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주국제협력단(OGIC)은 최근 제5기 같이-가치 나눔 활동을 위한 문화예술봉사단을 베트남 북부 사파 지역에 파견했다.
OGIC 제5기 같이-가치 나눔 여행 활동은 9일 간의 여행 중 하루를 사파의 마을 소재 초등학교를 찾아 학생 및 주민 300여명을 대상으로 벽화그리기, 미술실기대회, 문화 나눔 등 활동에 할애했다. 이후 아트 펀딩을 기반으로 스케치 문화여행을 진행했다.
OGIC 국외 나눔 활동은 광주의 청년 및 중견 미술작가들과 아마추어 작가들, 지역 오피니언 리더들이 "같이, 가치 있는 일을 해보자"는 뜻에서 시작됐다.
이번 베트남 파견 봉사단에는 광주국제협력단 문화분과 김해성 이사 등 총 18명이 참여했다.
김해성 이사는 "아트펀딩을 기반으로 진행된 이번 국외 나눔활동은 일반인과 예술가들이 문화소외계층을 위한 사회적 활동을 함께 하면서 서로 경제·예술적 가치를 나누고 서로 간의 거리를 좁히는 등 예술이 일상으로 들어오는 시간이었다"면서 "사회적 관계 형성 없이 어렵게 창작활동을 하고 있는 후배 작가들에게도 기회를 제공했다"고 말했다.
이관우기자 redkcow@mdilbo.com
-
총 들던 전직 군인, 펜 들고 '광주 청년' 옆에 서다 박민국 팀장(오른쪽에서 4번째)이 수색중대장 근무 시절 헬기레펠 후 수색작전 훈련을 위해 대기하며 촬영한 사진. "어느 날은 출근할 힘이 없는 거예요. 그야말로 번아웃이 온 거죠.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다 구시청사거리에서 벤치에 앉아 일을 할지 말지 앉아서 생각했어요. 그러다 문득 담당하는 사업이 생각났습니다. 저활력 청년을 지원하는 사업이었어요. 그걸 기다리고 있는 청년들이 있을 걸 생각하니 '가야지'라는 생각이 확 들면서 그대로 회사로 갔습니다. 기다리는 청년이 있다는 것. 그게 제가 이 일을 계속하는 이유입니다."전직 직업군인에서 청년정책 실무자가 된 박민국 광주청년센터 교류협력팀장. 그가 청년들을 위한 공공 정책의 한가운데에 서게 된 여정은 결코 단선적이지 않다. 학군단 장교 출신으로 하고 싶던 군인의 길을 선택한 그는 그야말로 '물 만난 물고기'처럼 청춘을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데 열심이었다. "재미있게 했다"는 그의 표현대로 사명감과 적성 모든 게 맞아떨어졌다.그러다 그의 업(業)이 단번에 바뀌게 되는 일련의 사건들이 줄지어 생겼다. 할머니가 돌아가시는 사건, 고향인 광주에 내려와 살겠다는 결혼 약속, 고향과는 무척이나 달랐던 곳에서 살면서 얻게 된 향수병…."광주에만 오리탕이 있는 줄 몰랐어요. 그걸 사 먹으려고 춘천까지 갔는데도 안 팔더라고. 고향이 그리웠어요. 강원도는 광주와 생태계부터가 달랐습니다. 광주와 달리 무당개구리가 대부분이었고, 온통 산이 절벽처럼 둘러쌓아 있어요. 살던 데가 익숙하고 또 친구가 광주에 많아서 그런지 고향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내와 약속한 것도 있지만 고향이 그리워서 광주에 가겠다고 결심했습니다."그러나 귀향 이후의 삶은 막막했다. 군인의 길을 걸었던 그가 사회에 나와서는 모든 걸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제대 후 마케팅, 포장솔루션 회사, 영어학원 직원까지, 방향 없이 전전하던 시절이었다. 그에 더해 아이가 둘이 있는 가장이라는 무게까지 짊어진 취준생이었다. 대학 졸업 후 곧바로 군인의 길을 걸었던 그가, 요즘 청년들의 방황과 고민을 절감하는 시간이었다고 김 팀장은 회고했다.결국 박 팀장이 택한 길은 '청년 곁에 있는 활동가'였다. 처음부터 청년 정책에 대한 관심이 있던 건 아니었다. 우연히 광주청년센터에서 홍보기획팀장을 뽑는 걸 보고 흥미를 느꼈다. 과거 군 시절 간부 동아리를 기획했던 경험, 군에서 병사들의 고충을 나누며 쌓은 경험이 청년센터에 대한 관심으로 이끌었다.박민국 광주청년센터 교류협력팀장는 지난 9일 광주 동구 광주청년센터 사옥에서 무등일보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전직 군인이었던 박 팀장은 이제 청년의 삶을 지키는 최전선에 서 있다."군대에서 병사들의 고민을 듣는 건 일상이었어요. 취업 걱정, 가족 문제, 인간관계 고민까지…. 