동력'이라 주장한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야말로 오래 지속될 수 있다고 믿는다. 연구자로서 인식적 한계가 어떻게 노동자의 실제 모습을 왜곡시키는지에 대한 성찰은 전문가, 학자에 대한 권위를 과도하게 부여하는 시대에 지식인의 한계를 성찰하게 하며 현장 활동가들의 지워진 역할에도 빛을 되비춘다.
최소원기자 ssoni@mdilbo.com
- "제주의 사람과 풍경 글과 그림에 담았어요" 384 시인에게 시는 밥줄이자 자신을 지탱하는 버팀목이다.박노식 시인은 등단 후 9년 동안 5권의 시집과 1권의 첫 시화집을 출간, 왕성한 창작활동과 필력으로 자신만의 시탑(詩塔)을 쌓아가고 있다.박노식 시인이 자신의 대학동문인 이민 화가와 두번째 시화집 '제주에봄'(스타북스刊)을 펴냈다.이번 시화집에는 제주도의 아름다운 풍경과 문화유적, 박물관, 카페 등을 여행하며 두 사람이 쓰고 그린 100편의 글과 100편의 그림이 실려 있다.각각의 글과 그림은 제주의 숨겨진 풍경과 매력을 새롭고 다채롭게 펼쳐냈다.지금은 국내 최고의 휴양지이지만 제주는 눈부신 풍광 속에 4·3이라 불리는 역사적 아픔과 상처를 간직한 슬픔의 땅이자 사람과 자연, 바다가 치유와 행복을 건네는 '천국'이다.박노식 시인과 이민 화가는 책머리에서 책에 담고자 하는 뜻을 전한다."오직, 시만 쓰고 오직, 그림만 그리는 순한 두 사람이 만나서 세상에 하나뿐인 아름다운 책을 낳았습니다. 제주는 슬픔의 섬이고 예술적 상상력의 바다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더 아픈지도 모릅니다. 이 책은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그곳의 아포리즘과 그림이 당신에게 위로가 되었다면 당신과 우리는 한 수평선에 누워서 낮의 흰 구름과 밤의 푸른 별을 함께 바라보는 것과 같습니다."첫 장 이민 작가의 작품 '밤 11시30분 솔동산로'에 입힌 박노식 시인의 글을 보자."홀로 밤길을 걷는 사람은/ 가로등 아래에서 어떤 슬픔을 찾으며/ 누군가를 오래 생각하는 버릇이 있어요."익숙한 길이건 낯선 거리건 우리는 어두운 밤 홀로 걸을 때 누군가를 만났던 장면과 감정을 떠올린다.생각은 기억을 부르고 그 기억은 흘러버린 시간으로 우리를 데려가며 그 때의 그 장면들을 되새기게 한다.그것은 때로 아쉬움과 그리움으로 혹은 추억과 후회로 가슴을 후벼파기도 한다.박 시인은 이민 작가와 함께 제주 곳곳의 공간과 풍경을 포착한 순간과 그림에 담긴 모습을 오버랩하며 자신만의 언어로 느낌과 서정, 서사를 입혔다.그는 비 내리는 서귀포 명동거리에서 먹먹한 가슴을 떠나보내야만 했던 자신과 눈물을 훔치기도 하고 기억의 고통을 감내한 인내로 내일을 기약하기도 한다.'신서귀포 메밀꽃밥'에서는 상처 받은 마음을 어루만지듯 피어난 꽃을 보며 상처도 삶의 일부임을 말한다.그의 시선은 계속 이어진다. 간밤의 고통을 이겨내고 떠오른 아침햇살을 보며 이별의 아픔도 영원하지 않음을 이야기하며 자신을 붙들지 않고 놓아주지 않는 기억 하나가 있다면 이 또한 자기의 전부였음을 인정하는 것이 올바른 선택임을 보여준다.이렇듯 각각의 글과 그림에는 사실적 풍경 속에 담긴 화폭에 입힌 작가의 손길과 시인의 눈으로 건져올린 그림 속 언어들이 슬픔과 상처를 어루만지는 위로와 희망을 건네준다.박노식 시인은 "보석 같은 제주도 곳곳의 풍경과 공간들을 담백한 필치와 색채가 어우러진 이 민 작가의 그림을 매개로 그때 그때의 느낌의 단상들을 간결한 시적 언어로 고백하듯 써 냈다"며 "고단한 삶 속에서 잠시나마 하늘과 구름, 별을 보듯 쉬어가는 마음으로 읽어줬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박노식 시인은 어느 봄날, 꿈속의 그에게 불현듯 나타난 또 다른 그가 했던 말 "한 권 시집도 없이 위로 올라오지 마라!" 그는 이 현몽을 얻고 생업을 접었다. 독한 마음으로 화순군 한천면 가천마을에 둥지를 틀고 오직 시만 썼다. '유심'에 '화순장을 다녀와서' 외 4편으로 신인상을 받고 등단, 2018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을 수혜했다. 조선대 국문과를 나와 현재 광주 동구 '시인 문병란의 집'큐레이터로 활동 중이다.이민 화가는 조선대학교 미대 회화과와 일본 동경 다미미술대학 판화과 석사학위 취득 후 국립현대미술관 아카데미와 국내 여러 대학에서 겸임교수로 재직했다. 작가는 자신만의 '판타블로 : 판(판화)+타블로(서양화)'라는 특수한 기법을 고안, 90회가 넘는 개인전을 열었다. 서울과 제주를 오가며 왕성한 창작 활동을 하고 있으며 제주도 그림만 1천점을 목표로 창작에 전념하고 있다.최민석기자 cms20@mdilbo.com·사진=양광삼기자 ygs02@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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