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은 인류 보편의 이야기···'광주'는 세계적 공감지대"

입력 2022.05.15. 16:30 조덕진 기자
뮤지컬 '광주' 고선웅 예술감독 대담
"참혹한 역사적 사실에 대한
심리적 저항감을 인정하면서
조금씩 부수는게 예술이고
살아남은 자들의 몫이다
창작뮤지컬의 강점을 최대한 살려
'춤추고 노래하고 사랑하는'
주제에 집중했다"



뮤지컬 '광주' 고선웅 예술감독 대담



2019년 5·18 40주년을 기념해 광주시와 광주문화재단이 대대적으로 추진한 뮤지컬 '광주'가 3년차를 맞아 보다 완숙하고 세련된 감각으로 관객을 만났다. 40년이 넘도록 1980년 광주를 기리는 내로라할만한 공연예술작품 하나 없는 현실에서 의욕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광주'가 80년 오월을 상징하는 대표적 작품으로 자리잡아갈 수 있을지 고선웅 예술감독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광주'의 브랜드작품으로서의 가능성 등 향후 기대감 등을 살펴봤다.


"1980년 5월 광주는 평범한 보통사람들이 불의에 분연히 항거해 새로운 역사를 써가고 있다는 점에서 '광주'라는 특정 공간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 보편의 이야기입니다. 뮤지컬 '광주'는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 국민은 물론 세계시민이 함께 공감하고 감동할 지대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1980년 광주를 소재로 한 뮤지컬 '광주'의 고선웅 예술감독은 "뮤지컬 '광주'가 시간을 갖고 지속적으로 전개돼 광주를 생각하고 시대를 생각하는 브랜드로 커가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1980년 광주라는 역사적 사실, 역사의 참혹성 때문에 대중성에 부담이 되지는 않았나

▲다소 부담은 있지만 역설적으로 그 점에서 훨씬 더 가능성이 크다. 지금도 응어리와 한이 안풀릴 분들이 많을거고 여전히 왜곡되고 여전히 계속되는 현재 진행형을 풀어가는 방식이다. 심리적 저항감을 인정하면서 조금씩 부수는게 예술이고 살아남은 자들의 몫이다.

13일 광주 빛고을문화재단서 고선웅 감독과 대담을 진행했다.

한 도시에서 벌어진 얼토탕도 않은 이야기, 그들의 희생으로 우리가 잘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포지티브한 지점으로 연결하는데 노력했다. 창작뮤지컬의 강점을 초대한 살려 '춤추고 노래하고 사랑하는' 주제에 집중했다.

다른 한편 허구가 진실을 보강할 수 있도록 음악이나 무대 장치 등에 엄청난 공을 들였다.

-연장선에서 대중성 확보, 인기 있는 공연작품으로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가

▲대중성, 보편성을 확신한다. 정치적 현실을 떠나 보통사람도 납득할 수 있는 공감지대가 얼마든지 있고 그게 바로 창작뮤지컬의 힘이다.

시간이 지나야하고 저변이 확대되고 서사가 확장되면 시간이 걸려도 뮤지컬 '광주'는 광주이야기를 담은, 재미있는 뮤지컬로 자리잡아갈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특히 공을 들인 부분은 '이미 너무 알려진(듯)한, 알고 있는 듯한 정서적 편견의 한계를 벗어나는 일이다. 미장센이나 음악, 조명, 영상, 대본의 밀도를 보강해가면 이야기에 빠져 광주를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또 1980년 광주는 70∼80년대 제3세계 독재국가에서 벌어진 수많은 사건들과 비슷하고 결은 다르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를 얼마나 예술적으로 승화시켜 관객이 보통의 정서로 받아들이느냐 하는 점인데 서울과 타 지역의 관객 반응이 좋아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뮤지컬 '광주'가 광주 빛고을시민문화관서 14일부터 이틀간 공연을 진행한다. 사진은 뮤지컬 '광주' 공연사진. 광주 문화재단 제공

-서울 등 전국 순회공연 과정에서 관객 반응은 어땠나

▲전국 공연에서 공감하는 기립박수가 많았고 특히 아이들을 데리고 온 가족 관람객의 반응이 좋았다. 재미있는 것은 주된 관객이 우파도 좌파도 아닌 평범한 보통의 시민들이고 서울의 경우 재관람 등이 이어지고 있다. 아이들과 함께 온 부모들이 '좋은 연극 보고간다'는 반응 등에서 성공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

-작품의 주된 관점,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나

▲우리가 오늘 이렇게 편하게 사는데는 누군가의 희생이 있었다는 사실, 그들 덕분이라는 사실을 함께 공감해보자는데 포커스를 뒀다. 작게는 광주시민들이 폭도가 아니라는 이야기, 평화로웠던 사람들이 왜 저항했는지, 강경진압이 문제라는 사실을 설득력있게 풀고 싶었다.

