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진 시작으로 박화성 이어
차범석·김현·김지하·천승세 등
한국 문단사 굵직한 작가 배출
목포문학관, 다양한 행사 운영
상금 5천만원 문학상 등 '눈길'

가을색이 완연하던 지난해 10월. 유달산 아래 자리한 목포 북교동에 활기가 감돌았다. 고즈넉한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는 이 마을 골목골목에서 축제가 열렸기 때문. '골목에서 웬 축제인가' 하겠지만 이 마을 골목 곳곳에는 한국 근현대 문학 거장들의 숨결이 담겼다. 이를 바탕으로 열린 축제가 '목포 골목길 문학축제'이다.
북교동은 한국 근현대 문학의 산실이다. 한국 문단에서 내로라하는 작가들을 배출한 까닭이다. 이름만 들어도 쟁쟁하다. 김우진, 김진섭, 박화성, 차범석, 김현 등 문학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한 번쯤 들어본 이름들이다. 이들 중 셋은 북교동에서 태어났고 둘은 유년시절을 보내며 감수성을 길렀다.
북교동을 중심으로 목포 문학은 그 위세를 확장했다. 박화성의 둘째 아들 천승세, 목포에서 어린시절을 보낸 김지하 등 한국 문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가들이 문학의 맥을 이어갔다.

◆다양한 장르에 굵직하게 흐르는 명맥
목포 문학은 한국 문학을 이끄는 거목들로 채워진다. 이 거목들은 시와 소설은 물론 희곡, 수필, 문학평론까지 다양한 장르에 포진해 있다.
이러한 목포 문학의 시작은 우리나라 최초의 신극운동가인 김우진이다. 1920년대 활동하던 김우진을 중심으로 문학 뿐만 아니라 문화계 인사들의 발길이 이어졌고 이를 바탕으로 1930년대 박화성, 1950~60년대 차범석, 김현 등으로 명맥이 이어진다.
1897년 장성 군수였던 김성규의 장남으로 태어난 김우진은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다. 목포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구마모토 농업학교로 유학을 가 와세다대학에서 영문학을 수학하고 귀향했다. 그는 한국 최초로 서구 근대극을 연구한 작가로 대학시절 극예술협회를 만들어 신파극 위주의 연극에서 탈피하려는 움직임을 주도했다.
그는 귀향해 부친이 세운 영농회사에서 사장으로 일하면서도 창작 활동을 꾸준히 이어갔는데, 현해탄에 몸을 던져 30세의 나이로 타계하기 전까지 희곡 5편과 평론 17편을 비롯해 시 48편, 소설 3편 등을 남겼다.

1904년 일찍 개화한 가정에서 태어난 박화성은 한국 최초의 여성 소설가이다. 명석한 두뇌로 월반을 거듭해 11살에 자신의 첫 소설을 쓰기도 했다. 21살에 쓴 '추석전야'는 소설가 이광수의 추천으로 이듬해 '조선문단' 1월호에 발표됐고, 이를 시작으로 박화성은 문단활동을 시작했다. 일본여자대학에 첫 한국인 유학생으로 일본 유학을 떠났다가 돌아온 그는 1932년 동아일보에 장편소설 '백화'를 연재한다. 이 작품은 우리나라에서 여성이 쓴 최초의 장편소설로 기록된다. 이후 박화성은 '홍수전후' '고향 없는 사람들' '눈보라의 운하' '휴화산' 등 현실비판, 역사의식을 담아낸 리얼리즘 작품을 발표했다.

