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수터) 호남과 호구 사이 그 어디쯤

@이삼섭 입력 2024.03.13. 17:28

"호의가 계속되면은 그게 권리인 줄 알아요."

영화 부당거래 속 최고의 명대사로 꼽히는 이 말은 현 우리 사회에서 살아가는 데 최고의 격언으로 사용된다. 처음은 호의였다가도 한번, 두 번 그렇게 반복이 되면 어느샌가 '당연히 해줘야 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처음에는 호의에 고마워하다가도 반복되면서 초심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당연하게 받아야 할 것으로 착각하는 건 인간의 본성에 가깝다. 다른 말로 익숙해지는 것이다. 어쩌다가 호의를 주지 않으면 그동안의 호의는 잊은 채 '나쁜 사람'으로 몰아간다. 그래서 익숙해진 호의는 깨뜨리기가 참 어렵다. 나쁜 사람이 될 것을 각오해야 하기 때문이다.

'착한 사람' 콤플렉스에 빠져 호의를 계속 베풀면 자연스럽게 '호구'가 된다. 호의는 줄 대로 주고 정작 호구 취급을 받는 비극인 셈이다. 표준국어대사전은 호구를 '어수룩하여 이용하기 좋은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설명한다. 처음부터 호구는 없다. 자연스럽게 호구가 되가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인지라 호구도 쌓이고 쌓여 한번은 폭발하곤 한다. 2016년 20대 총선 당시 호남이 그랬다. 민주당의 호구 취급에 반감이 쌓였던 호남은 국민의당에 지지와 의석을 몰아줬다.

본래 중도적 투표 성향을 보이던 호남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이후 반(反)보수정당 정서와 1990년 3당 합당으로 인한 '호남 포위' 등으로 인해 수십 년간 '무조건 민주당'만 찍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보수정당으로부터 멸시와 외면을, 민주당으로부터는 호구 취급을 받으면서 쌓인 울분이 한꺼번에 터진 것이다.

수십 년 민주당에 몰표를 던지다가 어쩌다 한번 다른 당에 힘을 실어준 것으로 호남은 민주당으로부터 '배신자' 취급을 감내해야 했다. 그토록 사랑했던 민주당의 지지자로부터 보수정당보다 더한 '지역 혐오'에 시달려야 했다.

대신 역대 누리지 못했던 '러브콜'을 받았다. 이듬해 대선에서 당시 민주당 문재인 당대표가 일주일이 멀다 하고 광주를 찾았고 김정숙 여사는 '호남 특보'를 자처하며 광주에 상주했다. 국민의당은 20조원 규모의 광주 공약을 발표했다. 지금 수도권, 충청권과 부산권이 누리는 '몸값'을 톡톡히 누릴 수 있었다. 몸값은 누가 올려주지 않는다. 호남과 호구는 한 끗 차이다.

이삼섭 취재1본부 차장대우 seobi@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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