5·18을 직접 겪지 않았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서 민간인 학살을 보며 광주에서도 저랬겠구나 싶고, 저들은 적국이지만 광주에서 어떻게 자국민에게 총부리를 겨눴을까 싶지만 달리 생각하면 피아로 구별되면 온갖 악행이 저질러 질 수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자국민을 상대로 실탄사격과 헬기 기총사격을 하고 말할 수 없는 유린이 있었는데도 세대가 바귀어도 여전히 빨갱이라고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전두환씨가 확실하게 사과를 하고 인정을 하고 갔으면 5·18을 기념하고 추념하고 축제를 만들 수 있고, 민주주의가 이룬 이룬 성과로 축적해 갈 수도 있을 텐데 여전히 전두환씨로 상징되는 세력이 존속해있어 상처고 아픔인 현실이 속상하다.

-이번 광주 공연를 비롯해 작품을 제작하면서 어떤 부분에 특별히 공을 들였나

▲자칫 '광주에서 큰 일이 벌어졌고 광주사람들이 많은 피해를 입었다더라'라는 한계에 함몰되면 '안됐네'라는 동정에서 더 이상 나가지 못한다. 심지어 불편해할 수 도 있는 위험성이 있다.

타인의 불행에 처음에는 안쓰러워하다가 나중에는 '불편'해하고 '귀찮아'하는, 심지어 이를 공격의 빌미로 삼는 행태는 비단 극단주의자들만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예술은 이 지점을 넘어서야한다.

이를 뛰어넘어 보편의 정서로 다가가는게 중요하다. 이를위해 '광주'를 3자적 시각, 보통 사람들의 시선과 그들의 삶 속에서 공감하는데 집중했다.

-비극을 최고의 예술작품으로 탄생시킨 예는 많다. 프랑스 혁명기 소시민의 삶을 다룬 '레미제라블'이나 베트남전을 소재로한 세계적인 뮤지컬 '미스 사이공'이 클래식으로 사랑받는다는 점에서 '광주'도 전혀 먼 이야기만은 아니다. 다만 '미스 사이공' 등이 대규모의 문화자본이 투입됐다는 점을 생각하면 아직 먼 나라이야기이기도하다.

▲불편한 진실, 본질이 대중의 인식 속에서 들어가려면 시간과 투자가 필요하다. 브랜드로, 클래식으로 자리잡아가기 위해서는 시간과 투자, 지속성이 요구된다.

'광주'를 스펙타클한 서사로 선보이기 위해서는 브로드웨이급은 안되더라도 중급규모의 무대로 관객을 만날 때 보다 확장성이 크다는 점에서 한정된 예산이 아쉽다. 여기에 배우 캐스팅에도 애로가 많았다. 광주 이야기를 하면 운동권화돼 있다는 편견, 편향적 인식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기획사에서 부담스러워해 배우 캐스팅이 쉽지 않았다. 문화계를 지배하는 블랙리스트 경험도 있다.

대부분 지자체가 어떤 기획성 공연을 무대에 올릴 경우 1회성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은데 3년을 이끌어온 광주시와 문화재단의 의지가 대단하다.

-바람이 있다면

▲많은 분들이 관람해서 '광주'가 보통의 이야기로 다가가면 좋겠다. 1980년 5월의 참과 거짓에 대한 입장을 모르거나 무시했던 분들이 관심을 갖고 보다 더 많이 회자될 때 민주주의 뿌리가 윤택해지고 활성화되고 발전하는 계기가 되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뮤지컬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그런 부분에 조금이라도 기여하면 좋겠다는 바람이 담겼다. 광주시민들에게는 너무 익숙해서 궁금하지 않을수도 있지만 창작 뮤지컬은 또 전혀 다르게 광주를 만날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시민들이 보고 광주에서 가장 큰 사랑을 받으면 좋겠다. 학생들 집단 관람도 생각해 볼 수 있는 방안 중 하나다.

-끝으로 신문방송학과 출신으로 연극계의 마이다스 손으로 활동하고 있다. 고민 많은 청년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청년들에게 한마디 들려달라.

▲하고 싶은 건 꼭 하라. 고민하지 말고 뭐든지 해봐라. 생각나는 그것을 지금해라. 연극에서 배운거는 지금 그걸 하는 방법밖에 없다. 망설일 시간이 없다.

▶못다한 이야기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도리'는 그들의 희생에 함께 하지 못했던 '평범한 소시민'들의 도리이기도 하다.

경기도가 고향인 고 감독은 초등학생 때 '광주사태'를 만났다. 어른들 누구도 제대로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고 당시 뉴스에서 광주는 '폭도'로 그려졌고, 티비도 부정적인 스틸사진이나 보여줬다. '광주시민들의 억울함과 답답함'에 대한 간접 체험을 회고한다. 고교시절을 광주에서 보냈고 전남대 출신 누나 등 가족이 광주와 전남에 터전을 잡고 있다.

고선웅은 2005년 극공작소 마방진을 창단하고 연극계의 흥행연출로 부상했다. 뮤지컬 '백만송이의 사랑', 연극 '푸르른 날에' 창극 '귀토 토끼의 팔란' 등 수많은 히트작을 냈다. 지난 2019년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5·18 40주년 기념으로 제작한 '나는 광주에 없었다'의 작가 겸 연출로도 참여하며 광주의 진실을 이야기하는데 각별한 애정이 있다.

대담=조덕진논설실장·정리=이경원기자 ahk7550@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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