한국사실주의 연극을 완성한 것으로 평가되는 극작가 차범석 또한 목포에서 태어났다. 해방과 한국전쟁으로 광주와 서울, 고향을 오간 그는 한국전쟁으로 고향에 와 교직 생활을 하며 습작을 하고 학생 연극반을 맡아 지도하는 등 극작가로서의 기틀을 마련한다. 이후 195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서 '귀향'이 당선되며 극작가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이후 '산불' '열대어' '새야새야 파랑새야' '이차돈의 죽음' '사막의 이슬' '식민지의 아침' 등을 썼으며 장수 드라마로 유명한 '전원일기'의 초창기 대본을 집필했다. 뿐만 아니라 50년대에는 제작극회를 창단해 전국적으로 소극장 운동을 확산시켰으며 20년 동안 '연극의 전문화와 연극의 대중화'을 목표로 극단 산하를 운영하기도 하는 등 한국 연극의 활성화에 공헌하기도 했다.
◆천승세-김지하-김현으로 또다시 이어져
박화성, 차범석 등의 목포 뿐만 아니라 전국에서의 활동은 목포의 문인을 꿈꾸는 이들에게 큰 자극제가 됐고, 계속해서 목포 문학의 맥을 이어가는 계기가 됐다.
소설가이자 극작가인 천승세는 박화성의 둘째 아들이기도 하다. 대학 재학시절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점례와 소'가 당선돼 본격적으로 문학의 길을 걷게 됐다. 6년 뒤에는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희곡 '물꼬'가, 같은 해 국립극장 장막극 현상 모집에 '만선'이 당선되면서 김우진과 차범석을 잇는 목포 출신 극작가의 계보를 잇기도 했다. '만선' 경우 한국 리얼리즘 연극 대표작으로 꼽히는 작품으로 오늘날까지 무대에 올려지고 있다. 올 3월에는 국립극단의 올해 포문을 여는 작품으로 선보여진다.

한국 문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 중 하나인 김지하도 목포 출신이다. 중학교 2학년때 아버지를 따라 강원도 원주로 이사하기 전까지 이곳에서 유년 시절을 보내며 감수성을 키웠다. 서울대 미학과를 다니던 그는 4·19 혁명에 참여한 것을 시작으로 학생 운동을 이어갔으며 5·16 군사정변 이후에는 수배를 피해 목포로 돌아와 도피생활을 했다. 도피하던 때인 1963년 3월 '목포문학' 2호에 그는 김지하라는 필명으로 '저녁 이야기'를 발표하기도 했다. 학생 운동을 펼치다 수감돼 7년 반만에 대학을 졸업한 그는 3년 뒤 시 전문지 '시인'에 시를 발표하며 저항시인으로서의 활동을 시작했다. 1970년에는 저항시 '오적(五賊)'을 발표해 구속됐다가 구명운동을 통해 석방되기도 했으며 그해 12월에는 목포를 시적 모티브로 삼아 첫 시집 '황토'를 냈다. 1982년에는 두 번째 시집 '타는 목마름으로'를 발간했으며 198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생명을 중심 주제로 이전보다 고요하고 절제된 시를 창작했다.

김지하와 친했던 김현은 진도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1학년 때 목포로 이사했다. 중학교를 졸업하면서는 교지에 시 '눈을 감으면'과 콩트 '해와 달의 생리'를 발표하는 등 어릴 적부터 문학에 관심을 보여왔다. 20세에는 '자유문학' 제5회 신인당선작품 평론 부문에 '나르시스 시론'이 당선되며 등단했다. 같은 해 우리나라 최초 소설동인지 '산문시대'를 창간했는데 이는 1970년 창간한 문학 계간지 '문학과지성'의 모태가 됐다. 그는 엄청난 독서량을 자랑했는데 이에 기반한 인문학 전반을 아우르는 지식은 그만의 섬세한 작품 분석을 만들어냈다. 특히 그의 평론은 아름다운 문체가 특징적이었는데, 이는 비평을 독자적 문학 장르로 끌어올리는데 큰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다양한 방식 자원화·활성화 '눈길'
목포는 보석 같은 문학 명맥을 다양한 방식으로 자원화하고 있다.
목포에서 이뤄지는 문학 관련 프로그램, 행사는 모두 목포문학관이 담당하고 있다. 2007년 갓바위지구에 건립된 목포문학관은 목포 문학을 자원화해, 문학 작가를 지원함과 동시에 문학 활성화를 도모하고 대중이 문학과 친해질 수 있는 크고 작은 행사를 기획, 운영한다.
지난 2021년에는 전국최초의 문학박람회인 '목포 문학박람회'를 시작, 지난 2023년 2회 행사를 진행해 눈길을 모았다. 또 문학박람회가 열리지 않는 짝수해에는 '시월애 문학여행'을 펼쳤다. 2022년에는 '목포 헌책페어 북토피아'를 열고 헌책방과 독립서점 초대전, 북 토크콘서트, 목포 문학살롱 등을 열었으며 지난해에는 '목포 골목길 문학축제'를 많은 문학인을 배출한 북교동 일대 작가 생가와 빈집 등을 활용해 개최하고 문학토크와 공연, 문학제 등을 진행해 호응을 얻었다.

