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군사시설 표기된 광주비행장 지도 공개
대부분 쓰레기·시멘트에 막혀…대책 세워야

광주 도심 곳곳에서 일제강점이 일본군이 조성한 대규모 지하 군사시설이 발견되고 있는 가운데 서구 쌍촌동에 위치한 5·18기념공원에 일제지하시설이 존재한다는 자료가 공개됐다.
현재까지 파악된 것만 십수개에 달하는 광주 도심 지하 일제 군 시설들이 대부분 접근이 어렵고 현황파악이 되지 않고 있는 만큼 철저한 조사를 통해 침탈의 역사를 후대에 알리는 다크투어리즘(역사교훈여행) 등과 연계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회관은 28일 오후 광주지역에 남아있는 일제 군 시설의 역사와 활용방안을 논하는 세미나 '숨어있는 광주역사 : 일제와 상무 비행장'을 열었다. 이번 세미나는 광주학생독립 제93주년 기념일(매년 11월3일)을 앞두고 마련됐다.
세미나에서는 신주백 전 독립기념관 독립운동사연구소장이 첫 번째 발제자로 나서 2015년 일본 방위성에서 발굴한 1940년대 광주비행장 지도를 공개하며 광주 서구 일대에 탄약고 3개와 유류고 4개가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신 전 소장은 "일제는 1939년 광주와 경성을 잇는 비행장을 조성했고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뒤 1942년 군용비행장으로 재편했다"며 "미군의 폭격이 있는 일본 본토를 피해 광주에서 안정적으로 비행기 조종사를 양성하려는 목적이었다"고 설명했다.
비행장 부속시설은 모두 18개로 지하시설은 7개였다. 3개는 탄약과 폭탄을 보관했고, 4개는 연료창고였다. 서구 벽진동 사월산, 화정동 학생독립운동기념회관 인근, 쌍촌동 중앙공원, 5·18역사공원 제1주차장(505보안대), 5·18기념공원, 천주교 광주대교구, 광주가톨릭대학 평생교육원 터 등이다.

신 전 소장은 6곳은 존재가 확인됐지만 5·18기념공원에 있던 비행장 지휘소는 콘크리트로 매립돼 위치를 확인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는 비행장 지도와 공원에 남아 있는 옛 물탱크 흔적 등을 근거로 지휘소는 지금의 단성전 자리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또 인근에 소형비행기가 이용할 수 있는 활주로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했다.
또 광주지역의 일제 군사시설 상당수가 일제강점기 이후에도 한국군과 주한미군에 의해 그대로 사용돼 왔다고 주장했다.
신 전 소장은 "부산과 영동은 일제 지하시설을 와인저장고와 관광지로 활용하고 있다"며 "광주도 지휘소, 활주로 등에 안내판을 설치하는 등 보전, 활용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국언 (사)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대표는 '광주지역 아시아·태평양전쟁 유적 현황 및 역사문화자산 활용 방안' 발표에서 "지금까지 광주에서 발견된 일제 군 시설들은 대부분 시멘트나 쓰레기로 입구가 막혀 방치돼 있다"며 "군 시설들을 탐방 코스나 역사교육장으로 활용할 수 있다. 시설들을 역사문화 거점으로 만들기 위한 보존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당부했다.
