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수터) 분초사회

@한경국 입력 2024.04.15. 13:15

"우리 3시17분에 만나요."

최근에 있었던 일이다. 20대초반쯤 되는 청년과 약속을 잡던 중 나는 의문이 들었다. 그녀석이 3시17분에 만나자고 한 것이다. 15분도 아니고, 20분도 아니고, 17분이었다.

이게 무슨 의미냐고, 농담으로 하는 소리냐고 웃으며 물었지만 그녀석은 진지했다. 전혀 흔들림 없는 말투로 "너무 빠르세요? 그럼 10분 늦춰서 27분에 볼까요?"라고 되물었다.

이녀석 뭘까 싶었다. '숫자 7을 좋아해서 7분에 맞춰서 사람을 만나는 것인가', '오늘의 사주에 분침이 7분을 가리킬때 귀인을 만난다고 한 것인가' 별별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의 의도는 순수했다. 최대한 합리적으로 생각해서 17분에 보자고 한 것이었다. 아르바이트를 3시에 마치친 뒤 10분 동안 인수인계를 하고, 7본 동안 걸어오면 딱 17분이 걸린다는 게 그 녀석 계산이다.

참 신기하고 독특한 청년이라고 생각했지만, 내 생각이 틀렸다. 요즘 젊은세대들 상당수가 17분에 보자는 그녀석처럼 분단위로 쪼개서 약속을 잡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심지어 트렌드로 자리 잡았을 정도라고.

이 같은 사회현상을 '분초사회'라고 부른다. 분초사회는 시간이라는 희소자원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하려는 사회적 경향을 뜻한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동안 분초사회로 변해가는 모습들은 많았다.

하루를 쉬는 개념이었던 연차가 하루 중 4시간만 근무하는 반차로 쪼개지더니, 요즘에는 2시간만 쉬는 반반차도 등장하고 있다. 은행이나 주민센터 등을 개인적인 일로 이용하기 위해 귀한 연차를 소모하는게 아까워서 나온 것이다.

영상 콘텐츠를 소비하는 방식도 달라졌다. 예전에는 결말이 있는 리뷰는 스포일러 때문에 악플이 많이 달렸지만 요즘에는 16부작 드라마를 2시간으로 요약해 놓은 영상이 인기다. 긴 시간 정주행 했던 드라마가 '모든 것이 꿈이었다'는 식의 허무한 결말을 맞이하면 시간을 낭비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2시간도 아까워 자막을 켜고 1.5배속으로 보는 경우도 흔하다.

나이가 40이 다 돼가지만 필자는 MZ세대라고 우기고 있었다. MZ세대 범위가 1980년대생부터 2000년대 초반에 출생한 세대들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젠 Z세대들에게 세대차이를 느껴 감히 MZ세대라고 말하지 못하겠다. 한경국 취재2본부 차장 hkk42@mdilbo.com

슬퍼요
0
후속기사 원해요
0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광주・전남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 교통정보, 미담 등 소소한 이야기들까지 다양한 사연과 영상·사진 등을 제보받습니다.
메일 mdilbo@mdilbo.com전화 062-606-7700카카오톡 플러스친구 ''무등일보' '

댓글0
0/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