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이후 반복된 개헌 무산
현재 10명 부족...국힘 협조 관건
발의해도 못넘은 ‘정족수 벽’
국민 67% 헌법 수록 찬성

5·18민주화운동 정신을 헌법 전문에 반영하려는 논의가 다시 정치권에서 본격화되고 있다. 다만 1987년 개헌 이후 40년 가까이 정치권 충돌로 번번이 무산됐던 만큼 이번에도 국회 문턱을 넘을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지난 6일 이재명 대통령은 은국무회의에서 5·18 민주화운동과 부마민주항쟁 정신을 헌법 전문에 명시하는 내용을 담은 헌법 개정안 공고안을 의결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타고 있다. 해당 개헌안은 우원식 국회의장과 국민의힘을 제외한 여야 6당 의원 187명이 공동 발의한 것으로 다음달 7일 국회 본회의에서 표결에 부쳐질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하지만 통과 여부는 아직 미지수다. 개헌안이 국회를 통과하려면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이 필요한데 현재 재적 295명 기준 197명의 동의가 요구된다. 발의에 참여한 187명을 제외하면 최소 10명 이상의 추가 찬성이 필요해 국민의힘 협조 없이는 통과가 어려운 구조다. 국민의힘은 개헌 추진에 대해 당론으로 반대 입장을 밝혔다.
헌법 전문은 국가의 기본 이념과 정체성을 규정하는 부분으로 모든 법 해석의 기준이 되는 ‘헌법의 헌법’으로 불린다. 이러한 상징성과 법적 의미에도 불구하고 5·18 정신 수록 논의는 수십 년째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5·18 정신 헌법 수록 논의는 1987년 9차 개헌 당시 처음 제기됐다. 당시 야당이던 통일민주당이 헌법 전문 포함을 추진했지만 여야 협상 과정에서 제외됐다. 이후 5·18은 민주화운동으로 공식 규정되고 특별법 제정과 국가기념일 지정, 국립묘지 승격,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등을 거치며 역사적 위상이 꾸준히 확대됐다. 그러나 헌법 전문 수록 문제는 정치권 논의에서 번번이 후순위로 밀렸다.
논의가 다시 본격화된 것은 2017년 대선을 전후한 시점이다. 당시 문재인 후보가 5·18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을 공약으로 내세우면서 정치권 의제로 부상했고 2018년 문재인 정부 개헌안에 5·18 정신이 처음으로 헌법 전문에 포함됐다. 그러나 개헌안에는 대통령 4년 연임제 등 권력구조 개편 내용이 함께 담기면서 정치권 갈등이 격화됐고, 결국 당시 야당 자유한국당 등의 불참으로 국회 의결 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표결 자체가 성립되지 않았다.
이후에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2022년 대선에서는 보수 정당 후보까지 5·18 정신 헌법 수록을 공약으로 제시하며 이견이 없는 사안으로 평가됐지만 개헌 자체를 둘러싼 정치적 이해관계 충돌이 이어지면서 실제 추진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이처럼 정치권 내부에서는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개헌 방식과 시기, 범위를 둘러싼 입장 차가 이어지며 논의가 번번이 멈춰섰다. 특히 권력구조 개편 등 다른 쟁점과 맞물리며 개헌이 정쟁의 대상으로 흐르면서 5·18 수록 역시 함께 좌초되는 일이 반복돼 왔다.
정치권의 이권 다툼과 달리 국민 여론은 5·18 정신 헌법 전문 수록을 갈망하고 있다. 5·18기념재단이 전국 성인 1천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5년 5·18 인식조사’에 따르면 ‘헌법 전문 수록이 필요하다’는 응답은 67.4%로 집계됐다. ‘매우 필요하다’는 응답도 47.4%에 달했다.
이날 5·18민주 광장에서 만난 김수정(52)씨는 “이미 역사적 평가가 끝난 사안을 정치권에서 본인들의 이익을 셈하며 헌법 전문 수록을 계속 미루고 있다. 국민 다수가 필요하다고 하는데도 반복해서 무산되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씨의 자녀인 최모(24)씨는 “대선 때마다 공약으로만 반짝 등장했다 사라지는 일이 계속됐다. 광주 시민이라서 하는 말이 아닌 민주주의를 누리고 살고 있는 국민으로서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옛전남도청 전시를 관람했는데 보고 나니 아직까지도 5·18에 대해 북한 공작이니 하는 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더욱 믿을 수 없다. 헌법 전문 수록을 통해 이런 혐오를 멈출 수 있도록 국민의힘이 협조하길 바란다 ”고 밝혔다.
