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칼럼] 가을 감성과 진료실 일기

@주종대 밝은안과21병원 원장 입력 2024.11.14. 18:17



나는 보통 새벽 6시 20분 정도에 일어나서 밤 12시 30분에 취침한다. 병원 진료와 1주일에 1~2회에 바깥 모임을 제외하면 늘 같은 일상을 보낸다. 퇴근 후 저녁 식사를 마치면 1시간~1시간 30분 동안 걷기 운동을 한다. 그리고 샤워 후 밤 10시~12시까지 서재에서 독서를 하거나 일기를 쓴다. 그렇다고 매일 일기를 쓰지 않는다.

역대 가장 더운 10월을 보내면서 가을 단풍이 물드는 시기가 늦어지고 색깔도 곱지 못하다. 지구 온난화 현상으로 급격하게 기온 변화가 일어나면서 여름과 겨울이 길어지고 봄과 가을이 짧아지고 있다. 이러다가 갑자기 겨울 한파가 다가오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특히 요즘 날씨는 일교차가 심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그런데 나는 저녁 운동을 무리하게 해서인지 결국 목감기에 걸렸다. 컨디션이 좋지 못해 운동 대신 서재에서 올해 일기장을 꺼내 읽었다.

일기장을 들춰보니 2024년에는 중국어 공부를 하루에 30분씩 하기로 계획했었다. 하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내가 좋아하는 등려군의 노래를, 이백의 시를 목소리 높여 부르려고 했는데 2024년의 해의 목표는 물거품이 됐다.

10월 일기의 내용을 보니 마음이 먹먹해졌다. 나는 보통 하루에 외래환자를 40~50명 정도 진료하고 수술은 5~8건 하고 있다.

올해는 내가 병원을 개원한 지 25년이 되는 해로 그동안 나와 의료라는 인연이 맺어진 환자가 대략 수만 명이 되지 않을까 싶다.

무려 27년 동안 의사와 환자로서 수많은 사람들과 마음을 나눴다. 그런데 그 소중한 인연 속에서 만난 한 분을 10월 25일에 떠나보냈다.

나에게는 나를 낳아서 키워주신 어머니, 나를 아들처럼 사랑해 주시는 목사님 사랑과 인자함으로 나를 이끌어 주시는 스님, 세 분의 어머니가 계신다.

나는 세 분의 주치의로서 눈을 치료해 드리고 세 분은 나에게 사랑과 자비를 아낌없이 주셨다 그런데 세 번째 어머니인 스님이 돌아가셨다. 아마 그날 이후로 감기가 심해졌는지도 모르겠다.

다음 일기는 초등학교 시절 친구의 이야기다. 그 친구는 잘생겼고 공부도 1등이었던 요즘 말로 학교의 원탑이었다.

초등학교 졸업 후에는 각자의 자리에서 일하느라 바빠 연락할 틈이 없었다. 그러다가 40대가 된 후 친구가 눈이 침침해졌다며 병원을 찾아왔다.

정밀검사를한 후 친구는 백내장, 망막색소변성증을 진단 받았다.

망막색소변성증은 망막의 광수용체 세포가 손상돼 시력을 서서히 잃어가는 질환이다. 나는 이 질환에 대해서 설명했고 백내장 수술 후에 다시금 연락이 끊겼다.

15년이 지났을까? 친구가 다시 나를 찾아왔다. 옛날의 잘생긴 얼굴은 다 어디가고 핼쑥한 얼굴, 야윈 뺨, 가늘어진 몸밖에 보이지 않았다. 망막색소변성증으로 인해 시력은 다 잃어버리고 거의 실명수준이었다.

더욱이 눈 안에 염증이 생겨 통증을 호소하는 모습을 보니 차마 말을 이어갈 수가 없었다. 그동안 얼마나 삶이 힘들었을지 안타까움에 한참이나 흐르는 눈물을 감출 수가 없었다. 운명은 왜 항상 착한 사람, 의로운 사람에게 불행을 주려고 할까?

그가 겪었던 아픈 세월을 생각해보며, 치료를 해줄 수 없다는 무력감에 힘들었다. 하지만 꿋꿋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니 열렬하게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솟구쳤다.

10월의 진료 일기를 되돌아보니 슬픔, 운명, 희망이 함께 했다. 우리 모두는 삶을 '용기'내어 살아가면서 그 속에서 '희망'을 가져본다. 특히 환자분들은 우리가 가늠하지도 못하는 어떠한 힘듦, 아픔,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나는 그분들이 용기를 잃지 않고희망의 빛을 찾을 수 있도록 마음 속 깊이 기도를 해본다. 내 진심어린 기도가 조금이라도 하늘에 닿기를 바라본다.

주종대 밝은안과21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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