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조희룡미술관 재개관
우봉 연대기 비롯 생애와 문학
유물·작품 전시까지 한자리에
매화도에 담긴 생명력·실험정신
방문객 발길 붙드는 매력으로
튤립·홍매화 정원도 필수코스
[1004섬 신안-1섬 1뮤지엄] ③-임자도<하>
‘조선문인화의 영수’, ‘묵장(墨場)의 영수(領袖)’로 불리는 우봉 조희룡. 그의 적거지 만구음관은 진도 운림산방에 비유될 정도로 예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하겠다.
◆적거지·창작 산실 ‘만구음관’ 재현
커다란 검은 돌 두 개가 있었다고 하여 이름 붙여진 임자도 이흑암리에는 우봉의 적거지(謫居址)와 그가 머물렀던 만구음관이 재현돼 있다.
마을 입구에서 이정표를 따라 골목으로 들어서면 흐드러지게 꽃을 피운 홍매화 벽화들이 먼저 반긴다. 살아서 꿈틀대는 듯 역동적인 가지마다 곱게 피워올린 꽃들은 당장이라도 선홍빛 향기를 물씬 전해줄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우봉은 평생 매화를 사랑했다. 매화나무를 심고 매화 시를 읊으며, 매화 그림을 그렸다. 유배 시절에는 임자도의 붉은 노을이 자신에게 들어와 홍매그림이 됐다고 밝힌 바 있다. 사는 집의 이름을 '매화백영루'(梅花百詠樓)라 짓고, 자신의 호를 '매수'(梅?)라 부르기도 했다.
가지런한 돌담길을 따라 조금만 오르면 곧바로 '우봉 조희룡 적거지'비가 보이고 그 위로 만구음관이 자리하고 있다. 지금은 간척 사업으로 인해 만구음관 앞에 마을이 들어섰지만, 당시에는 집 앞까지 바닷물이 들어와 수많은 갈매기가 울어댔다고 한다.
만구음관 방 내부는 깔끔하게 꾸며졌고, 부엌에는 가마솥과 굴뚝도 재현됐다. 만구음관에서 바라보면 마을 전경과 넓은 들판, 어머리해변이 한눈에 들어온다. 만구음관은 지난 2009년 12월 신안군 향토 유적 4호로 지정됐다.
만구음관 아래에는 우봉의 대표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우봉은 돌과의 만남을 첫손에 꼽았고, 거기에서 시작된 그림은 매화, 난, 대나무, 국화로 이어졌다. 이곳에는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매화서옥도'(梅花書屋圖)를 비롯 방운림산수도(방(人+方)雲林山水圖), 매화도, 홍매도, 괴석도, 묵죽도, 묵란도, 국화도 등이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있다.
마을 입구의 넓찍한 공터 한 편에는 조희룡 기념비가 있다. 이 기념비는 높이 3m, 폭 2.2m의 화강암과 오석으로 제작됐다. '조선 문인화의 영수 조희룡 기념비'라는 글씨와 함께 우봉의 초상, 그의 대표작 홍매도를 함께 새겨놓았다. 머릿속으로만 그리던 우봉의 모습을 그림으로나마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기념비 옆에는 '만구음관 조희룡 적거지' 안내판이 자리잡았다. 우봉의 생애와 임자도에서 이룬 예술적 성과 등을 소개해 방문객들의 이해를 돕는다.
◆'우봉조희룡미술관' 생애·작품 한눈에
'우봉조희룡미술관'은 대광해수욕장 인근에 자리하고 있다. 3년간 유배생활을 하며 예술세계를 꽃피웠던 조희룡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기념관으로, 임자도 최초의 미술관이자 문화시설이다. 지난 2016년 '우봉조희룡기념관'으로 출발해 지난 2021년 3월 재개관했다.
미술관에 들어서면 우봉의 대표작품 중 하나인 '매화서옥도'가 반긴다. 온통 매화로 둘러싸인 서옥에 앉아있는 선비의 모습을 효과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미술관은 1층 상설전시실과 2층 기획전시실로 나뉘어져 있다. 2021년 개관에 맞춰 개관기념특별전을 가졌고, 2022년 4월에는 안윤모 작가의 튤립 회화작품전을 개최해 호응을 얻은 바 있다.
조희룡미술관은 2층에 자리 잡고 있다. 조희룡의 연대기를 비롯해 생애와 문학, 유물 및 작품을 전시하고 있으며, 영상관, 매화 그리기 체험관도 꾸며져 있다.
'나의 정 도리어 무정한 곳에 극진했거니/ 어찌 어조(魚鳥)에게만 그랬으랴/ 창 앞두어 그루 대나무 있어/ 꼿꼿하게 붙들고 지켜준 지 삼년이었네'
1853년 3월 18일 우봉이 해배된 후 임자도를 떠나며 남긴 글이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조희룡이 기록한 임자도의 신기한 이야기도 눈길을 끈다. 승천하는 용의 모습, 도깨비불, 바다 위의 신기루 해시(海市), 임자도 인어이야기 등이 그것이다.
