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도군이 진도농협과 완도농협이 고향사랑기부제의 성공적인 안착을 위해 상호교차 기부에 동참했다고 밝혔다.
이번 상호기부는 진도농협 직원들이 완도군에, 완도농협 직원들이 진도군에 1천만원씩 상호 기부하며 지역 발전을 응원했다.
진도농협 관계자는 "고향사랑기부제의 안착을 위해 농협 직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며 "앞으로도 고향사랑기부제의 활성화를 위해 진도군과 다양한 방안을 찾는 데 힘을 보태겠다"고 말했다.
김희수 진도군수는 "고향사랑기부제에 동참해 준 두 지역의 농협 직원들께 진심으로 감사하다"며 "계속해서 고향사랑기부제 홍보 강화로 지역의 기관?단체와 협력해 진도군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진도=박현민기자 hm3753@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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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들던 전직 군인, 펜 들고 '광주 청년' 옆에 서다 박민국 팀장(오른쪽에서 4번째)이 수색중대장 근무 시절 헬기레펠 후 수색작전 훈련을 위해 대기하며 촬영한 사진. "어느 날은 출근할 힘이 없는 거예요. 그야말로 번아웃이 온 거죠.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다 구시청사거리에서 벤치에 앉아 일을 할지 말지 앉아서 생각했어요. 그러다 문득 담당하는 사업이 생각났습니다. 저활력 청년을 지원하는 사업이었어요. 그걸 기다리고 있는 청년들이 있을 걸 생각하니 '가야지'라는 생각이 확 들면서 그대로 회사로 갔습니다. 기다리는 청년이 있다는 것. 그게 제가 이 일을 계속하는 이유입니다."전직 직업군인에서 청년정책 실무자가 된 박민국 광주청년센터 교류협력팀장. 그가 청년들을 위한 공공 정책의 한가운데에 서게 된 여정은 결코 단선적이지 않다. 학군단 장교 출신으로 하고 싶던 군인의 길을 선택한 그는 그야말로 '물 만난 물고기'처럼 청춘을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데 열심이었다. "재미있게 했다"는 그의 표현대로 사명감과 적성 모든 게 맞아떨어졌다.그러다 그의 업(業)이 단번에 바뀌게 되는 일련의 사건들이 줄지어 생겼다. 할머니가 돌아가시는 사건, 고향인 광주에 내려와 살겠다는 결혼 약속, 고향과는 무척이나 달랐던 곳에서 살면서 얻게 된 향수병…."광주에만 오리탕이 있는 줄 몰랐어요. 그걸 사 먹으려고 춘천까지 갔는데도 안 팔더라고. 고향이 그리웠어요. 강원도는 광주와 생태계부터가 달랐습니다. 광주와 달리 무당개구리가 대부분이었고, 온통 산이 절벽처럼 둘러쌓아 있어요. 살던 데가 익숙하고 또 친구가 광주에 많아서 그런지 고향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내와 약속한 것도 있지만 고향이 그리워서 광주에 가겠다고 결심했습니다."그러나 귀향 이후의 삶은 막막했다. 군인의 길을 걸었던 그가 사회에 나와서는 모든 걸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제대 후 마케팅, 포장솔루션 회사, 영어학원 직원까지, 방향 없이 전전하던 시절이었다. 그에 더해 아이가 둘이 있는 가장이라는 무게까지 짊어진 취준생이었다. 대학 졸업 후 곧바로 군인의 길을 걸었던 그가, 요즘 청년들의 방황과 고민을 절감하는 시간이었다고 김 팀장은 회고했다.결국 박 팀장이 택한 길은 '청년 곁에 있는 활동가'였다. 처음부터 청년 정책에 대한 관심이 있던 건 아니었다. 우연히 광주청년센터에서 홍보기획팀장을 뽑는 걸 보고 흥미를 느꼈다. 과거 군 시절 간부 동아리를 기획했던 경험, 군에서 병사들의 고충을 나누며 쌓은 경험이 청년센터에 대한 관심으로 이끌었다.