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석구석 섬마을 달리는 주민의 발 '천사버스'

입력 2024.09.19. 16:53 이윤주 기자
광주·전남 무상대중교통시대 열리나
3.버스공영제 성공신화 신안군
전국 첫 공영제 '대중교통 새역사'
연간 160억 상당 경제 효과 유발
6개 권역 14개 읍·면 117개 노선
교통약자·낙도 등 年 43만명 이용
불안한 시내버스에 주민 불편 가중
신안군, 버스 투입 공영제 본격화
지역소멸위기 대응 정책 지원 절실
균형발전기금

"여그(신안군)는 버스가 정말 잘 되어있제. 목포에서도 파란버스(1004공영버스)만 타믄 공짜로 태워다준께."

신안군 압해읍 압해버스대합실에서 집으로 가는 마을버스를 기다리던 주민 윤모(71)씨의 설명이다. 목포버스터미널에서 안좌를 오가는 2004번 광역버스를 타고 이곳에서 내린 윤씨는 다시 읍·면 내부를 순환하는 지선버스를 이용해 집으로 간다. 요금은 모두 무료다. 공영제로 운영중인 신안군의 버스운영정책에 따라 65세 이상 주민들에게 적용되는 혜택이다. 배차간격은 다소 있지만 이곳 주민들은 읍·면사무소에서 발급되는 교통카드를 이용해 최대 1천원만 내면 어디든 편리하고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 전국 지자체 최초로 시내버스공영제를 도입해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가고 있는 신안군의 이야기다.

◆민관 협업 공공교통서비스

신안군이 전국 지자체 최초로 도입한 '시내버스 완전공영제'는 최고의 대중교통정책으로 꼽힌다.

주민불편 해소를 위해 지자체가 나서 민영제를 공영제로 전환한 후 민관이 함께 참여하는 비영리법인 '신안군 공영버스 권역별 운영협의회'를 구성해 주민들의 이동을 지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신안군 공영버스는 14개 읍·면에 걸쳐 있는 117개 노선을 83명의 운전기사가 69대의 차량을 이용해 운행 중이다. 이곳 공영버스는 섬이 많은 지역의 특성을 고려해 총 6개 권역으로 나누어 다양한 방식으로 운행된다.

일반 공영버스는 ▲지선버스(읍·면내 운행) ▲간선버스(연륙·연도 읍·면간 운행) ▲광역버스(신안~목포 운행) 등 3가지로 구분된다.

이 가운데 가장 많은 노선을 차지하는 것이 지선버스로 111개 노선에 차량 58대가 투입된다. 간선버스는 3개 노선에 차량 4대를, 광역버스는 3개 노선에 차량 7대가 각각 운행되고 있다.

공영버스에는 섬 주민들의 선착장 이동을 위한 '낙도 공영버스'와 버스를 운행하지 않는 마을이나 버스가 없는 작은 섬까지도 24시간 오가는 '수요응답형 1004버스' 그리고 마을택시도 포함된다.

특히 지난 2019년부터 공모사업으로 운행 중인 '수요응답형 1004버스'는 노선·시간·횟수를 정하지 않고 주민들의 요청에 따라 탄력적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마을공동체가 운영주체가 돼 24시간, 응급상황시에도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신안에서도 가장 교통이 취약한 지역의 주민들까지 세심하게 고려한 공공교통서비스다.

요금은 1천원 단일요금제로, 관내에서는 65세 이상 주민과 어린이·청소년은 무료다. 시·군 경계를 벗어날 경우 구간별 요금이 적용되던 광역버스도 신안 주민들은 1천원에 이용할 수 있으며, 청소년의 경우 지난 2022년부터 '100원 요금제'를 적용해 복지혜택을 늘렸다.

외부 방문객들을 위한 대중교통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공영버스 자유이용권(1일·2일·3일권)을 발행해 1일 기준 성인 5천원, 청소년 3천원, 초등생 2천원 등 원하는 타입의 자유이용권 구입시 정해진 기간 무제한으로 자유롭게 공영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2022년부터 판매하기 시작한 자유이용권은 한 해 1만장 가량 판매될 정도 인기를 끌고 있다.