천둥이 무섭게 내려치고 장대비가 그칠 줄 모르던 어느 새벽이었다. 우봉은 "오룡(五龍)이 승천한다"는 마을사람들의 소리에 깜짝 놀라 눈을 떴다. 그는 급히 뛰어나가 사람들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용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아쉬운 마음을 접지 못하던 그에게 사람들은 자신들이 본 용을 설명했다. "마치 기둥과 같은 꼬리가 늘어져 말렸다 풀렸다 하면서 유유히 동그라미를 그리다가 구름 사이로 들어가 없어졌어요."
우봉은 마을 사람들의 설명을 그림에 담았다. 길고 좁은 세로 폭의 화면에 굵고 큰 나뭇가지가 힘찬 용틀임으로 두세 번의 굴곡을 이루며 화폭을 채우고 곳곳에 흐드러지게 꽃을 피운 매화가 조화를 이룬 '용매도'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우봉의 용매도는 매화그림의 생명력과 실험 정신을 더욱 발전시키는 계기가 된다.
전시관에서는 우봉이 비단에 그린 홍백매도, 홍매도, 묵란도 등과 몇 가지의 유물 등도 만날 수 있다.
우봉조희룡미술관은 지난 2021년 3월부터 8월까지 개관기념 특별전을 했다. 미디어 작가 이이남의 미디어 작품전과 임자도의 어제와 오늘을 담은 사진전을 개최했다.
또 지난 2023년 4월부터 6월까지 튤립을 동화적인 시각으로 그리고 있는 안윤모 작가의 전시 '사랑한다면 임자 튤립' 전을 갖고 행복하고 유쾌한 튤립 회화 작품 33점을 선보였다.
◆임자도 붉게 물들이는 튤립·홍매화 정원
임자도의 튤립공원은 대광해수욕장 공원지구에 조성돼 있다. 해마다 봄이 오면 6㎞의 드넓은 대지에 각양각색의 튤립이 아름답게 핀다. 매년 4월에는 튤립 축제가 개최돼 남도의 꽃향기를 찾아오는 상춘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튤립 축제는 6년간의 끈질긴 연구와 노력이 이뤄낸 결실이라고 할 수 있다.
튤립축제의 시작은 지난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임자도는 대파 생산지로 유명했으나 심한 가격 등락폭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자 군은 대체 작물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모래언덕으로 이뤄진 임자도의 지리적, 자연적 환경이 튤립을 생산하기 적합하다는 의견이 제시됐고, 2003년부터 목포대와 함께 튤립 재배기술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튤립의 주요 생산국가인 네덜란드를 비롯한 해외 국가들을 방문하며 튤립의 재배 기술을 배우는 등 수많은 실패와 어려움을 딛고 6년간의 도전이 지속됐다. 결국 연구팀은 튤립의 구근을 생산할 수 있는 품종을 선발하게 됐고 지난 2008년 첫 축제를 개최한 이후 매년 4월께 행사를 이어오고 있다.
튤립축제는 2만㎡(6천평) 정원에 30종의 품종과 100만 송이의 꽃을 보고 주변의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해변을 함께 감상할 수 있는 신안의 대표 축제로 자리매김됐다.
지난 2008년 4월 18일부터 27일까지 개최된 제1회 행사에서 2만3천100명이 다녀간 튤립축제는 입소문을 타고 매해 방문객들이 증가하고 있으며 지난 2023년 4월 제13회 행사에는 무려 6만1천617명이 방문하는 성과를 거뒀다.
군은 튤립과 함께 지난 2021년부터 조희룡이 사랑한 홍매화 2천340주를 6천㎡(1천800평) 면적에 식재했다. 군은 구례 화엄사에 있던 450년 된 홍매화, 조선대학교 정원의 홍매화 등을 비롯해 전국 각지의 도움을 받아 나무를 심고 있다.
홍매화정원 '백억원'(百億園)은 매년 3월 임자도를 아름답게 물들여 관광객들의 발길을 유혹할 예정이다.
군은 튤립·홍매화 정원과 함께 매화정원 '향설원'(香雪園)과 카네이션 동백정원 '송백원'(松栢園)을 조성 중이다. 향설원에는 1만1천㎡(3천327평)에 백매화 50년생 1천주를 식재했고, 송백원은 1만7천㎡(5천142평)에 애기동백 350주와 카네이션 동백 40~50년생 1천주를 심었다.
