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수터) 모범시민

@선정태 입력 2024.03.20. 17:47

헐리우드 영화 모범시민은 가족을 살해한 범인이 가벼운 처벌 후 자유로워진 가장의 복수를 그린 영화다. 자신의 가족을 살해한 가해자가 가벼운 처벌로 풀려나자, 가해자뿐 아니라 그를 적극적으로 돕거나 방조한 판사와 변호사, 경찰까지 응징하는 것이 줄거리다. 법의 맹점 때문에 적절한 처벌을 받지 못한 빌런을응징한다는 통쾌함을 간접 경험하게 하는 영화였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법을 악용하거나, 법도 어쩌지 못한 가해자들을 주인공 스스로 처벌 내리는 드라마가 큰 인기를 끌었다. 이탈리아 마피아 조직원이 더 큰 악을 처벌한다는 빈센조, 억울한 피해자를 구제하는 단체를 그린 모범택시, 심각한 학교폭력을 당했던 피해자의 통쾌한 복수를 그린 더글로리, 법이 제대로 심판하지 못한 범죄자를 처벌한다는 비질란테, 죽인 이들이 알고보니 죽어 마땅했다는 살인자ㅇ난감이 대표적이다.

현실에서는 드라마나 영화보다는 사소하고 약하지만 더 짜릿한, 사적 제재에 열광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이른바 주차빌런에 대한 응징이다. 고급 승용차라며 두칸을 차지한 차주나 주차장 입구를 막은 차량에 대한 복수부터 시작해 음주 사망사고를 낸 차주 가족에 대한 시민들의 복수도 있다.

최근에는 악성 민원으로 9급 공무원을 사망에 이르게 한 민원인이 온라인에서 신분이 밝혀지기도 했으며, 그 이전에는 집요한 항의로 교사를 죽음에 내몬 학부모의 신상이 밝혀지지도 했다. 지금도 서이초 사건의 원인이 된 학부모의 신상을 알기 위한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다.

정당방위는 일상적으로 가장 많이 접하는 사적제재지만, 그 선을 지키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아무리 경황이 없는 상황이었든, 피해자가 죽을 위기였든 법은 상관하지 않는다. 법조인들은 선을 조금이라도 넘으면 피해자가 가해자가 돼버린다며 사적 제재의 위험성을 경고하고는 한다.

사람들이 실정법 위반 여부와 상관없이, 사적 제재라는 통쾌한 사이다에 열광하고 옹호하는 이유는 사라진 권선징악의 부활을 꿈꾸기 때문이다. 나를 지켜줄 것이라고 믿었던 법이 내 편이 아니었다는, 합리적인 좌절과 악인에 대한 정당한 분노를 반영한 것이다.

선정태 취재1본부 부장 wordflow@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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