◆섬 주민 불편해소에서 출발한 교통복지

신안군 '시내버스 완전공영제'는 오롯이 섬 주민들의 교통불편 해소에서 출발했다. 국민 누구나 어디에서든 동등하게 이동권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또 고령화에 따른 복지차원의 이동성 보장에 대한 필요성도 대두되고 있었다. 지금은 전국적으로 벤치마킹이 줄을 잇는 성공사례로 인정받고 있지만, 사업 시행까지 우여곡절이 적지 않았다.

1천여개의 섬으로 이뤄진 신안군은 연륙교와 연도교가 하나둘씩 늘어나면서 군민들의 이동이나 활동량이 증가한 반면 대중교통시스템은 개선되지 않았다. 신안군 전체 면적은 1만2천654㎢로 서울시 면적의 22배 달해 버스 운행거리가 긴데다, 인구감소와 유류비 상승 등으로 비수익 노선이 늘어나며 버스업체의 누적 적자는 날로 증가했다.

이런 가운데 2005년 임자도에서 시내버스가 불규칙적인 운행되며 주민들의 불편이 커지자, 신안군은 몇 차례 행정명령을 거쳐 2007년 3월 면허취소처분 후 같은해 5월 군지정 버스 2대를 투입해 공영버스 시범운행을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박우량 신안군수의 추진력도 한몫했다. 2006년 지방선거 당시 '시내버스공영제'를 공약으로 내건 박 군수는 취임 직후 교통개선추진 전담반을 꾸리고 버스공영제 추진을 본격화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섬 주민들의 이동은 육지와 크게 달랐다.

2006년까지만 해도 야간에는 여객선이 다닐 수 없어 신안 주민들은 오후 4시30분이면 배가 끊겨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일이 태반이었다. 같은해 신안군의 요청에 해양수산부 고시를 고쳐 여객선 야간 운행은 가능해졌지만, 이제는 여객선을 타고 섬에 들어와도 야간에는 버스가 운행되지 않아 주민들은 비싼 택시를 타야만 했다. 결국 버스회사에 야간운행을 요청했지만 보조금을 두 배 올려달라는 요구에 신안군은 버스공영제 도입에 나섰다.

목포버스터미널에서 안좌로 가는 신안군 공영버스 2004번에 승객들이 오르고 있다.

실제 2007년 가장 먼저 시작된 임자도 공영버스 시범운행 효과는 기대이상이었다. 저렴한 요금과 안정적인 운행에 높은 만족도를 보인 주민들의 여론이 신안군 전역으로 급속도로 확산되며 관내 버스업체에 대한 불만이 고조됐다.

버스업체들은 감당하기 힘든 누적적자에 주민들의 압박까지 이어지자 2008~2009년 12개 업체가 차례로 면허를 반납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당시 운수업체를 보상할 수 있는 근거가 없었던데다 대부분 경영진단조차 어려운 영세업체들이어서 신안군은 업체들이 운행하던 버스 22대를 인수하는 방식으로 버스공영제를 확대해나갔다. 그리고 2013년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압해읍까지 노선을 인수하며 전국 최초 '시내버스 완전공영제' 시대를 열었다. 무려 7년에 걸쳐 이룬 결실이었다.

신안군은 기존 버스업체 및 종사자들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운전기사를 희망하는 이들은 우선 고용했으며, 농수축산 분야로 직업을 전환하고자 하는 경우는 정책적인 지원에 나섰다.

신안군 육상교통팀 김용수 팀장은 "신안군 시내버스 공영제 도입에는 단체장의 확고한 의지와 주민들의 공영제 도입 필요성 인식이 가장 큰 역할을 했다"며 "민간버스회사와 택시업체, 군 의회 등의 협조를 통해 버스공영제를 정착시킨 후 주민들의 삶의 질 개선은 물론 버스공영제 도입 필요성을 절감한 전국의 지자체에서 벤치마킹하는 수범사례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공영제는 초기 재정 부담은 크지만 노선과 배차 간격 등을 지역 실정에 맞게 조정할 수 있어 특히 농어촌에 필요한 모델이다"며 "교통약자들이 다수인 농어촌에서는 주민복지 차원에서 반드시 고민해야 할 정책이다"고 강조했다.

