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 식물에 조개·수석까지…천혜 자연 한자리에

입력 2024.02.06. 18:38 김만선 기자
민관 힘 모아 정화활동 벌인 덕에
양산해변 1.5km에 펼쳐진 드넓은
백사장·청정바다 자랑거리 꼽혀
바람이 만든 모래산 또 다른 볼거리
커다란 소라·고둥 포토존도 마련
축구장 70배 규모 1004뮤지엄파크
수석정원 등 특색있는 테마 눈길 끌어
한 번도 못봤던 신비한 세계 눈앞에
신안군 자은면에 위치한 1004뮤지엄파크는 지난 2020년 8월 해양문화복합단지로 개관했다. 뮤지엄파크 넘어 양산해변이 펼쳐져 있다.

[1004섬 신안-1섬1뮤지엄] ⑥ 자은도 <Ⅰ>

언제부터였을까. 가물가물했던 의식이 조금씩 선명해지는가 싶더니 코끝에서부터 익숙한 맛이 시나브로 체감되면서 잠에서 깼다는 것을 알았다. 섬 특유의 비릿하면서도 짭쪼름함은 마치 혀를 통해 뇌에 전달되는 것처럼 생생했다. 싫지는 않았다. 이곳의 가장 큰 매력은 무시로 변하지 않고 늘 한결같은 데서 오는 안락함이 있다는 점이었다.

섬은 '자애롭고 은혜롭다'(慈恩)는 이름처럼, 자신을 찾는 모든 이에게 보금자리가 돼주었다.

섬은, 붙잡지 않았다. 누군가는 일자리를 찾아, 또 다른 누군가는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이삿짐을 쌌지만 미동도 하지 않았다. 섬은, 외면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결국 그들 중 누구는 돌아왔고 또 다른 누군가는 돌아오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안 후였다. 섬은, 바다는 그런 곳이었다.

눈은 뜨지 않았지만 희부윰한 기운이 창을 통해 쏟아져 들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제 자리를 털고 일어나야 할 시간이라는 의미지만 도무지 눈꺼풀이 열리지 않았다. 정해진 시간에만 맞추고자 한다면 10~20분, 아니 넉넉잡아 30분쯤은 여유가 있을 것이었다. 누운 상태에서 가슴에 얹힌 오른손을 움직여 가볍게 바닥을 쓸어보았다. 불편이 느껴지지 않는 것으로 보아 몸 상태가 나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이제 칼잠 자세로 몸을 접어보았다.

"끄~응. 아이고 삭신이…."

자신도 모르게 미간이 좁혀지며 단말마 같은 신음소리가 흘렀다. 어깨와 다리가 천근만근 무겁고, 근육과 뼈마디가 군데군데 쑤시기까지 했다. 아무래도 몸뚱이 어느 한 곳 단단히 동티난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시난고난하며 구들장만 지고 있을 수는 없기에 억지로 몸을 일으켜 세웠다. 어제 해안에서 무리하게 몸을 쓴 일들이 바람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잠을 청하기 전부터 몸이 찌뿌드드하고 묵지그리 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것도 찰나였다. 오늘 바닷가가 또 어떻게 변했을지 걱정이 앞서는 것이었다.

"북풍이라도 불라 치믄 또 난장판이 됐을지도 모르는디, 얼른 가봐야 쓰겄네."

그는 서둘러 차양 넓은 모자와 장갑을 챙기고는 집을 나섰다. 시시각각 바닷물이 빠지는 모습이 눈에 선해지면서 발길도 급해졌다.

그가 도착한 곳은 마을 인근에 위치한 양산해변이었다. 해변에 도착한 사람은 김 씨를 포함해 20여 명. 모두 바다환경을 지키자고 팔을 걷어붙인 사람들이었다. 해안가 쓰레기를 수거하고 해양 오염행위를 감시하는 이 사업에는 마을 주민과 여성단체 회원 등의 일반인과 공무원이 함께 참여하고 있었다.

세계조개박물관 입구의 표지석

"양산해변은 고둥 따고 수영하던 놀이터"

"어렸을 때 집이 지금의 1004뮤지엄파크 자리에 있었거든요. 양산해변은 우리의 앞마당이자 놀이터였죠. 여름에는 바다에서 물놀이를 즐기고 모래가 고와서 손으로 성도 쌓고 그랬어요. 그뿐인가요. 오빠들과 함께 고둥도 따고 굴도 까서 먹고 그랬거든요. 방풍나물이며, 해당화, 파리똥나무도 지천이었고요. 중학교 2학년이 되어 이사할 때까지 많은 추억을 쌓은 곳이랍니다."

신안군 자은면 신성마을 김경순(62) 씨는 양산해변과 함께 희로애락을 함께 한 주인공이다. 드넓은 백사장과 청정바다가 한눈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곳이지만 언제부터인가 많은 쓰레기가 해류를 타고 밀려들어오면서 정화작업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처음 바닷가 청소를 위해 도착한 해변은 그야말로 쓰레기 천지였다. 바닷물이 빠지면서 토해놓은 해초류 모자반이 해안을 따라 길게 줄지어 있고, 고운 모래밭에는 각종 폐그물과 스티로폼, 플라스틱 등이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었다.

"오메 오메 요것이 뭔 일이다냐."

현장을 본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고리눈이 되고 말았다. 한눈에 봐도 그 양이 어마어마했던 것이다. 김 씨는 가슴부터 쓸어내렸다. 그렁그렁 눈물까지 번질 지경이었다. 유년기를 자신과 함께 보낸 해변이 쓰레기로 덮인 모습을 지켜보니 마치 자신의 순수했던 어린 시절까지 훼손되는 것 같아 마음이 저렸다.

