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수터) 비밀편지와 독대

@이용규 입력 2024.10.15. 15:50
이용규 신문제작국장

어찰은 조선시대 국왕이 쓴 편지다. 임금이 직접 쓴 글씨는 어필이고 임금이 직접 지은 글은 어제라고 한다. 임금이 글을 직접 지어 친필로 썼다면 어제어필이라고 부른다. 어찰의 내용은 신하에게 안부를 묻거나 국정 현안을 묻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막후에서 여론을 유리한 방향으로 형성시키고 상소를 올리거나 중지토록 조정하기도 했다. 당연히 편지는 비공개였다. 국왕은 비밀스런 국정 사항과 인사 문제 등 민감한 내용이다 보니 남과 공유하거나 유출을 염려했다. 적대적 관계로 노론 벽파를 이끈 심환지와의 비밀편지를 왕래한 정조의 글에서도 "찢든지, 세초하라"고 신신당부하는 내용이 있다. 세간에 편지 내용이 흘러 다니는 소식을 들은 정조는 심환지에게 "생각없는 늙은이"라고 쏘아붙이며 "이 떡 먹고 말 말아라"는 속담까지 활용하며 비밀 누설을 경계하고 질책했다. 그러나 심환지는 정조와 왕래한 350통의 편지를 태우거나 없애지 않고 은밀하게 보관했다. 몇년전 한양대 정민 교수에 의해 빛을 본 어찰들은 시간을 뛰어넘어 국왕과 신하의 밀담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독대도 국왕의 은밀한 정치행위였다. 조선시대에는 임금과 신하의 만남에는 왕의 비서인 승지와 역사책의 원고를 쓰는 사관이 반드시 참석했다. 왕과 신하가 단둘이 만나 음모를 꾸민다는 정치적 오해를 차단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다 이 원칙이 무너지고 임금과 신하의 독대가 마련됐다. 대표적으로 효종과 서인 당파 대표 송시열과의 이뤄진 '기해독대'이다. 북벌론자인 효종과 송시열은 창덕궁 희정당에서 단둘이 청나라 정복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의논했다. 북벌의 문제를 다룬 두 사람의 독대 내용은 후에 송시열이 '악대설화'란 책에 남겨 알려지게 됐다. 심환지나 송시열은 형식은 다르나 국왕과의 비밀 대화를 통해 고도의 정치적 줄다리기를 한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간 독대를 놓고 지속된 갈등이 봉합 모양새다. 16일 재보선 이후 양자간 회동이 예정돼 있다. 그럼에도 용산은 '만남'에 한대표는 '독대'를 주장해 성사될지 여부는 여전히 의구심을 낳는다. 대통령과 집권 여당 대표가 단둘이 만나는 형식을 따지는 사이 국민들의 속은 터지고, 불신은 쌓여가고 있다. 앞이 안보이는 정국에서 대통령과 집권당 대표의 이해득실이 아니라 국민의 이해득실만이 있어야 한다. 윤 대통령과 한 대표가 오로지 가져야할 자세이다. 이용규 신문제작국장 hpcyglee@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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