계급과 나이 차이를 넘어서 이야기를 듣고 공감해주는 훈련을 자연스럽게 받았죠. 더군다나 저는 취준 기간이 거의 없었지만, 군 시절 병사들의 삶을 들여다보며 그 막막함과 불안을 간접적으로 체감했습니다. 그게 지금 청년을 이해하는 데 밑바탕이 되는 것 같아요."박 팀장이 청년들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듣고 공감할 수 있었던 데는 군 시절의 경험이 결정적인 기반이 됐다. 이 경험은 청년들의 다층적인 고민을 이해하고, 민감한 문제들을 다룰 때 큰 도움이 됐다.그렇게 2020년 광주청년센터에 합류한 지 올해로 5년째다. 입사 이후 그가 신선한 충격을 받은 것은 민간에서 자발적으로 청년 공간을 내주는 사람들, 자비를 들여 청년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런 활동들이 우리 사회를 돌아가게 하는 축이라는 걸 광주청년센터 점차 알게 됐고 자연스럽게 또 절실하게 청년이 필요로 하는 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청년과 얘기하다 보면 결국은 사회 구조를 다 바꿔야 해요. 하지만 매우 어려운 일이예요. 사회가 수십년간 축적한 구조적 문제가 하나씩 터져 나오고 있는데 이걸 5년, 10년 내 해결할 수 있을까요? 청년이 빠져나가서 광주가 140만명 인구가 붕괴됐다고 하는데 150만명으로 회복한다고 해서 공장을 만든다고 해서 될까요? 청년 문제는 단편적 현상이 아니라, 오래도록 축적되고 구조화된 문제들입니다. 청년들의 고민은 단순히 일자리가 없다는 말보다, 내 삶을 담을 수 있는 일이 없다는 말처럼 들립니다."박 팀장은 그런 구조적 문제를 단숨에 해결할 순 없어도 이 사회를 살아가는 청년들을 위한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을 수는 있다고 믿는다. 광주청년센터가 올해 10주년을 맞이한 건 다시금 본질적 고민을 되돌아보는 계기다. 가장 중요한 건 끊어진 연결을 다시 복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팬데믹이 남긴 단절, 빠르게 변화한 사회 환경 속에서 청년과 사회, 청년과 자원, 청년과 청년 사이를 다시 이어야 한다는 게 그의, 또 광주청년센터의 사명이다.지난 9일 광주 동구 광주청년센터 1층에서 만난 박민국 교류협력팀장.특히 박 팀장은 니트(NEET)들을 위한 가상회사 '니트컴퍼니' 운영 경험을 되살리고 싶다고 밝혔다. 소속 없는 청년들에게 '어디 다닌다'고 말할 수 있는 경험을 주고 싶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누군가의 동료가 되는 것, 함께 프로젝트를 해보는 것, 그 속에서 일의 의미를 찾으면서 청년이 사회와 연결될 수 있다고 믿는다.그러면서 박 팀장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덧붙였다."단순히 청년들에게 돈을 줘서만 해결될 건 아닙니다. 광주시의 청년 예산이 1년에 3천억원이 넘는다고 하는데 단순히 계산하면 1인당 100만원까지도 줄 수 있는 돈이예요. 청년 정책 없애고 매년 이 돈을 청년들에게 준다고 해서 청년 삶의 질이 나아지는 건 아닐겁니다. 결국 100만원을 받는 것보다 더 효능감 있는 정책을 만들어 내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건 연결에서 시작합니다."글·사진=이삼섭기자 seobi@mdilbo.com
- · "일본에 광주미술 널리 알리는 계기 됐으면 합니다"
- · "가속화하는 경제 위기, '사회 소득'으로 해결해야"
- · "나만의 작품 세계 갖춘 예술가로 성장하고파"
- · 장하영 광주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 E·T 야구단 차량구입비 2천만원 지원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광주・전남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 교통정보, 미담 등 소소한 이야기들까지 다양한 사연과 영상·사진 등을 제보받습니다.
메일 mdilbo@mdilbo.com전화 062-606-7700카카오톡 플러스친구 ''무등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