박소영기자 psy1@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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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에 새길 5·18···민주주의 핵심 기준·가치로
김영록 전남지사, 강기정 광주시장이 25일 서울 국회에서 5·18단체, 시민단체 등 참석자들과 5·18정신 헌법전문 수록 국회 개헌특별위원회 구성 및 개헌 발의를 촉구하는 결의를 하고 있다. 전남도 제공
5·18민주화운동의 헌법 전문 수록 논의가 다시 불붙으면서, 실제 수록이 이뤄질 경우 무엇이 달라지는지를 두고 관심이 쏠린다. 법 해석과 국가 책임, 정책 방향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변화의 기준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9일 무등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헌법 전문은 국민의 권리나 국가기관의 권한을 구체적으로 규정하는 본문과 달리 선언적 성격이 강하다. 이 때문에 헌법 전문을 상징적 기능 중심으로 해석하는 견해도 있다.장영수 고려대학교 로스쿨 교수는 2019년 ‘3·1운동,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과 헌법의 과제’를 주제로 열린 학술대회에서 “9차 개헌 당시 헌법 전문에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문구를 새로 넣은 것은 구체적인 법적 효과를 염두에 둔 것이라기보단 ‘역사적 정통성의 회복’이라는 상징적 의미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고 말했다.반면 헌법 전문의 규범적 기능을 강조하는 견해도 적지 않다. 같은 학술대회에서 임지봉 서강대학교 로스쿨 교수는 “헌법 전문은 ‘헌법의 헌법’으로, 헌법규범의 단계적 구조 중 최상위의 근본규범”이라며 “재판규범으로도 사용될 수 있기 때문에 헌법재판소의 위헌·합헌 판단 근거도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즉, 헌법 전문은 선언적 성격과 일정한 기능을 동시에 갖추는 것으로 이해된다.강승식 법학박사의 논문 ‘헌법전문의 기능에 관한 비교법적 고찰’에 따르면, 헌법 전문의 역할은 ▲헌법 가치와 이념을 국민에게 전달하는 교육적 기능 ▲헌법 제정 배경과 목표를 설명하는 기능 ▲국가 정체성을 형성하는 기능 ▲헌법 해석과 재판에 활용되는 규범적 기능 등으로 구분된다.특히 규범적 측면에서 헌법 전문은 단순한 해석 지침을 넘어 기본권이나 국가 의무를 도출하는 근거로 활용되거나, 경우에 따라 헌법 개정의 한계를 설정하는 기준으로도 작용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이는 실제 판례에서도 확인된다. 헌법재판소는 2011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한·일청구권협정과 관련 국가의 부작위로 헌법상 인간의 존엄과 가치가 침해됐다며 제기한 헌법소원 사건(2006헌마788)에서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 지금의 정부가 국민에 대해 부담하는 가장 근본적인 보호 의무에 속한다고 할 것”이라고 판단하며 헌법 전문의 ‘3·1운동으로 건립된 임시정부의 법통 계승’ 문구를 근거로 제시했다.이는 헌법 전문에 명시된 역사와 이념이 국가의 구체적인 책임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작용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이 논리를 5·18에 적용하면, 헌법 전문 수록은 국가가 5·18을 보호하고 계승해야 할 의무를 보다 분명히 하는 계기가 된다. 이에 따라 북한군 개입설 등 끊이지 않는 왜곡과 폄훼에 대한 대응 근거를 헌법 차원으로 끌어올릴 수도 있다.아울러 교과서 서술, 국가 기념사업, 기록 보존 등 후속 정책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단순한 사과나 보상에 그치지 않고 국가가 역사에 대해 지속적으로 책임을 지는 구조가 형성된다는 것이다.5·18은 이미 관련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며 국제적으로도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은 사건이다. 여기에 헌법적 지위까지 더해질 경우 대한민국 민주주의 정통성을 구성하는 핵심 가치로 자리매김하게 된다.결국 헌법 전문 수록은 즉각적인 제도 변화보다 국가가 무엇을 기억하고 어떤 가치를 지향할 것인지를 분명히 하는 작업에 가깝다. 향후 법과 정책, 사회 인식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기준이 된다는 점에서 그 파급력이 매우 크다는 평가다.이재의 5·18기념재단 연구위원은 “2001년 대법원은 5·18 당시 광주 시민의 무장 저항을 ‘헌정질서 수호를 위한 정당 행위’로 판단하며 국가의 불법 행위에 대한 국민의 저항권을 인정했다. 12·3 계엄 당시 압도적인 국가 권력에 맞선 시민 저항의 정당성 역시 이러한 판례에 뿌리를 두고 있다”며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명시하는 것은 이러한 민주주의 가치를 분명히 하는 출발점”이라고 말했다.강주비기자 rkd98@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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