또 성인을 대상으로 시창작과 소설창작을 강의하는 문예대학과 어린이문학교실, 상주작가 강좌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며 시민이 문학과 친숙해질 수 있는 프로그램을 이어오고 있다.
특히 올해 17회를 맞이하는 목포문학상은 장편소설 부문 박화성문학상으로 운영해 올해 경우 5천만원의 상금을 수여할 계획으로 전국 문학인들을 지원하고 문학을 활성화하고자 하는 의지를 담고 있다.
또 목포출신 작가 생가와 작품 배경지 등을 전문해설사와 함께 탐방하는 '목포문학을 찾아라! 목포문학탐방대'를 운영해 목포 문학의 명맥을 널리 홍보하고 있다.
현재 목포문학관은 목포 문학에 또다른 전기를 마련할 사업을 진행 중이다. 지난 2023년 문화체육관광부의 남부권 광역관광개발계획사업으로 선정된 문학마을조성 사업이 그것이다. 문학관을 목포 원도심인 북교동 현장으로 이전하는 사업이다. 굵직한 작가를 대거 배출한 북교동 일대에 포진한 작가 생가, 작품배경을 활용해 목포 출신 8명 작가의 개별 전시관을 만들고 이들을 잇는 디자인을 마을 전체에 적용하는 사업으로 2027년 완성될 계획이다. 이 사업이 완료되면 목포는 문향으로서의 위용을 더 뽐내게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김혜진기자 hj@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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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은 그 아무것들' "소박한 시집이에요. 요즘 들어 우리 사회가 참 삭막한데 읽는 분들이 시집을 통해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최근 첫 시집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은 그 아무것들'(천년의시 刊)을 펴낸 김민하 시인은 이번 시집에 대한 소망을 이처럼 밝혔다.이 시집은 김 시인이 지난 2011년 등단한 이후부터 조금씩 꾸준히 써왔던 시들을 엮어냈다. 오랜 시간 서랍에 차곡차곡 모아온 지난날의 감정이자 감상이 담긴 시집이다. '봄' '나무 도마2' '안개꽃' '배추김치 읽기' '크리스마스 카드' 등 57편의 시가 실렸다.'푸름 많은 몸짓으로/푸름 맑은 열정으로/두근두근 그리면 내게 올까/누추한 생에 세례수 한 방울만 한 네 잎'('네잎클로버' 중)그의 작품은 일상 속의 존재를 애정 어린 시선으로 뜯어본다.이해인 수녀는 해설에서 "자연과 사물에 대한 예민한 통찰과 애정을 저자 특유의 언어로 표현하는 시들은 솔직하고 아름답고 따듯하다"며 "담백한 깊이로 독자의 마음속에 슬며시 사랑을 넣어 준다"고 설명한다.이 수녀의 해설처럼 김 시인의 이번 시집은 "켜켜이 쌓인 배추 포기를 책으로 읽어 내는 예민한 시선에 감탄"하게 만들고 "우리 또한 생활 속의 시인이 되고 싶"게 만드는 힘을 갖고 있다. 작은 존재를 쉽사리 지나치지 않고 세심히 살피는 시인의 따뜻한 목소리와 시선이 깊은 울림이 된다.작은 존재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그의 소박한 언어는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일상의 고마움을 느끼게 한다.김 시인은 "시를 잘 쓰는 사람도 아니고 쓰기가 어려워 마음대로 조금씩 써서 보관해왔던 것들을 기록이자 추억으로 엮어냈다"며 "항상 글을 쓸 때마다 읽는 사람들이 인정과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을 느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정말 소박한 시집이지만 이 시집 또한 독자들에게 그런 시집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한편 김민하 시인은 2001년 '아동문예'에서 동시, 2012년 '심상'에서 시로 등단했다. 2011년에는 '바른손' 일러스트 작가로 등록, 일러스트 작가로도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저서로는 동시집 '기침하는 꽃들' '군침 도는 하루의 시간'이 있으며 2014년 격주간지 '아트플러스'에 영화평을 연재했으며 2020~2022년 무등일보에 '생각 한 방울' 연재, 2024년에는 월간지 '아트플러스'에 '생각 한 방울'과 시 칼럼 일러스트를 연재했다.김혜진기자 hj@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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