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과 촛불, 공통점은 ‘연대’
미군장갑차부터 검찰개혁까지
2016년 국정농단 사태 폭발
노동·미투운동 등 현재진행형
1987년 민주화 이후 시민들의 분노와 가치의 폭발은 '촛불'로 타올랐다. 1987년 체제는 사회적 불만과 갈등을 해결하는 데 한계를 보이기 시작했고 1980년 5월처럼, 사람들은 거리로 나와 연대하며 싸웠다. '더는 안 되겠다' '뭐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은 사람들의 발길을 광장으로 돌려세웠다.
의정부 미군 장갑차 살인사건, 노무현 대통령 탄핵 반대, 미국산 소고기 파동, 세월호 참사, 국정농단 규탄 시위에 이르기까지. 시민들은 언제나 '불의'가 있을 때면 촛불로 세상을 밝혔다.
◆1700만, 대통령 탄핵을 이끌다
촛불은 세월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촛불은 2000년대 들어서면서 시작됐다. 첫 기록은 2002년 겨울 의정부 미군 장갑차 살인 사건이다. 2002년 한일월드컵과 겹쳐 사건 발생 당시에는 주목받지 못했으나 11월 무죄판결 소식이 알려지면서 재확산하기 시작한다. 월드컵 4강 열기가 식고, 미군이 운전하는 장갑차에 여중생이 깔려죽었다는 소식에 국민들이 공분하기 시작한 것.
특정 단체의 주도가 아닌 시민들은 스스로 거리에서 촛불을 들며 죽음을 추모하고, 분노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반대 시위, 미국산 소고기 파동, 반값 등록금 공약 논란, 국정원 여론 조작 의혹 등 사회의 굵직한 현안들이 수면위로 떠오를 때면 어김없이 시민들은 다시 거리로 나섰다.
특히 2008년 이후 보수정권인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권이 연이어 집권하면서 한계가 분명해졌다. 광우병, 메르스 사태, 세월호 참사 등은 국가의 위기관리 능력이 전무함을 여실히 보여줬다. 2016년 비선실세를 통한 권력의 사유화, 정경 유착 등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는 시민들을 폭발시킨 방아쇠가 됐고 '적폐청산'이라는 중요한 과제를 시민들에게 부여했다.
지금으로부터 약 4년 전, 2016년 10월29일 약 3만명이 광화문 광장에 나와 촛불을 켰다. 이듬해 4월29일까지 총 23차례 매주 주말이면 시민들은 전국 각지에서 광장에 나갔다.
그렇게 시작된 박근혜 정권 퇴진 촛불집회는 연인원 1천700만명, 하루 최대 232만명이 참여해 대통령 탄핵을 주도했고, 독일 에버트 인권상 수상 등 새로운 역사를 써냈다.
정태석 전북대 교수(일반사회교육학)는 '87년 체제와 시민사회 이데올로기-가치들의 변화' 논문을 통해 "촛불혁명은 87년 체제하에서 억압되어온 시민사회의 요구가 폭발로 분출된 것이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이러한 폭발에 방아쇠 역할을 했다"며 "사회체제의 전환을 요구해 온 새로운 세대와 사회적 약자들의 저항의 표출이었다. 이것은 민주적, 개혁적, 진보적 사회체제 전환을 위한 실천적 과정으로 나아가는 에너지가 될 것이다"고 평했다.
◆그럼에도 다시 광장으로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대선 국면을 맞이하면서 촛불 정국이 마무리되는 듯 보였으나 이후에도 촛불은 여전히 켜졌다.
성차별과 관습적으로 은폐됐던 남성주의적 성폭력에 저항하기 위한 미투 운동,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의 안전사고와 죽음을 계기로 촉발한 죽음을 맞서기 위한 노동운동, 검찰개혁을 둘러싼 갈등 등 우리 사회는 촛불로 나아가고 있다.
