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권익위원 칼럼] 우리가 모르는 간호법의 목적

@김상훈 광주시의사회 법제이사·광주병원 내과원장 입력 2023.02.23. 19:17

2월 9일 간호법 제정안이 국회 본회의 부의 요구 의결됐다. 야당이 패스트트랙 법안으로 처리할 정도로 중요한 법안인데도 사람들은 필요성을 체감하지 못하고 내용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저 코로나 시대에 고생한 간호사의 처우 개선이 필요하니 좋은 취지의 법이라는 식이다.

의료법과 비교해 보면 간호법의 목적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다. 의료법에서는 의료혜택을 받는 범위를 국민이라 언급하는 반면 간호법에는 여기에 '지역 사회'가 추가됐다. 의료기관 밖에서의 간호사의 업무영역을 확대하려는 것이 간호법 제정의 주된 목적이라는 의심을 받는 대목이다. 의료법 개정이 아닌 간호법에서의 이 같은 범위 확대는 중장기적으로 간호법 개정을 통해 간호사의 단독 개원과 단독 의료행위를 가능케 하려는 의도가 의심된다.

뿐만 아니라 일선 간호사의 처우 개선을 위해 만든 법이면서 원가의 40%도 안되는 간호관리료 등 간호관리 수가와 관련된 내용은 없다. 오히려 이 법의 제정 목적은 일선 간호사 처우 개선보다는 간호법 1조의 '지역사회'로의 영역 확장을 통해 간호단독개업을 가능하게 하기 위한 첫 단계로 보는 것이 더 솔직할 것이다.

의사 지도 없이 간호사가 단독 개원해 간호 판단과 간호 처치를 할 수 있게 되면 간호간병센터가 난립하게 되고 환자 건강은 전문의의 소견보다 간호사의 판단에 의지하게 되는 시대가 오는 것이다.

또한, 간호간병센터로의 간호사 쏠림으로 인해 기존 의료기관의 간호사 인력난이 더욱 심화될 가능성도 크다. 코로나 시국, 모든 의료인들은 환자를 위해 헌신했으나 문재인 전 대통령은 SNS를 통해 '의료진이라고 표현 됐지만 대부분이 간호사들이었다는 사실을 국민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라고 언급했다. 그러나 방호복을 입은 채로 하루 종일 환자를 접수하고 검사를 하고 엑스레이를 찍고 앰뷸런스로 이송하고 진료했던 사람들은 간호사 뿐 아니라 임상병리사, 방사선사, 응급구조사, 의료정보기록사, 의료기사, 보건복지 공무원 그리고 의사 등 의료계 구성원 모두였다.

코로나를 포함한 보건의료에 대한 공로가 매우 큰 것은 사실이지만 간호사 직역만의 이익 실현을 대변하기 위해 간호법을 주장한 이후로 타 직역과의 갈등이 매우 커지고 있다. 언론에서는 간호사와 의사의 밥그릇 싸움으로 비춰지고 있지만 간호협회와 일부협회를 제외한 대부분의 의료계 단체들은 간호법에 반대하고 있다.

간호법 제정안에 따르면 간호조무사는 간호사의 보조업무를 수행해야한다. 그로 인해 간호조무사와의 갈등이 매우 심각하다. 간호법에서는 또한 간호조무사의 자격을 고졸로 제한해 간호조무사는 간호사의 보조업무만 수행하도록 한다. 한편 대졸자는 간호조무사 자격을 얻을 수가 없어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 받게 된다. 지금까지는 장기요양기관이나 사회복지시설, 어린이집 등 지역사회에서 간호조무사가 간호사 없이 촉탁의의 지도하에 간호업무를 하고 있다. 하지만 간호법이 제정되면 간호조무사가 간호사를 의무 채용해야 하므로 간호조무사의 일자리는 위협받게 되며 이들은 대량 실직 사태에 직면하게 된다.

현행 의료법에는 의사와 간호사를 포함한 의료인의 명확한 업무 범위와 역할을 포함한 통합 의료 법령이 존재한다. 즉 의사법이나 한의사법 그리고 간호조무사법이나 방사선사법은 따로 없다. 이런 상황에서 간호법을 만든다면 의사법, 한의사법 등 각 직역에 유리한 내용만을 포함한 각 직역단독법안 제정 요구 또한 빗발칠 것이 불보듯 뻔하다.

각 직역 개별법 사이에 서로 침범하는 업무범위로 인한 분란은 지금보다 더욱 심각해지고, 의료계 밥그릇 논쟁은 끊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관련법으로 인해 의료인의 팀플레이가 저해되면 원활하고 체계적인 의료서비스 제공에 심각한 차질을 빚게 된다.

의료현장은 자기희생을 바탕으로 상호협력을 통해 최상의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곳이다. 코로나 팬데믹 뿐 아니라 평소에도 모든 의료 직역이 고통을 분담하고 헌신하는 것을 서로가 알고 있다. 그 사실에 눈 질끈 감고 우리만 힘들고 고생했으니 이 기회에 전리품을 얻으려는 생각은 옳지 못하다. 정치권은 간호법 제정이 갖는 의미를 다시 생각하고 간호법 제정을 중단해야 한다. 김상훈 광주시의사회 법제이사·광주병원 내과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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