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수터) '스벅'과 '가매초밥'

@유지호 입력 2024.04.25. 17:47

광주읍성은 '세종실록지리지(1454년)'에 처음 등장한다. '읍성은 돌로 쌓았고, 둘레가 972보(步)이다'는 기록이 그 것이다. 지금의 충장치안센터와 구 시청 사거리, 전남여고 뒷담, 옛 미국문화원 자리는 읍성의 4대문이 있던 곳이다. 차례로 공북문(북문)·진남문(남문)·서원문(동문)·광이문(서문)으로 불렸다. 일제 강점기인 1908년 철거됐다. 일제가 내각령 1호를 내려 성벽을 허문 자리에 도로를 냈다.

당시 북문·남문 안거리 일부를 합쳐서 조성한 게 충장로다. 일제 때 '혼마치'(본정)라 불렸다. 1930년 읍성 일대가 광주읍으로 승격될 때다. 정과 정목은 행정단위를 가리킨다. 일본인들이 모여 살았던 혼마치는 행정·경제의 중심이었다. 현재 서남동∼충장로 5가를 잇는 길이 1.66㎞, 폭 8m 도로. 본정은 '충장로', 정목은 '가'로 바뀌었다. 도로명은 46년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이었던 김덕령 장군의 시호(충장공)에서 땄다.

90년대까지 호남 최대 상권이었다. 광주의 부를 상징한다는 말이 돌 정도였다. 그 만큼 광주 상권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높았다. 백화점이 대표적이다. 충장로의 가든·화니 양대 백화점은 쇼핑의 중심지였다. 패션을 선도하는 '광주 명동'으로 통했다. 1~3가는 쇼핑몰·의류전문점·액세서리 등이, 4~5가는 주단포목점과 금은방 점포들이 즐비했다. 결혼을 위해 거쳐 가야만 했던 이유다. 땅 값도 가장 비쌌다.

상권은 분산됐다. 상무·첨담·수완지구 등 택지개발이 본격화 되면서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면서 도심 인구가 빠져나갔다. 95년엔 신세계·송원백화점이 외곽에 들어섰다. 도심에 있던 전남도청과 시외버스·고속버스터미널 이전도 파장을 키웠다. 광주시내 최대 번화가가 급속도로 쇠퇴한 배경이다. 빈곤의 악순환처럼, 도심공동화는 갈수록 심화됐다.

충장로가 텅 비어가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충장로·금남로 상권 중대형 상가 공실률은 28%. 전국 평균(13.5%) 보다 두 배 이상 높았다. 유명 브랜드 매장마저 빠져나가고 있다. 커피전문점 스타벅스와 'H&M 와이즈파크몰'이 대표적이다. 맛집 중 한 곳인 가매초밥도 최근 문을 닫았다. "지금처럼 상권이 침체한 적은 없었다." 광주의 '맨해턴'으로 불렸던 충장로가 큰 위기를 맞았다. 100년 역사와 함께 광주 시민들의 추억마저 사라지는 것 같아 씁쓸하다.

유지호 디지털본부장 hwaone@sr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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