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투엘물류 김창호 대표이사가 지난 16일 영광군수실을 방문하여 고향사랑기부금 최고액인 500만 원을 기부했다.
2007년 설립되어 올해 17년째를 맞이한 ㈜비투엘물류는 화물운송 중개, 대리 및 관련 서비스업을 주 업종으로 국제물류주선 및 복합 운송서비스 분야에서 경쟁력을 강화한 공로로 제40회 국가생산성대회 서비스우수기업 산업통상부장관상을 수상하는 등 건실한 중견 물류기업으로 입지를 다지고 있다.
김창호 대표이사는 낙월면 안마도 출신으로 평소에도 고향을 향한 남다른 사랑과 헌신으로 매년 고향을 위해 성금을 기탁하는 등 평소에도 고향사랑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
이날 기탁식에서 김 대표이사는 "고향을 사랑하는 마음은 표현하고 또 표현해도 부족한 것 같다"면서 "우연한 기회로 고향사랑기부제라는 좋은 제도를 접하고 또 이렇게 고향사랑기부에 동참할 수 있어 기쁘고 앞으로도 고향 발전을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강종만 영광군수는 "매년 영광군을 위한 따뜻한 마음을 전해주는 김창호 대표이사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군 발전에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을 약속드리며 소중한 기부금은 취약계층과 군민들의 행복한 삶을 위해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영광=한상목기자 alvt715@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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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들던 전직 군인, 펜 들고 '광주 청년' 옆에 서다 박민국 팀장(오른쪽에서 4번째)이 수색중대장 근무 시절 헬기레펠 후 수색작전 훈련을 위해 대기하며 촬영한 사진. "어느 날은 출근할 힘이 없는 거예요. 그야말로 번아웃이 온 거죠.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다 구시청사거리에서 벤치에 앉아 일을 할지 말지 앉아서 생각했어요. 그러다 문득 담당하는 사업이 생각났습니다. 저활력 청년을 지원하는 사업이었어요. 그걸 기다리고 있는 청년들이 있을 걸 생각하니 '가야지'라는 생각이 확 들면서 그대로 회사로 갔습니다. 기다리는 청년이 있다는 것. 그게 제가 이 일을 계속하는 이유입니다."전직 직업군인에서 청년정책 실무자가 된 박민국 광주청년센터 교류협력팀장. 그가 청년들을 위한 공공 정책의 한가운데에 서게 된 여정은 결코 단선적이지 않다. 학군단 장교 출신으로 하고 싶던 군인의 길을 선택한 그는 그야말로 '물 만난 물고기'처럼 청춘을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데 열심이었다. "재미있게 했다"는 그의 표현대로 사명감과 적성 모든 게 맞아떨어졌다.그러다 그의 업(業)이 단번에 바뀌게 되는 일련의 사건들이 줄지어 생겼다. 할머니가 돌아가시는 사건, 고향인 광주에 내려와 살겠다는 결혼 약속, 고향과는 무척이나 달랐던 곳에서 살면서 얻게 된 향수병…."광주에만 오리탕이 있는 줄 몰랐어요. 그걸 사 먹으려고 춘천까지 갔는데도 안 팔더라고. 고향이 그리웠어요. 강원도는 광주와 생태계부터가 달랐습니다. 광주와 달리 무당개구리가 대부분이었고, 온통 산이 절벽처럼 둘러쌓아 있어요. 살던 데가 익숙하고 또 친구가 광주에 많아서 그런지 고향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내와 약속한 것도 있지만 고향이 그리워서 광주에 가겠다고 결심했습니다."그러나 귀향 이후의 삶은 막막했다. 군인의 길을 걸었던 그가 사회에 나와서는 모든 걸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제대 후 마케팅, 포장솔루션 회사, 영어학원 직원까지, 방향 없이 전전하던 시절이었다. 그에 더해 아이가 둘이 있는 가장이라는 무게까지 짊어진 취준생이었다. 대학 졸업 후 곧바로 군인의 길을 걸었던 그가, 요즘 청년들의 방황과 고민을 절감하는 시간이었다고 김 팀장은 회고했다.