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문화관광기행특구' 지정
매년 '이청준 추모 문학제'도 개최
1세대 이청준·송기숙·한승원 작가
노벨상 수상자로 거론된 이승우 등
장흥문협, 강연회·문학 탐방 진행
'천관문학관'서 문인 소산 전시 중

지난해 12월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K-문학이 세계인의 관심을 받고 창작 열기도 뜨거워지고 있다. 광주·전남은 '예향' 명성에 걸맞게 문학 자산이 풍부한 지역이다. 한국 문학사에 큰 획을 그은 기라성 같은 문인들이 즐비하고 문학단체에 소속되거나 개인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작가들도 줄을 잇고 있다. 뜨거운 창작열을 바탕으로 한 지역 작가들의 작품은 각종 문학상을 수상하고 베스트셀러에 오르면서 '포스트 한강'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광주·전남지역이 지닌 풍부한 문학적 자산을 살펴보고 '예향' 남도 문학의 원류를 찾아보는 시리즈를 게재한다.


◆문학의 향기로 가득 찬 '문향'
지난해 11월1일부터 이틀간 장흥에서는 '이청준 추모 문학제'가 펼쳐졌다. 2009년부터 진행된 문학제는 문학세계를 되돌아볼 수 있는 뜻깊은 시간으로 마련됐다. 프로그램은 이청준 소설가의 생전 사진과 영상을 비롯한 각종 시청각 자료와 함께 연극, 연대 낭송 등이 진행됐다. 작가의 소설 '선학동 나그네' 낭독극, 사생대회, 생가방문과 문학자리 참배 등의 행사가 곁들여져 의미를 더했다.
장흥은 매년 10~11월 중 이틀간 군민회관과 이 작가의 작품 배경 등지에서 문단, 문학동호인, 주민과 함께 '이청준 추모 문학제'를 진행한다. 한국 문학사에서 조명될 이청준 문학의 인문학적 연구와 장흥의 향맥을 선양함으로써 해마다 이 작가의 삶을 재조명하는 취지다.

장흥 대덕면 진목리에서 출생한 이청준(1939~2008) 작가는 치열한 인간다움에 관한 성찰을 통해 남도의 정서에서 피어난 상징적이고 관념적인 언어로 존재의 본질을 풀어낸 한국 문단의 거성이다. 부조리한 사회 메커니즘이 만든 '당신들의 천국'에서 살아가는 이들을 구원의 빛으로 조명했다. 대표작으로는 '서편제', '당신들의 천국', '병신과 머저리' 등이 있으며 '서편제'는 1993년 임권택 감독이 영화로 제작해 한국 최초로 공식적 관객 숫자 100만 단위를 넘겼다. 또한 동인문학상, 이상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대한민국문화예술상 등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했다.

작가는 회진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광주서중학교에 진학할 때까지 진목리 마을에서 소년 시절을 보냈다. 1960년 전후인 고등학교 3학년 시절 가세가 몹시 기울어 집까지 남에게 넘어가고 가족이 흩어진 바람에 20여 년간 고향 마을을 찾지 못했다. 1979년 동네 아래 해변인 갯나들에 새 가옥을 마련하고 그동안 인근 양하리 등으로 거처를 옮겨 다니던 어머니와 남은 가족들이 옛 마을로 돌아오며 방문길이 다시 이어지게 됐다.
근·현대 한국문학사를 통틀어 장흥은 한국 문단에 큰 별들을 가장 많이 탄생시킨 지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에 장흥은 2008년부터 '문학관광기행특구'로 지정돼 '문향(文鄕)'으로 불리기도 한다.

◆조선 백광홍부터 이어진 계보
문향 장흥의 뿌리는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조 기행가사의 효시이자 모체로 볼 수 있는 백광홍(1522~1556)의 '관서별곡'이 그것이다.
백광홍은 1522년 장흥 기산에서 출생한 문인으로, '관서별곡'에서는 평안도 평사가 된 후 그곳을 두루 돌아다니며 아름다움을 노래했다.
이밖에 조선 후기 실학자 존재 위백규(1727~1798), 지지재 이상계(1758~1822), 우곡 이중전(1825~1893), 겸재 문계태(1875~1955)에 이르기까지 장흥의 풍토를 배경으로 가사문학은 그 맥이 끊기지 않고 융성했다.