김만선기자 geosigi22@mdilbo.com
- 깊은 주름, 굳은살에 배긴 삶··· 예술이 되다 처음엔 우연이라고 생각했다. 각 마을에서 공동체를 이루고 사는 사람들의 다양한 '살이'를 듣고 함께 소통하며 이를 그림으로 담는 작업을 하던 것이 계기였다. 신안 자은도 둔장마을과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제주도 같은 '섬 아닌 섬'을 제외하고는 처음 찾은 섬이었다. 육지와 동떨어진 섬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막연한 공포심으로 무장한 주변인들의 걱정은 더욱 발걸음을 무겁게 했다. 신안의 섬이 무려 1천 개가 넘는다는 것도 그때서야 알았다.섬에 도착했을 때 가장 큰 장벽은 주민과의 소통이었다. 주어진 생업에 묵묵히 땀흘리는 주민들의 모습은 그 무엇으로도 뚫을 수 없는 단단한 바위처럼 느껴졌다. 더욱이 코로나19의 급속한 확산은 접촉과 소통을 가로막는 요인이 됐다. 그렇다고 돌아갈 수는 없었다.◆화가-주민 어우러진 그림그리기 프로그램어쩌면 필연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화가는 섬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여행 가방을 풀었다. 화가가 필연을 생각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섬 주민이 어설픈 이방인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 주면서부터였다. 화가와 섬 주민은 마치 오래전부터 서로 만나게 돼 있었던 사이처럼 금방 친해졌다. '섬'과 '섬사람'에 대한 선입견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화가가 이태에 걸쳐 섬을 찾고, 그 이듬해에도 섬을 찾으면서 더욱 허물없는 사이가 됐다. 화가는 어느 사이 섬 주민을 만날 날을 기다리는 자신을 발견하고 있었다. 화가는 섬을 찾기 위해 여행가방을 싸는 시간이 행복해졌다.화가는 섬 주민을 만나 그림을 그리고 그 '살이'들을 글로 옮겼다. 그의 작업은 한 사람의 발자취를 담는 일에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한 시대를, 같은 세대를 온몸으로 부대껴온 이들이 겪은 생생한 현장의 기록이자 역사였다.'진천에서 왔어. 대율 너머. 열아홉에 앞집 할매가 중매했어. 우리 큰아버지가 목포에서 큰 가게 하는데 여기 와서 양파도 사가고 했제. 머스마가 선보러 아침 일찍 왔는데 나는 이웃 마을 이모네 밭매러 가서 하루 종일 기다렸지. 아들 서이 딸 하나. 첫눈에 반했제. 놈들은 밭에서 뙤약볕에 아그들 놓고 일하는데 일찌감치 목포로 내보냈더니 저그들만 놓고 갔다고 원망해, 내 속도 모르고. 엄마는 애기들만 놓고 갔다고. 엄마 사랑 못받았다고,'(주○○ 1954)화가는 자신이 그림을 가르치기보다 되레 '살이'를 배우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켜와 결로 상흔을 간직하고 있었다. 어떤 이는 이마에 자리 잡은 골 깊은 주름으로, 또 다른 어떤 이는 장작처럼 딱딱하게 굳어버린 손마디와 머리에 하얗게 내려앉은 서릿발로 자신의 삶을 드러냈다. 어쩌면 같은 시대의 다른 사람들보다 더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살았음에도 자녀를 향한 교육열을 잃지 않았고, 엄마답고 아버지답게 '늙어감'을 받아들이고 있었다.화가가 섬에서 하는 일은 자신의 작업에만 머물지 않았다. 겨울철 농한기에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내는 주민과 함께 어우러져 그림을 그리는 일이 더해졌다. 미술 활동 프로그램은 주민 2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마을회관이나 둔장마을미술관에서 진행됐다. 연령대도 60대에서 80대까지 다양하다.처음에는 주민들이 '그림을 그린다'는 부담감을 이기지 못하고 손사래를 치는 바람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화가는 "어머님과 아버님들이 그림을 잘 그리면 제가 할 일이 없다"며 주민을 이끌었다. 해가 바뀌면서 '학생(?)'들의 분위기도 달라졌다. 마을회관은 참가자들의 창작열로 금방 뜨거워졌다. "나 잘 그렸제?" "이 정도믄 화가의 작품 수준 아니여?" 자신감을 드러내는 주민들이 늘어가고, 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짜장면으로 한턱을 내시겠다는 사람, 간식을 챙겨온 주민도 이어진다.