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칼럼] 무화과 (無花果)

@주종대 밝은안과21병원 원장 입력 2024.10.03. 17:53
주종대 밝은안과21병원 원장

어릴 적 내가 살던 동네에는 마당이 넓은 집들이 많았다. 우리 집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기역 자 형태로 집이 놓여있고 중앙에는 나무와 꽃들 그리고 가장자리에는 샘터가 있었다.

지금도 샘터에 있는 펌프를 손으로 오르락내리락하며, 물을 끌어 올렸던 기억이 새록새록 하다.

푹푹 찌는 여름날에는 그곳에서 등목을 자주 했었다. 바닥에 손을 대고 엎드려 있으면 어머니가 바가지로 시원한 물을 등에 끼얹어주셨다. 흐르는 물이 등과 머리를 씻어 내려가면 타들어 갈 것 같은 무더위도 한순간에 사라지고 피부에서 냉기가 차올라 오돌토돌 닭살이 돋고 입술이 새파래지기까지 했다.

대문 바로 앞에는 석류나무가 있고 담벼락 주위에는 감나무와 무화과나무가 자리 잡고 있었는데 여름 막바지가 되면 무화과나무에 열린 무화과를 따기 바빴다. 푸릇푸릇하니 땡땡한 무화과를 따면 잎과 줄기에서 하얀 진액이 묻어 나오고 맨손으로 만지면 따가워 조심스럽게 만져야만 했다.

어렸을 때는 무화과의 하얀 진액을 사마귀가 난 곳에 발랐다. 어른들이 이 진액이 사마귀 제거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주셨다. 그때는 사마귀 치료제가 없었고 병원에 가기도 어려웠기 때문이다. 바를 때는 반신반의했지만 며칠 뒤에 희한하게 사마귀가 흐물흐물해져 살살 문지르면 벗겨지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병원에서 사마귀를 충분히 치료할 수 있고 자칫 잘못하면 피부 염증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진액을 바르는 것은 삼가야 한다.

무화과는 나뿐만 아니라 동네 할머니들, 아주머니들, 누나들이 좋아했다. 콩알만 한 무화과 열매가 탐스럽게 익어갈 무렵이 되면 동네 사람들이 모두 모여 무화과를 땄다.

그리고 곧장 물에 씻어 껍질을 벗기지 않고 반으로 갈라서 속이 새빨간 무화과를 먹어보라고 내게 주셨다.

생각해 보면 어릴 때 무화과를 썩 좋아하지 않았다. 씨가 이게 걸려서 싫었고 손으로 열매를 만지면 따가워서 별로였다. 하지만 어머니와 누나는 막 딴 무화과를 마주 앉아서 맛있게 먹었다.

지인이 가을 제철이라며, 신안 압해도의 명물인 무화과를 선물로 주었다. 무화과는 달콤한 과육과 부드러운 식감이 일품이라 한 개만 먹기 아쉽기 때문에 앉은 자리에서 금세 몇 개씩 먹어버리기도 한다. 이런 무화과는 맛뿐만 아니라 우리 건강에도 아주 좋다.

무화과는 섬유질이 많은 과일이라 대장 운동을 증가시켜 변비 해결에 효과적이고 단백질을 분해하는 효소가 있어서 소화기관 개선에 도움을 준다.

또한 칼슘, 마그네슘도 함유되어 있어 골다공증 예방과 뼈 건강에도 좋으며, 칼륨이 풍부해 혈압을 안정적으로 조절하고 나쁜 콜레스테롤 수치를 감소시켜 혈관 건강에 유익하다.

특히 무화과는 여성들에게 굉장히 좋은 과일로 알려져 있다. 노화를 늦추는 항산화 성분, 비타민C가 함유돼 중성지방을 제거하고 피부 미용에 도움이 되며, 여성 호르몬 분비를 증가시키는 '보론' 성분이 있어 여성 호르몬의 균형 유지에 긍정적인 효과를 준다.

지중해 연안 지역에서는 채소, 과일, 생선, 유제품, 곡물 등의 좋은 식재료를 중심으로 식사를 하는데 이를 지중해식 식단이라고 한다. 건강식인 지중해식 식단에서 무화과는 항산화, 면역력 강화 등 건강 증진에 도움이 되는 영양소가 풍부해 중요한 재료로 여겨지고 있다.

이만큼 무화과는 여러 나라에서 건강식품으로 잘 알려져 있다.

지인이 준 무화과를 반으로 쪼개어 보니 붉은 과육이 탐스럽게 꽉 찬 것이 군침을 돌게 한다. 입에 쏙 넣어보니 너무 무르지도 않고 단단한 것이 식감도 좋아 씹는 내내 즐거움을 준다. 냄새는 또 얼마나 달달한 지 오랫동안 무화과 냄새가 입속에 남아있다.

어머니와 누나가 왜 무화과를 좋아했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이번 주에 신안 압해도에 무화과를 보러 가볼 예정이다. 돌아가신 어머니께 이 맛 좋은 무화과를 전해 드리고 싶다. 생전에 같이 먹어보지 못했던 무화과를 어머니 묘소에 가져다드리며, 그때 담벼락 아래에서 무화과를 따 먹던 그 시절의 추억을 나눠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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