김상봉 전남대 교수(철학)는 저서 '네가 나라다-세월호 세대를 위한 정치철학'을 통해 "5·18은 타인의 고통에 응답한 사건이고 우리의 삶의 방식도 그래야 한다"며 "세월호를 통해 국가가 나를 책임져주지 않는 일을 경험했다. 일상의 삶에서 곤경과 직접적 상관이 없는 사람들에 곤경에 처한 동료를 위해 공공연히 말해야 한다. 사회적 연대가 필요하다는 뜻이고, 울창한 수풀의 나무들처럼 같이 폭풍우를 이겨낼 의리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김성희기자 pleasure@srb.co.kr
- 갈수록 걱정되는 5·18 조사위 종합보고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광주전남지부와 광주시의회 5·18특별위원회 등이 지난 25일 오후 광주 서구 쌍촌동 5·18기념문화센터 대동홀에서 '5·18조사위 보고서 평가 간담회를 열고 5·18조사위가 내놓은 직권조사 과제별 조사결과 보고서를 평가하고 있다. 임정옥기자 joi5605@mdilbo.com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작성 중인 종합보고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잘못 알려진 5·18 역사를 바로잡아 왜곡과 폄훼를 근본적으로 막는 수단이 돼야 할 보고서에 5·18의 역사적 배경이나 성격 등이 일절 담기지 않았기 때문이다.27일 5·18조사위에 따르면 5·18조사위는 오는 6월26일까지 대정부 권고안이 담긴 종합보고서를 발간해 대통령실과 국회에 보고한다.5·18 진상규명 특별법 제34조에 '활동이 종료될 경우 6개월 이내에 위원회의 활동 전체를 내용으로 하는 종합보고서를 작성해 보고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어서다.5·18조사위는 대통령실과 국회에 보고를 마친 뒤 종합보고서와 함께 진상규명 의결서, 백서를 공개할 예정이다.또 지난 4년간의 공식 조사 활동 기간 확보한 진술과 수집한 사진·영상 등 모든 자료는 국회 동의를 얻어 국가기록원으로 이관할 계획이다.그러나 작성 완료 기간이 석 달 앞으로 다가왔지만 종합보고서의 구성이 여전히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전체 1천400쪽 분량의 종합보고서는 제1장 총론(200쪽), 제2장 계엄군의 진압작전(200쪽), 제3장 민간인 희생(350쪽), 제4장 인권탄압사건(300쪽), 제5장 북한개입설(100쪽), 제6장 진상규명 불능 과제(250쪽) 순으로 구성됐다.하지만 보고서 어디에도 5·18이 일어나게 된 역사적 배경과 성격, 진상규명을 시작하게 된 이유, 진상규명이 갖는 의의에 대한 서술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반면 국내 대표적인 민주화운동 중 하나인 부마민주항쟁의 진상조사보고서에는 '유신체제에 대항해 발생한 민주화운동', '유신체제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저항의식 확산' 등 항쟁의 역사적 배경과 '유신체제의 종말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민주화운동'이라는 의의가 자세히 담겨있다.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에도 8·15 광복 전후 제주도의 상황이나 제주도의 지리적 특성, 4·3사건의 도화선이 된 3·1사건에 대한 내용이 구체적으로 서술돼 있다.이와 관련 정다은 광주시의회 5·18특별위원회 위원장은 "제1장 총론에 위원회의 설립과정, 조직·예산·연도별 조사 활동, 대정부 권고안이 담기는 데 사실 설립과정이나 조사 활동은 백서에나 들어갈 내용이다"며 "5·18에 대한 왜곡과 폄훼를 근본적으로 막기 위해서는 5·18이 일어나게 된 배경과 성격, 5·18이 갖는 의의를 종합보고서에 싣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지적했다.이어 "5·18조사위의 종합보고서가 새로운 왜곡·폄훼의 근거가 될 것 같아 심각하게 걱정된다"며 "지금이라도 종합보고서를 바로 잡을 수 있도록 초안을 신속하게 공개하고 의견을 수렴하길 바란다"고 말했다.박승환기자 psh0904@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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