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수터) 힘 없는 학폭 대응

@김현주 입력 2024.07.15. 18:13

세상 활달했던 지인이 최근 얼굴에 근심이 어리기 시작했다. 살다 보면 별의별 일이 다 있으니 별일 아니길 바라며 무슨 일인지 캐묻지 않았다. 그렇게 몇 주가 지나도 안색의 변화가 없자 백지장도 맞들면 낫지 않겠나 싶어 연유를 묻자 뜸을 들이다 털어놓은 이야기는 '학교폭력'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인 딸아이가 학폭을 당하고 있는 것 같다는 것이다. 지인은 처음에는 친구 사이에 자주 빚는 단순한 갈등으로 인식하고 '먼저 사과하고 친하게 지내라'며 화해를 유도했단다.

아이도 엄마 말에 등 떠밀려 자존심을 굽히고 상대방의 억지스러운 주장에도 화해하고자 어른들이 마련한 장소로 나섰지만 잘 풀리지 않았다. 도리어 갈등이 고조되는 결과를 낳게 됐다.

실제로 그날 이후 아이들은 '말을 안 하는 단계'를 넘어 악의적인 소문을 내는 등 괴롭힘을 가하는 왕따의 단계로 접어들었다.

'참을 만하다'는 아이의 말에 참다못한 지인은 결국 담임교사를 만나 학폭 피해를 주장하며 학교 차원의 조치를 요구했다.

지인은 당장이라도 학폭이 멈출 것이라 기대했지만 두 달여가 지나도록 변한 건 없었다.

교사는 가해 학생들을 만나 상담을 하고 수업 시간이나 쉬는 시간에 아이들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고 했지만 학폭은 끝나지 않고 날로 교묘해졌다. 한참 감수성 예민한 나이의 아이가 아무도 말을 걸지 않는 교실에서 하루를 버티는 것이 얼마나 잔혹하고 무서운 일이겠는가.

그런데도 교육현장에서 해주겠다는 일이 고작 '피해 아동에 대해 신경 쓰겠다'는 말뿐이었다.

힘없는 그 말에 기댈 수밖에 없는 부모의 마음은 오죽할까 싶다.

지난 3월부터 초중등교육법 시행규칙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초·중·고교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되는 학교 폭력 가해 및 처분 기록의 보존 기간이 기존 졸업 후 2년에서 4년으로 늘어났으며 2026학년도부터는 대입에도 학폭 관련 기록이 반영되는 등 학폭 가해자는 입시에서 불이익을 입을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됐다.

교육부가 '학폭을 근절하겠다'고 벼르고 나선 것이다. 하지만 지인의 사례처럼 교육현장에서 이런 매뉴얼은 아무런 힘이 없다.

단 한 번뿐인 학창시절을 아이들이 학폭의 악몽으로 떠올리지 않도록 교육현장의 적극적인 개입이 절실하다.

김현주 사회에디터 5151khj@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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