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수터) 균형잃은 바쁨은 악이된다

@한경국 입력 2024.10.23. 14:24

게으른 사람과 부지런한 사람 중 누가 옳은 걸까?

영국 신학생들을 상대로 한 실험이 있었다. A건물에 있던 학생들을 B건물로 이동시킨 뒤 발표를 시키는 실험이었다. 실험자의 지시를 받은 학생들 상당수는 이동 중 자신의 발표에 몰두했고, 실수없이 미션을 마치는데 만족했다.

그런데 이 실험의 목적은 따로 있었다. 건물간 이동 중 사람 없는 거리에서 발작을 일으키는 사람을 목격하면 어떤 행동을 취할 지, 본능을 관찰하는 것이 진짜였다. 쓰러진 사람을 일으킨 학생, 구급차를 부른 학생, 발만 동동구르다 지나친 학생, 못본척 지나간 학생 등 반응은 다양했다. 이를 두고 신앙심이 깊을수록 남을 돕는 선택을 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실험은 학생들의 태도와 신앙심과는 별개라는 결과에 도달한다. 단지 시간적 여유가 있는 학생은 사람을 도왔고, 시간에 쫓기는 학생은 사람을 돕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 실험은 사람은 여유로우면 선해지지만, 바쁘면 악해지기 쉽다는 교훈을 남겼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부지런한 사람이 되라고 교육을 받았다. 마치 게으른 사람은 틀렸기 때문에, 옳은 길을 가려면 부지런해야만 한다는 식으로.

어릴적 읽었던 수많은 책들도 그런 내용을 뿐이었던 것 같다. 이솝 우화 개미와 베짱에서도 그랬다. 겨울을 대비해 음식을 모으는 개미와 노래만 부르며 시간을 허비한 베짱이의 이야기를 통해 미래를 위해 착실히 준비하고 살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이같은 생각은 종교계에서도 비슷하다. 불교, 이슬람교, 기독교 등 알만한 종교들 대부분이 나태는 죄와 가깝다고 보고 있다.

불교에서는 게으름은 마음이 흐리고 몸이 무거워지는 것으로 보고 있다. 나태하면 잡생각이 많아지고, 잡생각이 많으면 번뇌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중세 기독교 문화에서는 나태를 교만, 탐욕과 같은 7개 대죄에 포함시키기도 했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과거 게으른 사람은 가난하거나 실패한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지금도 나태한 사람은 성공한 사람과 거리가 있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많이 부지런하면 많이 선하고, 많이 게으르면 많이 악한 것일까. 그건 아닐 것이다.

적당한 바쁨과 적당한 여유를 가지고 살아가는 삶의 균형에 대해 고민해 봤으면 한다. 속도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방향이다.

한경국 취재2본부 차장 hkk42@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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