결국 박 팀장이 택한 길은 '청년 곁에 있는 활동가'였다. 처음부터 청년 정책에 대한 관심이 있던 건 아니었다. 우연히 광주청년센터에서 홍보기획팀장을 뽑는 걸 보고 흥미를 느꼈다. 과거 군 시절 간부 동아리를 기획했던 경험, 군에서 병사들의 고충을 나누며 쌓은 경험이 청년센터에 대한 관심으로 이끌었다.박민국 광주청년센터 교류협력팀장는 지난 9일 광주 동구 광주청년센터 사옥에서 무등일보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전직 군인이었던 박 팀장은 이제 청년의 삶을 지키는 최전선에 서 있다."군대에서 병사들의 고민을 듣는 건 일상이었어요. 취업 걱정, 가족 문제, 인간관계 고민까지…. 계급과 나이 차이를 넘어서 이야기를 듣고 공감해주는 훈련을 자연스럽게 받았죠. 더군다나 저는 취준 기간이 거의 없었지만, 군 시절 병사들의 삶을 들여다보며 그 막막함과 불안을 간접적으로 체감했습니다. 그게 지금 청년을 이해하는 데 밑바탕이 되는 것 같아요."박 팀장이 청년들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듣고 공감할 수 있었던 데는 군 시절의 경험이 결정적인 기반이 됐다. 이 경험은 청년들의 다층적인 고민을 이해하고, 민감한 문제들을 다룰 때 큰 도움이 됐다.그렇게 2020년 광주청년센터에 합류한 지 올해로 5년째다. 입사 이후 그가 신선한 충격을 받은 것은 민간에서 자발적으로 청년 공간을 내주는 사람들, 자비를 들여 청년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런 활동들이 우리 사회를 돌아가게 하는 축이라는 걸 광주청년센터 점차 알게 됐고 자연스럽게 또 절실하게 청년이 필요로 하는 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청년과 얘기하다 보면 결국은 사회 구조를 다 바꿔야 해요. 하지만 매우 어려운 일이예요. 사회가 수십년간 축적한 구조적 문제가 하나씩 터져 나오고 있는데 이걸 5년, 10년 내 해결할 수 있을까요? 청년이 빠져나가서 광주가 140만명 인구가 붕괴됐다고 하는데 150만명으로 회복한다고 해서 공장을 만든다고 해서 될까요? 청년 문제는 단편적 현상이 아니라, 오래도록 축적되고 구조화된 문제들입니다. 청년들의 고민은 단순히 일자리가 없다는 말보다, 내 삶을 담을 수 있는 일이 없다는 말처럼 들립니다."박 팀장은 그런 구조적 문제를 단숨에 해결할 순 없어도 이 사회를 살아가는 청년들을 위한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을 수는 있다고 믿는다. 광주청년센터가 올해 10주년을 맞이한 건 다시금 본질적 고민을 되돌아보는 계기다. 가장 중요한 건 끊어진 연결을 다시 복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팬데믹이 남긴 단절, 빠르게 변화한 사회 환경 속에서 청년과 사회, 청년과 자원, 청년과 청년 사이를 다시 이어야 한다는 게 그의, 또 광주청년센터의 사명이다.지난 9일 광주 동구 광주청년센터 1층에서 만난 박민국 교류협력팀장.특히 박 팀장은 니트(NEET)들을 위한 가상회사 '니트컴퍼니' 운영 경험을 되살리고 싶다고 밝혔다. 소속 없는 청년들에게 '어디 다닌다'고 말할 수 있는 경험을 주고 싶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누군가의 동료가 되는 것, 함께 프로젝트를 해보는 것, 그 속에서 일의 의미를 찾으면서 청년이 사회와 연결될 수 있다고 믿는다.그러면서 박 팀장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덧붙였다."단순히 청년들에게 돈을 줘서만 해결될 건 아닙니다. 광주시의 청년 예산이 1년에 3천억원이 넘는다고 하는데 단순히 계산하면 1인당 100만원까지도 줄 수 있는 돈이예요. 청년 정책 없애고 매년 이 돈을 청년들에게 준다고 해서 청년 삶의 질이 나아지는 건 아닐겁니다. 결국 100만원을 받는 것보다 더 효능감 있는 정책을 만들어 내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건 연결에서 시작합니다."글·사진=이삼섭기자 seobi@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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