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5·18묘지 '묫자리' 선점, 광주시가 빌미 제공

입력 2025.09.04. 07:30 박승환 기자
구묘역서 신묘역 이장 당시
희생자 기준 생존자에 적용
30명 요구 수용…4명 남아
일부 유공자 셀프 승인까지
"시·보훈부 문제 매듭지어야"
광주 북구 운정동 일대에 조성된 국립5·18민주묘지. 1묘역 2구역에 2013년 2월부터 2020년 2월까지 8년가량 5·18 유족회장을 역임한 정모씨가 자신의 안장될 자리를 선점해둔 모습.

일부 5·18 유공자들이 국립5·18민주묘지에 자신들이 안장될 자리를 선점할 수 있었던 것은 광주시가 일관되게 기준을 적용하지 않아서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5·18민주묘지를 조성하며 망월동 5·18구묘지에 잠든 희생자들을 이장해 올 때 마련한 안장기준을 생존자에게까지 적용했기 때문이다.

4일 무등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광주시는 지난 1997년 '5·18 묘지 안장심사위원회'를 만들고 묘역 번호 부여 방법과 안장 순서 등을 결정했다. 망월동 5·18구묘지에 묻힌 희생자들을 신묘역인 운정동 5·18민주묘지로 이장하기 위해서다.

위원회는 1묘역 전체를 총 9구역으로 나눴다. 위령탑에서 가까운 하단에서 상단으로 번호를 매겼는데, 하단 왼쪽이 1구역, 하단 오른쪽이 2구역 상단 왼쪽이 7구역, 상단 오른쪽이 8구역이었다. 1묘역 외곽에는 행방불명자 등의 묘비를 설치하기 위해 9구역을 마련했다.

묘역 번호는 중앙통로를 기준으로 좌측은 왼쪽 방향, 우측은 오른쪽 방향으로 부여했다. 2열부터는 'ㄹ'자 모양을 그리듯 역순으로 이어갔다. 안장 순서는 1구역부터 희생자 사망일자를 기준으로 정했다. 같은 날 사망한 경우에는 이름의 '가나다' 순으로 배정했다.

또 부부가 모두 5·18 희생자일 경우 유가족에게 확인한 뒤 합장하거나, 거부하면 나란히 안장했다. 부자나 형제일 경우에도 이어서 배치했다.

문제는 광주시가 희생자에게만 적용해야 할 이 같은 안장 기준을 생존자에게까지 적용했다는 점이다.

당시 광주시는 '희생자 안장기준'을 마련했다는 내용의 보도자료까지 냈지만, 5·18구묘지에서 5·18민주묘지로 이장되는 희생자들과 마찬가지로 안장지를 확보해달라는 총 30명의 5·18 유공자들의 무리한 요구를 끝내 수용했다. 사실상 생존자들이 안장지를 선점하는 빌미를 제공한 셈이다. 현재는 8년(2013년 2월~2020년 2월) 가량 유족회장을 역임한 정모씨 등 4명만 1묘역에 안장지가 남아있다.

정씨는 국가보훈부가 2015년과 2017년 일부 5·18 유공자들의 안장지 선점 문제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두 차례 간담회를 진행했을 때 유족회장 신분으로 간담회에 참석해 "안장지 선점에 동의한다"고 셀프 승인했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한 5·18 유공자는 "광주시가 아닌 것은 아니라고 딱 잘라 거절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기 때문에 목소리 큰 일부가 특혜를 누리고 있다"며 "광주시는 5·18민주묘지의 관리 주체가 국가보훈부로 변경됐다고 해서 문제에서 손을 뗄 게 아니라 책임을 지고 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과정이 어떻게 됐든 해결할 위치에 있는 국가보훈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또 다른 5·18 유공자는 "국가보훈부만이 이 문제를 매듭지을 수 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공정한 보훈을 위해 결단을 내려야 한다"며 "광주시가 결정했다는 이유로 어쩔 수 없다고 하는 것은 직무유기다"고 비판했다.

한편, 국가보훈부는 전날 오후 안장지 선점 문제에 대해 의논하기 위해 광주를 찾아 5·18 공법 3단체장과 간담회를 가졌다.

글·사진=박승환기자 psh0904@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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