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발생한 근무 중 뇌출혈로 쓰러진 서울아산병원 간호사가 수술할 의사가 없어 결국 사망한 사건은 그동안 세계 최고의 의료시스템이라고 자부하던 대한민국 의료시스템의 민낯을 드러낸 사건이며, 겉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이는 지금의 의료시스템이 실제로는 사상누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었다. 대한민국 최고의 병원이라고 할 수 있는 아산병원에서조차도 낮은 수가와 열악한 근무환경으로 인해 적정인원의 뇌혈관외과 전문의를 보유할 수 없는 현실을 통해서 우리는 대한민국 의료시스템이 이미 심각한 문제에 직면해있으며, 대대적인 개혁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현재의 시스템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특히 서울아산병원은 국내 최대 규모 상급종합병원임에도 당시 해당 간호사에게 필요했던 개두술을 집도할 수 있는 의사가 단 2명뿐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며, 필수의료분야 인력 확대를 위해 시스템 개선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또한 얼마 전 광주에서는 맹장염 수술이 필요한 세 살배기 남자아이가 소아외과 전문의가 없어 수술을 맡을 병원을 구하지 못하고 약 200㎞ 떨어진 대전지역 대학병원으로 이송되어 수술을 받았다. 그리고 영광지역 사업장에서 작업 중 손가락 일부를 절단당한 30대 남성도 접합수술 전문병원과 대학병원 등 광주 대형병원 모두가 '수용불가' 입장을 보이자 119 구급대에 의해 전북으로 가서 수술을 받았다.
위와 같은 필수의료 붕괴조짐이 보이는 것은 얼핏 보기에 의료 인력이 부족해서 그런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의료 인력은 충분한 데도 필수의료에 대한 수가가 너무 낮게 책정되어 있어 대부분의 의사들이 필수의료를 기피하는 것과 연관이 있다. 필수의료 수가가 낮은 것뿐만 아니라 중증환자 치료 시 당연히 발생할 수 있는 환자의 사망과 같은 안 좋은 결과에 대해서도 요즘에는 민사합의 뿐만 아니라 형사적으로 인신을 구속하는 판결이 점점 많아지고 있어 의사들이 필수의료를 지원하지 않는 데서 기인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병원 입장에서도 필수의료를 아무리 해봤자 병원수입에 도움이 되지 않으니 해당과의 의료 인력을 뽑지 않으려고 하고 필수의료를 전공한 의사들도 취직자리도 없으니 기피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일례로 전대병원만 해도 총 278명의 전문의가 있는데 그 중, 비 인기과인 필수의료를 담당하는 과들을 보면 흉부외과는 다섯 명, 산부인과 아홉 명, 외과는 21명으로 소수에 불과하며, 이 중 소아외과 전문의는 광주·전남 지역에 단 한 명밖에 없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동안 국가는 저수가, 저급여, 저비용의 의료정책으로 지금의 기형적 구조의 의료체계를 수수방관 하였다. 그럼 해결책은 무엇일까? 정부가 말하는 대로 필수의료분야 인력부족을 의사전체 인력부족으로 몰아 무작정 의사수를 늘리기 위해 공공의대를 지어서 의료 인력을 양성한다고 하자. 또 이들이 필수의료를 기피할 것이므로 강제적으로 5년 정도 필수의료를 전담하도록 한다고 하더라도, 어차피 5년 후에는 그 인력은 열악한 환경 때문에 다른 직종으로 이직할 것이 거의 분명하다. 또한 공공의대를 지으려면 수천억 원의 돈이 들고 기간도 전문의를 양성하려면 지금부터 약 10년 이상이 걸리는데, 그것보다는 훨씬 쉽고 빠른 방법이 필수의료 분야에 대한 수가를 대폭적으로 인상하고 인센티브를 주는 유인책을 펼쳐 현재의 전공의들이 필수의료과를 지원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제일 비용도 적게 들고 효과도 빨리 보는 방법일 것이다.
그런데 정부나 정치권에서는 이 쉬운 방법을 외면하고 자꾸 비용도 많이 들고 시간도 오래 걸리는 공공의대 쪽으로 화살을 돌리고 있어 답답한 마음이다. 정치인들이야 표를 의식하여 공공의대 설립을 얘기할 수 있지만 정부와 보건복지부는 이 시점에서라도 국민들에게 현재의 의료실상을 정확히 알리고 진실로 국민건강을 위한 계획을 수립하여야 할 것이다. 더 이상 머뭇거리다가는 우리 국민들이 간단한 수술조차도 받을 곳이 없어서 떠돌아다니는 운명이 될지도 모른다. 정부의 현명하고 조속한 계획 수립을 촉구한다.?양동호 연합외과 원장 (광주광역시 의사회 대의원회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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