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혹한 역사적 사실에 대한
심리적 저항감을 인정하면서
조금씩 부수는게 예술이고
살아남은 자들의 몫이다
창작뮤지컬의 강점을 최대한 살려
'춤추고 노래하고 사랑하는'
주제에 집중했다"
뮤지컬 '광주' 고선웅 예술감독 대담
2019년 5·18 40주년을 기념해 광주시와 광주문화재단이 대대적으로 추진한 뮤지컬 '광주'가 3년차를 맞아 보다 완숙하고 세련된 감각으로 관객을 만났다. 40년이 넘도록 1980년 광주를 기리는 내로라할만한 공연예술작품 하나 없는 현실에서 의욕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광주'가 80년 오월을 상징하는 대표적 작품으로 자리잡아갈 수 있을지 고선웅 예술감독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광주'의 브랜드작품으로서의 가능성 등 향후 기대감 등을 살펴봤다.
"1980년 5월 광주는 평범한 보통사람들이 불의에 분연히 항거해 새로운 역사를 써가고 있다는 점에서 '광주'라는 특정 공간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 보편의 이야기입니다. 뮤지컬 '광주'는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 국민은 물론 세계시민이 함께 공감하고 감동할 지대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1980년 광주를 소재로 한 뮤지컬 '광주'의 고선웅 예술감독은 "뮤지컬 '광주'가 시간을 갖고 지속적으로 전개돼 광주를 생각하고 시대를 생각하는 브랜드로 커가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1980년 광주라는 역사적 사실, 역사의 참혹성 때문에 대중성에 부담이 되지는 않았나
▲다소 부담은 있지만 역설적으로 그 점에서 훨씬 더 가능성이 크다. 지금도 응어리와 한이 안풀릴 분들이 많을거고 여전히 왜곡되고 여전히 계속되는 현재 진행형을 풀어가는 방식이다. 심리적 저항감을 인정하면서 조금씩 부수는게 예술이고 살아남은 자들의 몫이다.
한 도시에서 벌어진 얼토탕도 않은 이야기, 그들의 희생으로 우리가 잘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포지티브한 지점으로 연결하는데 노력했다. 창작뮤지컬의 강점을 초대한 살려 '춤추고 노래하고 사랑하는' 주제에 집중했다.
다른 한편 허구가 진실을 보강할 수 있도록 음악이나 무대 장치 등에 엄청난 공을 들였다.
-연장선에서 대중성 확보, 인기 있는 공연작품으로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가
▲대중성, 보편성을 확신한다. 정치적 현실을 떠나 보통사람도 납득할 수 있는 공감지대가 얼마든지 있고 그게 바로 창작뮤지컬의 힘이다.
시간이 지나야하고 저변이 확대되고 서사가 확장되면 시간이 걸려도 뮤지컬 '광주'는 광주이야기를 담은, 재미있는 뮤지컬로 자리잡아갈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특히 공을 들인 부분은 '이미 너무 알려진(듯)한, 알고 있는 듯한 정서적 편견의 한계를 벗어나는 일이다. 미장센이나 음악, 조명, 영상, 대본의 밀도를 보강해가면 이야기에 빠져 광주를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또 1980년 광주는 70∼80년대 제3세계 독재국가에서 벌어진 수많은 사건들과 비슷하고 결은 다르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를 얼마나 예술적으로 승화시켜 관객이 보통의 정서로 받아들이느냐 하는 점인데 서울과 타 지역의 관객 반응이 좋아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서울 등 전국 순회공연 과정에서 관객 반응은 어땠나
▲전국 공연에서 공감하는 기립박수가 많았고 특히 아이들을 데리고 온 가족 관람객의 반응이 좋았다. 재미있는 것은 주된 관객이 우파도 좌파도 아닌 평범한 보통의 시민들이고 서울의 경우 재관람 등이 이어지고 있다. 아이들과 함께 온 부모들이 '좋은 연극 보고간다'는 반응 등에서 성공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
-작품의 주된 관점,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나
▲우리가 오늘 이렇게 편하게 사는데는 누군가의 희생이 있었다는 사실, 그들 덕분이라는 사실을 함께 공감해보자는데 포커스를 뒀다. 작게는 광주시민들이 폭도가 아니라는 이야기, 평화로웠던 사람들이 왜 저항했는지, 강경진압이 문제라는 사실을 설득력있게 풀고 싶었다.