이러한 전통은 현대문학에 이르러 뛰어난 작가들을 배출할 수 있는 터전이 됐다. 장흥의 1세대 작가군인 이청준, 송기숙, 한승원 소설가와 한국아동문학의 거장 김녹촌 작가의 소산은 정남진의 해안에서 보림사에 이르는 자연 경관과 삶의 현장을 토대로 이뤄진 것이다.
한승원 작가는 그의 터인 장흥에 작업실 '해산토굴'을 짓고 현재까지 그곳에서 집필 활동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바다에서 퍼 올린 원초적이고 신화적이고 우주적인 생명력을 품은 언어를 통해 인간의 욕망과 절망에 관한 성찰을 강렬한 색채 미학으로 승화시켰다. 대표작으로 '아제아제바라아제', '목선', '불의 딸' 등이 있다.
한 작가의 집필실 해산토굴은 장흥 안양면 사촌리 율산마을에 위치해있다. 토굴 속에서 창작에만 전념하겠다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그의 시 '나무'가 새겨진 시비도 함께 세워져있다.


한승원 작가의 가족은 대를 잇는 문인 집안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의 고명딸 한강 작가는 소설 '소년이 온다', '채식주의자' 등을 펴내 2024년 한국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한강의 수상 소식은 지난해 국민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선물하며 5·18광주 민주화 운동과 제주 4·3사건 등 한국 현대사의 아픔을 세계적으로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됐다. 1988년 한승원 작가 수상한 이상 문학상을 2005년 한강 작가가 수상함으로써 최초 2대 연속 가족 수상이라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한승원 작가의 장남 한규호(필명 한동림) 작가도 1995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소설 '변태시대'로 등단하며 소설가이자 동화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송기숙(1935~2021) 작가는 장흥 용산면 포곡리 출생으로 대표작 '자랏골의 비가', '암태도', '녹두장군' 등을 남긴 소설가다. 1978년 6월 전남대 교수 등과 함께 '우리의 교육지표'를 발표한 행동하는 지식인으로 회자된다.
건강한 어린이 나라를 꿈꾸며 대자연의 색채를 선명하고 향토적인 치유의 언어로 노래한 김녹촌(1927~2012) 작가는 장흥 부산면 내안리 출생이다. 평생토록 기성세대의 부조리를 직시함으로써 아이들이 병든 사회를 극복하고 아름답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동시를 지었다. 동시집 '꽃을 먹는 토끼', '언덕배기 아이들' 등 12권을 펴냈으며 작품 중 '산새 발자국', '독도 잠자리' 등 다수는 동요로 불린다.