양산해변은 그동안 사람의 손이 전혀 닿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마을 사람들이 틈틈이 손을 모아 정화활동을 벌이곤 했었다. 하지만 모두 생업에 쫓기고, 주민들이 고령에 접어들면서 얼마간 등한시할 수밖에 없었고, 그 사이 많은 쓰레기들이 방치된 모양이었다.

그는 누구보다 앞장서 정화활동에 나섰다. 모래 바닥에 깊이 박힌 그물들을 자르고, 수로에 다복다복 숨겨진 페트병, 스티로폼 등을 일일이 찾아 주워모았다. 정화 활동 중 화를 부채질한 것은 쓰레기의 대부분이 중국에서 온 것이라는 데 있었다. 어구로 활용되는 스티로폼은 물론이고 수통이나 플라스틱 제품 중 상당수는 형태만 보고서도 단박에 중국산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중국에서 버린 쓰레기를 우리 손으로 치우는 현실을 생각하면 저절로 분통이 터졌다.

쓰레기를 치우는 데는 중장비도 동원됐다. 모래 깊숙이 박힌 그물을 빼내거나 사람 힘으로 감당하기 힘든 부피의 목재 등은 굴착기가 맡았다.

쓰레기를 가득 실은 트럭이 몇 번을 오갔는지 모른다. 일을 꾸준히 하다 보니 노동에 지쳐 아침에 눈을 뜨기 어려운 경우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중동무이할 수는 없었다. 하루가 지나고, 사흘, 열흘이 지나면서 조금씩 본래의 모습을 되찾아가는 해변을 보는 것만으로 힘들다는 생각은 사라졌다.

세계조개박물관 내부

김씨는 "지금도 오랫동안 많은 바람이 불면 한꺼번에 많은 쓰레기가 밀려오지만 그때 그때 청소를 하기 때문에 깨끗한 바다를 유지하고 있다"면서 "지역 주민과 공무원이 '우리 섬을 아름답게 가꿔 누구나 오고 싶은 곳, 머물고 싶은 곳으로 만들자'는 데 뜻을 모아 이뤄진 성과"라고 강조했다.

해양문화복합단지 '1004뮤지엄파크'

민·관이 힘을 모아 정화활동을 벌인 덕택에 현재의 양산해변은 1.5㎞에 달하는 드넓은 백사장과 청정바다를 자랑한다. 1004뮤지엄파크에 펼쳐진 바다정원이라고 할 수 있다. 해변에 위치한 사구(沙丘)는 바람이 만든 '모래산'으로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하고, 커다란 소라와 고둥은 포토존으로 안성맞춤이다.

또 구름 사이로 서서히 지는 태양과 그 모습을 흡수한 바닷물이 조화를 이룬 일몰 풍경은 신비로운 느낌마저 들 정도로 환상적이고 아름답다.

양산해변을 끼고 있는 1004뮤지엄파크는 지난 2020년 8월 개관한 해양문화복합단지다. 50만㎡(축구장 70배) 규모의 넓은 부지에 특색있는 테마로 이뤄진 뮤지엄과 공원으로 구성됐다. 이곳에는 세계조개박물관, 신안자생식물 뮤지엄, 새우란 전시관, 1004섬 수석미술관, 수석정원, 뮤지엄 비치캠프 등이 갖춰져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 거리를 제공한다.

1004뮤지엄파크 입구에 다다르면 커다란 표지문이 먼저 반긴다. 양산해변을 비롯 수석미술관&수석정원, 조개박물관 등 주요 시설들을 알려준다. 좌우로 가지런히 정리된 호랑가시나무를 따라 기분 좋게 진입하면 원하는 목적지에 금방 다다를 수 있다.

세계조개박물관은 건물 외관부터 색다르다. 975㎡(135평)에 달하는 건축물은 백합조개를 닮은 형상을 하고 있다. 건물은 한 컷의 사진에 담기 어려울 정도로 좌우로 길게 엎드려 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마치 바다 생명체를 탐험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전 세계 1만1천여 점의 신비한 조개고둥 표본과 조개 공예작품이 한 자리에 모였다.


백합조개 형상의 세계조개박물관

전시관은 2개의 주제관으로 구성됐다. 1관은 멸종위기종인 나팔고둥, 세계에서 제일 큰 오스트리안트럼펫고둥, 기원전부터 화폐로 쓰였던 개오지고둥 등 지금껏 보지 못한 신비하고 화려한 조개와 고둥의 세계를 만날 수 있다.

2관은 '인류와 조개고둥'을 주제로 선사시대 패총에서부터 현대의 조개공예까지 인류와의 인연을 흥미롭게 연출하고 있다. 곳곳에 숨어있는 포토존은 방문객들에게 추억을 선사해준다.

이곳에 전시된 조개, 고둥류는 땅끝해양자연사박물관 임양수 관장이 과거 원양어선을 타고 40여 년간 해양을 누비며 수집한 것들이다. 임 관장은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인 신안군의 갯벌생태계 보호를 위한 끊임없는 노력에 감명받아 자신이 소유한 전시물 중 조개·고둥 표본 대다수를 신안군에 기증했다.

박물관을 돌아보는 데는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 않지만, 관람이 끝날 무렵에는 해양환경 보호의 중요성과 신비한 바다 생태계를 저절로 이해할 수 있다.

김만선기자 geosigi22@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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