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수터) 광주와 '반지하'

@유지호 입력 2022.12.11. 16:43

영화는 곧 현실이자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 되곤 한다. 한국어 발음 그대로 만들어진 영어 단어 중 하나가 'banjiha'(반지하)다. 올해 여름 기록적 폭우로 신림동 반지하에 거주하던 일가족 3명이 숨지는 참사를 외신들이 보도하면서다. 영화 '기생충'이 소환됐다. 장마철 폭우는 중요한 사회적 메타포가 됐다. 침수된 반지하방에서 가재도구들이 둥둥 떠다니는 장면은 재난의 빈부 격차를 시각적으로 명징하게 직조해 낸다.

장마는 '한해 중 비가 가장 많이 내리는 여름철 구간'을 뜻한다. 길다(長)는 뜻의 '댱'과 물의 옛말인 '맣'의 합성어로 알려졌다. '댱맣'에서 요즘에 쓰는 '장마'로 차츰 변해왔다는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에선 장마를 표현할 때 '흙비'를 의미하는 '림우' 또는 '음우' 등을 썼다. 이웃나라인 중국(梅雨)과 일본(梅雨)은 한자로 매화 '매'자를 쓴다. 매실이 익을 무렵 시작되기 때문이다.

올해 장마철 강수량(284.1㎜)은 평년(295.4~384.8㎜)을 밑돌았다. 장마가 끝난 뒤 더 많이 내렸다. 중부와 남부지방 강수량 차는 458㎜로 95년(536.4㎜) 이후 두 번째로 차이가 컸다. 수도권이 폭우에 시달리는 사이 남부는 가뭄에 신음한 배경이다. 남부 가뭄일은 85일로 중부보다 53일 더 많았다. 이 마저도 비가 거의 내리지 않는 '마른 장마'가 나타났다. 광주시민의 마실 물이 말라가고 있는 이유다.

광주가 92년 겪었던 제한급수의 고통을 또 다시 경험하게 됐다. 마지노선은 동복댐의 저수율 14%대. 30% 벽은 지난 4일(29.5%, 2천720만톤) 무너졌다. 10%p 떨어지는데 고작 3개월 걸렸다. 시민 1명 당 하루 사용량은 332리터. 산술적으로 100일 정도 남았다. 또 다른 상수원인 주암댐도 저수율 30% 붕괴가 초읽기에 들어갔다.

광주가 고난의 행군을 시작했다. 전략은 장마시즌인 내년 6월까지 버티는 쪽으로 맞춰져 있다. 대체 수원 개발도 내년 4월 이후 가능하다. 문제는 올해와 같은 기상상황이 되풀이 됐을 때다. 대응 시스템에 대한 재점검이 필요하다. 하나 더, 재난은 평등하지 않다. 빈부 격차가 불편함을 넘어 어느새 '생명' 또는 '생존'의 문제가 됐다. 신림동 참사와 기생충 '반지하'의 교훈이다. 제한급수 등 재난에 앞서 사회적 안전망을 촘촘하게 짜고, 취약 계층부터 세심하게 돌봐야 할 이유다.

유지호 부국장대우 겸 뉴스룸센터장 hwaone@sr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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