화가는 주민들에게 지난 겨울 '내가 입어보고 싶었던 옷'을 주제로 그림을 그리도록 했다. '내가 입어보고 싶은 옷' '내가 좋아하는 옷'을 통해 자신을 꾸미는 작업을 하도록 한 것이다. 이 프로그램의 성과는 온 마을 주민들의 관심 속에 둔장마을미술관에서의 '안혜경, 화가의 여행가방 전'으로 드러났다.◆마을회관, 50년만 미술관으로 재탄생둔장마을미술관은 신안의 섬과 섬을 이어주는 천사대교를 지나 자은도 북쪽 끝 지역 둔장해변 입구 섬마을에 자리하고 있다.미술관 계단 오르면 좌우로 둔장마을 사람들이 직접 그림을 그린 아트타일 2천500개로 이뤄진 '둔장마을 이야기' 작품이 눈에 들어온다. 지난 2021년 12월 10×10㎝ 크기의 타일로 제작한 것이다. 꽃이나 글씨, 기호 등이 자유분방하고 다채롭게 펼쳐지는데 나름대로의 조화와 질서를 이루고 있는 것 같아 눈길을 끈다. 작품 수로 2천개가 훌쩍 넘다 보니 거충 훑어보아도 한참을 머물게 된다. 출입구 오른쪽에는 '둔장마을 탑'이 반긴다. 아트타일과 같은 시기에 제작된 이 탑은 둔장마을의 오랜 역사와 마을을 지키는 우두머리라는 상징적 의미로 마을의 안녕을 기원한다.미술관 내부에 들어서면 안혜경 작가가 만난 많은 사람들과 주민들이 직접 그린 그림 등이 한눈에 들어온다.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전시장 한 편에 소개된 둔장마을미술관의 '공간이야기'다.'둔장에서 만난 사람들은 마을회관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다. 마을회관을 짓던 1971년도 얘기를 하면 눈이 반짝인다. 새마을운동으로 받은 시멘트를 집집이 내서 고개 너머 고교마을에서 모래와 자갈을 섞어 블록을 만들었다. 마을회관을 짓고 손님을 초대하고 동네잔치를 열었다. 신안군 전체가 들썩였다. 다른 마을에서 견학을 왔고 고생한 마을 사람들을 위해 '리민의 날'을 만들었다. 전국 최초로 스스로 만든 '리민의 날'이다. 올해 코로나19로 못했지만 50년간 이어진 진정한 마을축제다. 올해는 마을회관이 지어지고 딱 50년이 된 해다. 코로나19로 마을 축제가 열리진 못했지만 작은 미술관이 개관하며 기념할 만한 쉼표를 찍게 되었다.'지난 2020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작은미술관 공모사업에 선정된 신안군은 마을주민들의 뜻에 따라 노후된 마을회관을 리모델링해 '둔장마을미술관'으로 오픈했다. 오랫동안 마을의 크고 작은 행사에 사용됐던 마을의 중심공간이었으나 건물이 노후돼 한동안 방치되어 있었던 곳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신안군의 노력으로 50년 만에 미술관으로 재탄생, 마을 사람들의 사랑받는 중심공간으로 다시 자리매김하게 됐다.'유달초등학교 다니다 4학년에 자은 들어왔지. 애기 때부터 농사를 안 해봐서 힘들었지. 새마을운동 한창일 때 처음으로 경운기 사서 길 만들고 보리 콩 타작 다니고, 돈이 없으니 처남이 보증 서줘서. 21살에 결혼해서 지난 12월에 갔네. 참 영리한 사람이요. 두 살 차이. 묘소에 매일 갔어. 자꾸 잘못한 게 생각나서. 마당 한번 안 쓸고 할 줄 아는 게 없어. 집사람이 다 했제.'(78세 강○○)전시된 사연을 하나하나 읽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감정이 몰입되고 코끝이 찡해진다. 주름진 얼굴, 휑하니 넓어진 이마가 더욱 애처롭기도 하다.화가의 그림 앞에는 주민들이 그린 형형색색의 작품들이 놓여 있다. 초록색 상의에 밤색 치마를 입고 있는 여성이 있고, 예쁜 분홍 치마를 입고 밝은 표정을 짓는 사람도 있다. 파란 원피스를 차려입고 화사한 머리 장식을 한 여인, 분홍색 점무늬가 옹기종기 박혀있는 노란 원피스를 입은 사람도 있는데 모두 자신이 '입고 싶었던 옷'이다.섬의 매력에 끌린 화가는 자은도를 벗어나 흑산도와 장산도 주민도 함께 만나고 있다."섬에 사는 분들은 목포는 가봤지만 다른 섬에는 가본 분들이 별로 없습니다. 모든 배가 목포로 가기 때문에 바로 옆에 있는 섬도 그저 바라볼 뿐 갈 수는 없죠. 이것이 섬의 지리적 특성이에요. 그래서 제가 만나는 분들은 저보고 어디 가봤냐고 묻고 어떠냐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여행가방에 각각 섬에서 그린 그림을 넣어가지고 다니며 보여드립니다."(안혜경 작가)'화가의 여행가방 전'은 그렇게 시작됐다.김만선기자 geosigi22@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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