5·18을 직접 겪지 않았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서 민간인 학살을 보며 광주에서도 저랬겠구나 싶고, 저들은 적국이지만 광주에서 어떻게 자국민에게 총부리를 겨눴을까 싶지만 달리 생각하면 피아로 구별되면 온갖 악행이 저질러 질 수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자국민을 상대로 실탄사격과 헬기 기총사격을 하고 말할 수 없는 유린이 있었는데도 세대가 바귀어도 여전히 빨갱이라고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전두환씨가 확실하게 사과를 하고 인정을 하고 갔으면 5·18을 기념하고 추념하고 축제를 만들 수 있고, 민주주의가 이룬 이룬 성과로 축적해 갈 수도 있을 텐데 여전히 전두환씨로 상징되는 세력이 존속해있어 상처고 아픔인 현실이 속상하다.
-이번 광주 공연를 비롯해 작품을 제작하면서 어떤 부분에 특별히 공을 들였나
▲자칫 '광주에서 큰 일이 벌어졌고 광주사람들이 많은 피해를 입었다더라'라는 한계에 함몰되면 '안됐네'라는 동정에서 더 이상 나가지 못한다. 심지어 불편해할 수 도 있는 위험성이 있다.
타인의 불행에 처음에는 안쓰러워하다가 나중에는 '불편'해하고 '귀찮아'하는, 심지어 이를 공격의 빌미로 삼는 행태는 비단 극단주의자들만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예술은 이 지점을 넘어서야한다.
이를 뛰어넘어 보편의 정서로 다가가는게 중요하다. 이를위해 '광주'를 3자적 시각, 보통 사람들의 시선과 그들의 삶 속에서 공감하는데 집중했다.
-비극을 최고의 예술작품으로 탄생시킨 예는 많다. 프랑스 혁명기 소시민의 삶을 다룬 '레미제라블'이나 베트남전을 소재로한 세계적인 뮤지컬 '미스 사이공'이 클래식으로 사랑받는다는 점에서 '광주'도 전혀 먼 이야기만은 아니다. 다만 '미스 사이공' 등이 대규모의 문화자본이 투입됐다는 점을 생각하면 아직 먼 나라이야기이기도하다.
▲불편한 진실, 본질이 대중의 인식 속에서 들어가려면 시간과 투자가 필요하다. 브랜드로, 클래식으로 자리잡아가기 위해서는 시간과 투자, 지속성이 요구된다.
'광주'를 스펙타클한 서사로 선보이기 위해서는 브로드웨이급은 안되더라도 중급규모의 무대로 관객을 만날 때 보다 확장성이 크다는 점에서 한정된 예산이 아쉽다. 여기에 배우 캐스팅에도 애로가 많았다. 광주 이야기를 하면 운동권화돼 있다는 편견, 편향적 인식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기획사에서 부담스러워해 배우 캐스팅이 쉽지 않았다. 문화계를 지배하는 블랙리스트 경험도 있다.
대부분 지자체가 어떤 기획성 공연을 무대에 올릴 경우 1회성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은데 3년을 이끌어온 광주시와 문화재단의 의지가 대단하다.
-바람이 있다면
▲많은 분들이 관람해서 '광주'가 보통의 이야기로 다가가면 좋겠다. 1980년 5월의 참과 거짓에 대한 입장을 모르거나 무시했던 분들이 관심을 갖고 보다 더 많이 회자될 때 민주주의 뿌리가 윤택해지고 활성화되고 발전하는 계기가 되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뮤지컬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그런 부분에 조금이라도 기여하면 좋겠다는 바람이 담겼다. 광주시민들에게는 너무 익숙해서 궁금하지 않을수도 있지만 창작 뮤지컬은 또 전혀 다르게 광주를 만날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시민들이 보고 광주에서 가장 큰 사랑을 받으면 좋겠다. 학생들 집단 관람도 생각해 볼 수 있는 방안 중 하나다.
-끝으로 신문방송학과 출신으로 연극계의 마이다스 손으로 활동하고 있다. 고민 많은 청년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청년들에게 한마디 들려달라.
▲하고 싶은 건 꼭 하라. 고민하지 말고 뭐든지 해봐라. 생각나는 그것을 지금해라. 연극에서 배운거는 지금 그걸 하는 방법밖에 없다. 망설일 시간이 없다.
▶못다한 이야기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도리'는 그들의 희생에 함께 하지 못했던 '평범한 소시민'들의 도리이기도 하다.
경기도가 고향인 고 감독은 초등학생 때 '광주사태'를 만났다. 어른들 누구도 제대로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고 당시 뉴스에서 광주는 '폭도'로 그려졌고, 티비도 부정적인 스틸사진이나 보여줬다. '광주시민들의 억울함과 답답함'에 대한 간접 체험을 회고한다. 고교시절을 광주에서 보냈고 전남대 출신 누나 등 가족이 광주와 전남에 터전을 잡고 있다.
