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칼럼] 지금 의과대학 정원 확대가 필요한가?

@양동호 광주시의사회 대의원회의장(연합외과 원장) 입력 2020.07.02. 14:05
양동호 광주광역시의사회장(연합외과 원장)

정부가 의료계와 한마디 상의도 없이 의과대학 입학 정원을 최소 500명 이상 증원하기로 하여 아직 끝나지 않은 코로나 상황에서 의료계가 들끓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같은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자주 닥칠 가능성에 대비해 현재 연간 3,058명으로 묶여 있는 의대 정원을 과감하게 풀어 의사 인력을 늘리겠다는 것이 정부의 구상이다. 그러나 이번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천 명당 의사 수가 우리나라보다 1.5 배가 넘는 이탈리아 등 많은 OECD 국가들의 코로나19 대응과정과 그 참담한 결과를 살펴보면 그 불행이 단순히 의사 수의 문제가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의사인력의 과잉과 부족은 모두 의료 정책에 매우 많은 영향을 미친다. 의사 수가 과도하게 많으면 과도한 의료비 지출의 원인 요소가 되어 건강보험 재정의 고갈로 세금 증가의 원인이 되며, 또 의사 수가 너무 적어도 의료접근성 저하와 의료의 질적 저하를 가져오게 된다. 따라서 의료 수급 정책에 있어서 의사 인력은 보건의료체계 틀 속에서 고려되어야 하며 정부와 정치권의 이득에 따라서 결정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이해당사자들 간의 충분한 논의 없이 오로지 정치적인 목적으로 의사 인력 수급 문제를 다루려고 하는 비합리적 접근법으로 인해 끊임없이 비생산적이고 소모적인 논쟁이 지속되어온 것이 사실이다.

그럼 우리나라의 의사인력은 선진국에 비해서 부족한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답은 '노'이다. 정부는 단순히 인구 천 명당 활동의사 수가 OECD 평균인 3.4명보다 적은 2.3명으로 OECD 평균에 부족하다고 얘기하고 있으나 2017년 의료 서비스 경험 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당일 예약환자 외래 대기시간은 21분으로 미국 초진 환자 대기 시간인 약 24.1일보다 훨씬 의료 접근성이 좋은 것으로 조사된 바 있으며, 유럽의 경우 환자의 대기시간은 더욱 길어진다. 이와 같이 높은 의료 접근성을 가진 우리나라에서 의사 부족 문제를 논의하기는 이치에 부적합한 면이 있다. 또한 의사 밀도는 국토 면적 당 활동 의사 수를 나타내는데 의사 접근성을 반영하며 우리나라의 의사 밀도는 12.0 명으로 OECD 국가 중 세 번째로 높고, 단순히 인구 천 명당 활동의사 수로 산출할 경우 활동의사 수가 가장 많았던 오스트리아의 의사 밀도는 5.44 명으로 10위에 불과하다. 그 밖에도 최근 우리나라의 인구 연평균 증가율은 0.55%로 OECD 회원국 평균인 0.63%보다 낮고 활동의사 연평균 증가율은 3.63%로 OECD 회원국 평균 인 1.86%보다 높다. 이러한 연평균 증가율을 고려하면 2037년 이후로 한국의 인구 천 명당 의사 수 는 OEDCD 평균을 초과할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즉, 당장 의과대학 정원을 늘린다고 하여도 전문의 취득 시까지 13-15년이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이미 그때는 의사 수가 OECD 평균을 초과하여 실효성이 없는 정책인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의료 접근성은 OECD 국가 중 상위에 속하며,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의료자원의 불균형 분포에 따른 필수 의료분야의 부족현상이다. 정부의 저수가 정책으로 인해 필수 의료 분야의 심각한 저수가 현상으로 과별 불균형이 심화 되었으며 지방으로 갈수록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과 등의 필수 의료 분야 부족현상은 심화되고 있다. 따라서 정부는 공공 의대 신설이나 의대정원 증원이라는 단순하고 양적인 접근에서 벗어나 현재 의과대학 과정에서 공중보건과 지역의료 교육 및 실습 강화 등을 통한 체계적인 접근이 바람직하다. 또한 의료 전달 체계의 확립, 상급 종합병원 진료기능 조정 및 환자 진료권 설정을 통한 실효성 있는 의료인력 재편과 환자의 의료기관 이용조절이 더욱 절실한 상황이다.

부디 정부는 전 의료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방적 밀어붙이기식의 의료 정책보다는 전문가들과 충분한 협의를 통하여 국민에게 보다 나은 의료 환경 제공을 위한 정책이 수립되기를 기대한다. 양동호 광주광역시의사회장(연합외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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