안혜림기자 wforest@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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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국사관대생 광주서 한달살이 시작
일본국사관대학교 21세기 아시아학부 학생들이 20년째 전남대학교를 찾아 광주 민주화운동과 한국 문화 등 교류 체험을 하고 있다.신경호교수(맨 오른쪽 )와 아시아학부 학생들이 지난 4일 전남대학교 언어교육원 입소식을 갖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신경호 교수 제공
지난 4일 전남대학교 영명홀에 60여명의 일본인 학생들이 좌석에 앉아 행사를 진행했다. 1달간의 일정으로 언어교육원에 입소식을 하는 날이었다. 이들의 얼굴에는 광주라는 낯선 곳에서 한달살이를 하는 기대와 설렘으로 들뜬 표정이 가득했다. 지난 3일 오전 6시30분 일본 동경 하네다공항에서 집결, 출발해 11시간30분만에 도착한 광주에서 하룻밤을 맞은 생활이 실감나지 않았다. 이들은 일본 동경에 있는 국사관대학교 21세기 아시아학부생 56명이었다. 1학년부터 3학년으로 구성된 방문단은 한국, 정확히는 광주를 알기위해 자비를 들여 찾아온 손님이었다. 이들은 오는 26일까지 전남대학교와 광주 일원, 여수, 천안 등지에서 한국어 수업과 광주향교 다도 한복체험, 한국음식만들기 K팝댄스, 태권도, 영화 ‘택시운전사’ 관람, 5·18국립묘지와 전일빌딩 245빌딩 방문, 5·18민주화특강, 야경크루즈, 독립기념관 방문 등 일정을 소화한다. 한국어수업이 중심이고, 문화체험 뿐만 아니라 한일관계 굴절의 역사를 돌아보는 현장도 빠지지 않는다. 이들의 광주행은 처음이나, 국사관대학교와 전남대학교와의 인연은 20년전부터 이어지고 있다. 코로나19 팬더믹 시기에도 영상으로 소통을 해올만큼 진정성은 빛난다. 국사관대학은 전남대 뿐만 아니라 고려대, 한양대, 안동대, 동의대 등과 협정을 통해 1년에 두차례씩 지속적 교류를 해오고 있다.전남대와 국사관대학 교류의 중심에는 신경호교수가 있다. 1963년 고흥출신으로 여수와 광주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녔고, 고교 2학년때 광주민주화운동을 겪었던 신교수는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때가 1983년. 전두환 정권이고, 여행자율화가 아니어서 외국, 특히 일본유학은 쉽지 않았다. 우여곡절을 거쳐 전남도청에서 여권을 발급받아 현해탄을 건넜다. 동경에 소재한 일본대학 법학부 학사와 석사, 박사를 취득하고 2002년부터 국사관대학 부교수로 취임했다. 외국인이 일본에서 학위를 통과하는 것은 결코 넓은 문이 아니었다. 청운의 꿈을 안고 온 일본의 높은 벽 앞에서 그냥 좌절할수 없었다. 그의 마음속에 자리잡은 한일교류의 밀알이 되고 싶은 꿈을 펼쳐보고 싶다는 의지가 힘들수록 더욱 그를 강하게 추동했다. 각고의 노력으로 학사,석사,박사 과정을 마치고 시간강사와 전임강사를 거쳐 19년만에 부교수가 됐다. 부교수가 되면서 그의 마음속에 똬리를 틀고 있던 한일교류의 의지를 끄집어냈다. 시간강사때에도 국내대학과 학생 교류에 나섰지만, 더욱 보폭을 넓혔다. 그는 한일양국 젊은이들의 문화교류가 가져올 무한한 힘을 신뢰했다.“한류의 출발점은 동경이었습니다. 일본의 젊은이들이 보아, BTS, 블랙핑크에 열광하며 드라마, 음악 등이 공유하고 소통하게됐습니다. 결국 한류는 중국을 거쳐 동남아로 뻗어나가 한국 문화의 힘을 실감하고 있습니다.”신교수는 이러한 신념으로 20년째 국사관대학생들의 한국 방문을 기획하고 추진해오고 있는 것이다. 특히 신교수는 광주전남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일본의 고대국가를 만드는데 백제인들이 지대한 공헌을 했고, 광주는 민주주의도시이자 문화가 발전된 도시로서, 정치와 문화의 모델로서 자긍심이 높다.국사관대학이 전남대와 20년째 교류를 갖는 가장 큰 이유이다. 최근의 경우 지난해 2월 국사관대 학생 62명이, 이해 8월에는 27명이 광주의 추억을 간직했다.“요즘 젊은이들은 SNS와 인터넷 활동이 굉장히 활발해 시공간에 관계없이 각 나라 도시의 정보를 알수 있다”는 신교수는 “일본 젊은이들이 청춘의 황금기를 광주에서 한 달을 산 것은 이들의 기억속에 소중한 잠재의식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고 높이 평가했다.그렇기에 앞으로 한일관계도 기성세대들보다 훨씬 나아질 것이라는 것이 신교수의 확신이다. 신교수는 "이번에 방문한 학생들이 30,40대가 돼 한 달간 언어를 배웠던 광주를 다시 와보고 싶은 기억에 남을 만한 소중한 공간으로 꿈꾸게 될 것이다"고 희망을 보였다. 신교수는 한일양국의 젊은이들이 만들어갈 미래가 더욱 궁금해진다고 웃었다.이용규기자 hpcyglee@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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