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수터) 죽음의 유리벽

@이윤주 입력 2023.01.12. 22:41

인간이 자연을 헤집어 낸 길 위에서 야생동물이 차에 치어 죽는 '로드 킬(road kill)'. 운행 속도가 높은 국도나 고속도로에서 빈번하던 로드킬이 도심까지 확대되고 있다.

국립생태원이 낸 자료를 보면 2021년 동물 찻길 사고는 3만7천261건으로, 전년(1만5천107건) 대비 2.5배 증가했다. 그런데 이 중 47%인 1만7천527건이 고양이로 전체 로드킬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했다. 동물들의 길 위 죽임이 사고가 아닌 일상이 된 셈이다.

그런데 인간만을 위한 길 위에서 죽어가던 동물들의 비극이 이제는 하늘까지 덮쳤다.

광주에서 지난해 건물 유리창이나 방음벽 등 인공 구조물에 충돌해 죽은 새가 2천626마리로 전국에서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광주 동물권 단체 성난 비건과 국립생태원, 네이처링 등이 집계한 수치로, 200마리였던 2021년에 비해 13배가 늘었다.

장소별로는 방음벽이 2천181건(83%)으로 가장 많았고, 건물 유리창 306건(12%), 유리 난간이나 버스정류장 등 기타 구조물 138건(5%)의 순이다.

종별로는 멧비둘기(268마리), 직박구리(165마리), 집비둘기(110마리) 순이었다. 또 천연기념물인 새매, 참매, 소쩍새 등 7종 16마리의 법종보호종도 포함돼 있었다.

야생 조류의 유리창 충돌은 새들이 투명한 유리창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새는 비행을 위해 얇고 속이 비어있는 골격을 지니고 있어 충격에 취약하다. 유리창과 충돌한 새는 잠시 기절하거나 가벼운 상처만 입기도 하지만, 대부분 내출혈이나 타박상으로 죽는다.

새들의 인공구조물 충돌 사고가 급증한 것은 건물의 유리창 사용량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도로에 투명 방음벽이 증설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서식지를 가르는 도로에 투명 방음벽이 설치되는 경우가 많아 멸종위기종, 천연기념물, 철새와 텃새를 가리지 않고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방음벽과 유리창에 투명 테이프 부착을 제도화하는 것이 해결방안이라고 한다.

인간만을 위한 세상은 아닐진데, 인간때문에 죽어가는 생명들이 너무 많다. 참으로 부끄러운 주인행세가 아닌가 싶다. 지구상에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와의 진정한 공존을 고민해야 할 때다.

이윤주 지역사회에디터 storyboard@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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