박민국 광주청년센터 교류협력팀장는 지난 9일 광주 동구 광주청년센터 사옥에서 무등일보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전직 군인이었던 박 팀장은 이제 청년의 삶을 지키는 최전선에 서 있다."군대에서 병사들의 고민을 듣는 건 일상이었어요. 취업 걱정, 가족 문제, 인간관계 고민까지…. 계급과 나이 차이를 넘어서 이야기를 듣고 공감해주는 훈련을 자연스럽게 받았죠. 더군다나 저는 취준 기간이 거의 없었지만, 군 시절 병사들의 삶을 들여다보며 그 막막함과 불안을 간접적으로 체감했습니다. 그게 지금 청년을 이해하는 데 밑바탕이 되는 것 같아요."박 팀장이 청년들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듣고 공감할 수 있었던 데는 군 시절의 경험이 결정적인 기반이 됐다. 이 경험은 청년들의 다층적인 고민을 이해하고, 민감한 문제들을 다룰 때 큰 도움이 됐다.그렇게 2020년 광주청년센터에 합류한 지 올해로 5년째다. 입사 이후 그가 신선한 충격을 받은 것은 민간에서 자발적으로 청년 공간을 내주는 사람들, 자비를 들여 청년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런 활동들이 우리 사회를 돌아가게 하는 축이라는 걸 광주청년센터 점차 알게 됐고 자연스럽게 또 절실하게 청년이 필요로 하는 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청년과 얘기하다 보면 결국은 사회 구조를 다 바꿔야 해요. 하지만 매우 어려운 일이예요. 사회가 수십년간 축적한 구조적 문제가 하나씩 터져 나오고 있는데 이걸 5년, 10년 내 해결할 수 있을까요? 청년이 빠져나가서 광주가 140만명 인구가 붕괴됐다고 하는데 150만명으로 회복한다고 해서 공장을 만든다고 해서 될까요? 청년 문제는 단편적 현상이 아니라, 오래도록 축적되고 구조화된 문제들입니다. 청년들의 고민은 단순히 일자리가 없다는 말보다, 내 삶을 담을 수 있는 일이 없다는 말처럼 들립니다."박 팀장은 그런 구조적 문제를 단숨에 해결할 순 없어도 이 사회를 살아가는 청년들을 위한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을 수는 있다고 믿는다. 광주청년센터가 올해 10주년을 맞이한 건 다시금 본질적 고민을 되돌아보는 계기다. 가장 중요한 건 끊어진 연결을 다시 복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팬데믹이 남긴 단절, 빠르게 변화한 사회 환경 속에서 청년과 사회, 청년과 자원, 청년과 청년 사이를 다시 이어야 한다는 게 그의, 또 광주청년센터의 사명이다.지난 9일 광주 동구 광주청년센터 1층에서 만난 박민국 교류협력팀장.특히 박 팀장은 니트(NEET)들을 위한 가상회사 '니트컴퍼니' 운영 경험을 되살리고 싶다고 밝혔다. 소속 없는 청년들에게 '어디 다닌다'고 말할 수 있는 경험을 주고 싶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누군가의 동료가 되는 것, 함께 프로젝트를 해보는 것, 그 속에서 일의 의미를 찾으면서 청년이 사회와 연결될 수 있다고 믿는다.그러면서 박 팀장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덧붙였다."단순히 청년들에게 돈을 줘서만 해결될 건 아닙니다. 광주시의 청년 예산이 1년에 3천억원이 넘는다고 하는데 단순히 계산하면 1인당 100만원까지도 줄 수 있는 돈이예요. 청년 정책 없애고 매년 이 돈을 청년들에게 준다고 해서 청년 삶의 질이 나아지는 건 아닐겁니다. 결국 100만원을 받는 것보다 더 효능감 있는 정책을 만들어 내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건 연결에서 시작합니다."글·사진=이삼섭기자 seobi@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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