고선웅은 2005년 극공작소 마방진을 창단하고 연극계의 흥행연출로 부상했다. 뮤지컬 '백만송이의 사랑', 연극 '푸르른 날에' 창극 '귀토 토끼의 팔란' 등 수많은 히트작을 냈다. 지난 2019년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5·18 40주년 기념으로 제작한 '나는 광주에 없었다'의 작가 겸 연출로도 참여하며 광주의 진실을 이야기하는데 각별한 애정이 있다.
대담=조덕진논설실장·정리=이경원기자 ahk7550@mdilbo.com
- 전두환 미화 합천 '일해공원' 명칭 변경하자...광주도 가세 경남 합천군 일해공원에 세워진 표지석 뒷부분. '이 공원은 대한민국 제12대 전두환 대통령이 출생하신 자랑스러운 고장임을 후세에 영원히 기념하고자 대통령의 아호를 따서 일해공원으로 명명하여 이 표지석을 세웁니다'라는 글이 전두환씨의 친필로 새겨져 있다. 5·18기념재단 제공 5·18민주화운동 학살의 주범으로 꼽히는 전두환씨를 미화한 경남 합천군 '일해(日海)공원'의 명칭을 다시 변경하기 위해 광주 지역사회도 힘을 모으고 있다.5·18기념재단은 오는 12일 12·12 군사반란일에 맞춰 5·18단체 및 광주지역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일해공원을 방문하는 것을 추진하고 있다고 3일 밝혔다.일해공원은 지난 2004년 8월 합천군이 68억원 들여 조성한 공원이다. 조성 당시 이름은 '새천년 생명의 숲'이었으나, 2007년 1월19일 합천군 군정조정위원회가 합천군 출신인 전두환씨의 아호 '일해'를 따서 이름을 일해공원으로 변경했다.일해공원에 세워진 표지석에는 앞부분에 일해공원이라는 명칭이, 뒷부분에는 '이 공원은 대한민국 제12대 전두환 대통령이 출생하신 자랑스러운 고장임을 후세에 영원히 기념하고자 대통령의 아호를 따서 일해공원으로 명명하여 이 표지석을 세웁니다'라는 글이 전두환씨의 친필로 새겨져 있다.합천군은 현재까지 일해공원이라는 명칭을 고시하지 않고 임의로 사용하는 중이다.이 때문에 17년째 공원 명칭을 놓고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합천군 시민·사회단체 10곳이 지난 2019년부터 '생명의 숲 되찾기 합천군민운동본부(이하 운동본부)'를 결성하고 명칭 변경 활동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지만, 지역사회 이해관계 때문에 공론화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경남 합천군 일해공원에 세워진 표지석 앞부분. 일해공원이라는 명칭이 전두환씨의 친필로 새겨져 있다. 5·18기념재단 제공실제 2021년 12월에는 운동본부가 '생명의 숲으로 이름을 돌려달라'는 내용의 청원을 접수하자 이를 반대하는 일부 주민들이 공원 명칭 변경 불가 청원서를 제출하는 맞불을 놨다.또 이듬해에는 '합천군 일해공원 지명위원회'가 2차례 열렸으나 명칭 변경 결정이 모두 보류됐으며, 지난해 6월 다시 열린 지명위원회에서 명칭 변경이 부적합하다고 결론이 나왔다. 지난 7월에도 문제 해결을 위해 주민 공론화를 추진했으나 실패했다.운동본부는 지난달 15일에도 국민동의청원 홈페이지에 "중대한 범죄를 저질러 사법부로부터 유죄선고를 받은 자에 대해서는 기념물을 조성할 수 없도록 법률을 제정해달라"는 내용의 청원서를 올렸다. 청원이 받아지려면 등록 30일째인 오는 15일까지 5만명 이상 동의해야 하지만 이날 오후 5시 기준 8천659명만 동의했다. 이에 재단은 일해공원 명칭 변경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이번 방문을 결정했다.현재 5·18 공법 3단체(유족회·부상자회·공로자회), 광주시민단체협의회, 광주진보연대, 광주전남대학민주동우회협의회, 5·18민중항쟁기념행사위원회 등 80여명이 참석할 예정이다.구체적인 일정이 잡힌 것은 아니지만 일해공원에 도착해 운동본부와 함께 국민들에게 청원을 독려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합천군청으로 이동해 군청 앞에 심어진 전두환씨 기념식수를 제거하는 퍼포먼스를 펼칠 계획이다. 합천군에 항의서한 전달도 검토 중이다.재단 관계자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전두환씨는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예우를 받을 수 없고 받아서도 안 된다. 합천군은 출생지역이라는 이유로 그(전두환)를 미화하기보다 그가 저지른 범죄를 기억해야 한다"며 "굴곡진 역사를 곧게 펴지 않으면 생각지도 못한 사이 퇴행의 싹을 틔우게 된다. 일해공원 명칭 변경을 위한 청원에 함께 해주길 바란다"고 호소했다.박승환기자 psh0904@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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