장흥이 낳은 대표적인 2세대 문인으로는 이승우 소설가가 있다. 그의 작품들은 길을 잃은 인간들의 가장 깊은 내면에 자리한 '수군거림'을 포착했다. 그곳에 담긴 우주를 집요한 언어를 통해 지상의 노래로 승화했다. 지난 200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르 클레지오(Le Clezio)는 한국 작가 중 노벨문학상 수상 가능성이 가장 높은 작가로 이승우를 지목해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1959년 장흥 관산읍 신동리에서 출생한 이 작가는 장편소설 '에리직톤의 초상', '생의 이면' 등 17편, 소설집 '심인 광고', '마음의 부력' 등 14권을 펴냈다. 이 중 '생의 이면'은 지난 2000년 프랑스 페미나상 외국문학부문 최종심 후보로 오르고 2005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관 '한국의 책 백권'에 선정됐다. '식물들의 사생활'은 2009년 프랑스 명문 갈리마르 출판사의 폴리오(Folio) 시리즈로 출간됐다. 현재 그는 조선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 중에 있다.
이 외에도 '겨울 언덕의 백양나무숲' 등을 펴낸 백수인 시인, '코끼리가 쏟아진다'의 이대흠 시인, '쓸쓸함이 아직도 신비로웠다'를 펴낸 이재연 시인 등은 광주전남작가회의 회원으로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계승 위한 발걸음과 새로운 도약도
문학의 고장 장흥의 정체성을 계승하고 문학적 가치를 알리기 위한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2017년 창립된 장흥문인협회는 현재 회원들이 연간 문예지를 통해 꾸준히 창작열을 과시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안도현 시인을 초청해 군민 문학 강연회를 개최하고 목포문학관, 진도 시에그린한국시화박물관 등 문학 탐방을 진행했으며 올해는 문학 토크쇼, 시화전 등 문학을 보다 쉽고 친근하게 즐길 수 있는 행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장흥은 이들의 소산을 전시하고 문학세계를 계승하기 위해 천관산 기슭에 '천관문학관'을 설립했다. 70여 명 문인의 전시물과 그들의 삶이 담긴 자료물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다. 문학관을 나와 1km 정도 올라가면 문학적 정서를 느낄 수 있는 가훈탑과 문학공원도 조성됐다.
또한 장흥은 2008년 4월25일 문학관광기행특구로 최초 지정된 이후 지난해 6월 3차 변경 승인을 통해 2025년까지 2년 연장됐다. 이를 통해 군은 더욱 적극적이고 다채로운 문학 행사를 추진할 전망이다.
최소원기자 ssoni@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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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은 그 아무것들' "소박한 시집이에요. 요즘 들어 우리 사회가 참 삭막한데 읽는 분들이 시집을 통해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최근 첫 시집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은 그 아무것들'(천년의시 刊)을 펴낸 김민하 시인은 이번 시집에 대한 소망을 이처럼 밝혔다.이 시집은 김 시인이 지난 2011년 등단한 이후부터 조금씩 꾸준히 써왔던 시들을 엮어냈다. 오랜 시간 서랍에 차곡차곡 모아온 지난날의 감정이자 감상이 담긴 시집이다. '봄' '나무 도마2' '안개꽃' '배추김치 읽기' '크리스마스 카드' 등 57편의 시가 실렸다.'푸름 많은 몸짓으로/푸름 맑은 열정으로/두근두근 그리면 내게 올까/누추한 생에 세례수 한 방울만 한 네 잎'('네잎클로버' 중)그의 작품은 일상 속의 존재를 애정 어린 시선으로 뜯어본다.이해인 수녀는 해설에서 "자연과 사물에 대한 예민한 통찰과 애정을 저자 특유의 언어로 표현하는 시들은 솔직하고 아름답고 따듯하다"며 "담백한 깊이로 독자의 마음속에 슬며시 사랑을 넣어 준다"고 설명한다.이 수녀의 해설처럼 김 시인의 이번 시집은 "켜켜이 쌓인 배추 포기를 책으로 읽어 내는 예민한 시선에 감탄"하게 만들고 "우리 또한 생활 속의 시인이 되고 싶"게 만드는 힘을 갖고 있다. 작은 존재를 쉽사리 지나치지 않고 세심히 살피는 시인의 따뜻한 목소리와 시선이 깊은 울림이 된다.작은 존재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그의 소박한 언어는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일상의 고마움을 느끼게 한다.김 시인은 "시를 잘 쓰는 사람도 아니고 쓰기가 어려워 마음대로 조금씩 써서 보관해왔던 것들을 기록이자 추억으로 엮어냈다"며 "항상 글을 쓸 때마다 읽는 사람들이 인정과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을 느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정말 소박한 시집이지만 이 시집 또한 독자들에게 그런 시집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한편 김민하 시인은 2001년 '아동문예'에서 동시, 2012년 '심상'에서 시로 등단했다. 2011년에는 '바른손' 일러스트 작가로 등록, 일러스트 작가로도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저서로는 동시집 '기침하는 꽃들' '군침 도는 하루의 시간'이 있으며 2014년 격주간지 '아트플러스'에 영화평을 연재했으며 2020~2022년 무등일보에 '생각 한 방울' 연재, 2024년에는 월간지 '아트플러스'에 '생각 한 방울'과 시 칼럼 일러스트를 연재했다.김혜진기자 hj@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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