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수터) 폭염과 탁족(濯足)

@윤승한 입력 2020.08.13. 18:50

'탁족(濯足)'은 예로부터 선비들이 즐겨 활용했던 피서법이다. 맑고 시원한 계곡물에 발을 담가 더위를 쫓는 것을 말한다.

다산 정약용은 유배에서 풀려난 뒤 어느 무더운 여름날 지은 그의 시 '소서팔사(消暑八事)'에서 탁족을 예찬했다. 소서팔사는 더위를 식히는 여덟 가지 방법이란 의미다.

솔밭에서 화살쏘는 놀이하기, 느티나무 그늘에서 그네타기, 빈 정자에서 투호놀이 하기, 깨끗한 돗자리 펴고 바둑두기, 서쪽 연못에서 연꽃 구경하기, 동쪽 숲에서 매미소리 듣기, 비 오는 날에 시를 지으며 보내기, 달 밝은 밤에 물가에 발 담그기가 바로 그것이다. 마지막 여덟 번째가 바로 '월야탁족(月夜濯足)' 즉 '달 밝은 밤에 물가에 발 담그기'다.

옛 그림 속에서도 탁족은 운치있게 묘사된다. 조선 중기 문인화가인 이경윤의 '고사탁족도'가 대표적이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이 탁족도는 나무 아래에서 바지를 무릎까지 걷어올린 한 선비가 다리를 꼰 채 발을 강물에 담근 모습을 그리고 있다. 보는 것만으로도 시원함이 절로 느껴진다.

조선시대 세시풍속을 기록한 '동국세시기' 유월조에는 "삼청동 남북 계곡에서 발씻기 놀이를 한다(三淸洞…南北溪澗 爲濯足之遊)"는 기록이 있기도 하다.

시원하기로는 온몸을 물속에 푹 담그는 게 최고다. 하지만 조선시대 체면을 중시했던 선비문화 탓에 그나마 더위를 식힐 수 있었던 방법으로 불가피하게 탁족을 선택했을 법하다.

장맛비가 잠시 그치자 연일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지난 11일 광주와 전남 일부 지역에 내려진 폭염주의보가 13일 오전 광주·전남 전역으로 확대됐다. 폭염주의보는 일 최고체감온도가 33도 이상인 상태가 2일 이상 지속된다고 예상되거나 급격한 체감온도 상승이 예상될 때 발령된다. 열대야로 잠못드는 날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12일 밤시간대 광주 기온은 25.7도였다. 완도·진도·해남은 27도를 넘나들었다. 기상청은 이같은 무더위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코로나19와 긴 장마에 폭염까지 겹쳐 지치고 힘든 여름이다. 이럴 때일 수록 마음을 잘 다스리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급하지 않은 작은 여유가 바로 그것이다. 옛 선비들의 탁족의 의미를 다시한번 새겨볼 만하다.

윤승한 논설위원 shyoon@sr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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