◆"연간 경제효과 160억+α"

올해로 시내버스 공영제 시행 16년째를 맞은 신안군은 지난 7월 '신안군 버스공영제 사업의 경제적 파급효과 분석 용역' 결과를 발표했다.

국내외 교통시설사업 성과지표 사례를 바탕으로 화폐 가치로 환산할 수 있는 9개 항목의 정량 편익 성과지표를 분석한 결과, 연간 160억 원의 경제효과와 공영제 시행 후 16년간 총 2천333억 원의 경제효과를 유발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지난해 기준 민영제와 준공영제의 재정지원 현황을 비교분석해보니 신안군은 버스 대당 7천200만 원, 민영제인 목포시는 대당 약 8천600만 원, 준공영제를 하는 광주광역시는 대당 1억 3천700만 원으로 신안군 버스공영제가 훨씬 효율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전반적인 운행여건도 크게 개선됐다.

2007년 완전 공영제 시행 전 33개였던 노선 수는 117개로, 22대던 운행 버스는 75대로 증가했다. 운전기사는 22명에서 94명으로 4배 이상 늘었으며, 운행 횟수도 평균 1일 4회에서 7회로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군 재정지원금은 5억원에서 52억원으로 10배 이상 늘었지만, 연간 이용객 역시 19만 명에서 67만 명으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무엇보다 2020년 소멸위기 고위험 지역으로 분류된 신안군에서 이같은 이용객 증가는 대중교통 정책이 소멸하는 지역의 위기대응에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반증이 됐다.

신안군 압해버스대합실

이와 함께 수익성을 이유로 들어가지 않던 오지마을이나 낙도에도 버스가 운행되며 주민들의 교통 불편이 완전히 사라진 것도 의미가 크다.

실제 초·중·고생과 65세 이상 어르신, 국가유공자, 기초대상자 등에 대한 무료이용서비스 제공과 함께 신안의 특성이 반영된 소외지역 이용객 등 교통약자 버스 이용도 289%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기준 6개 권역 무료 이용객은 40만6천187명, 13개 낙도이용객은 3만2천115명 등 연간 43만여명이 버스공영제의 혜택을 누렸다.

이밖에 군민 삶의 질 만족도 향상과 홍보 효과 등 화폐적 가치로 환산하기 어려운 정성 편익은 반영하지 않아 전체 경제적 가치는 훨씬 더 높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번 용역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버스공영제를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방안으로 제시한 것이다. 대중교통정책은 지역경제활동과 접근성, 고용기회, 사회적 연결성 등 사회적 차별을 줄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수익목적이 아닌 주민 복지향상과 이동권 보장을 위해 운영되는 시내버스공영제는 소멸위기의 기초자치단체가 아닌 정부 차원의 재정지원이 시급하다는 주장이다. 지역 경제 활성화를 통한 지역소멸 방지, 농어촌 지역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이라는 지역균형발전기금 목적에 부합한 것도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이와 관련 신안군의 경우 정부의 직접 재정지원이 아닌 버스공영제 사업자인 '신안군 공영버스 운영협의회'의 자금 조달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지역균형발전기금을 버스공영제에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김용수 팀장은 "신안군 버스공영제에는 연간 50억원 이상의 재정지원금이 소요되지만 이는 군 전체 예산의 1%로, 주민들의 삶의 질 개선은 그 이상의 효과를 보고 있다고 생각된다"며 "전국의 지자체들도 지역별로 조건이 상이하겠지만, 도시의 경쟁력과 주민들의 교통복지 향상을 위해 각각의 특성에 맞는 공영제로 전환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이윤주기자 storyboard@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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