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수터) 주먹밥과 선결제

@김현주 입력 2024.12.16. 19:08

44년 전 5월 광주의 어머니들은 밥을 지었다. 죄 없는 시민들이 계엄군 총칼에 쓰러지고 군홧발에 짓밟혀 피 흘리는 공포와 두려움 속에서도 오월의 어머니들은 솥을 들고 거리로 나왔다.

갓 지은 쌀밥에 소금으로 간을 한 주먹밥은 볼품없을지언정 목숨을 걸고 불의에 맞선 시민군에겐 생명 그 자체였다. 외부로부터 단절된 광주에서 시민들을 지켜낼 수 있는 건 오로지 광주 시민뿐이었다. 그 마음이 한 덩이, 한 덩이 주먹밥에 고스란히 담겼고 10일간 이어진 광주 항쟁을 지탱하는 원동력이 됐다.

연대와 나눔의 상징인 광주의 주먹밥은 그렇게 탄생했다. 역사책의 한 페이지로 묻혔던 광주의 주먹밥은 44년 만에 선결제 문화로 부활했다. 지난 3일 밤, 망상의 빠진 지도자가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리면서 시민들은 영하권 추위에도 불구하고 거리로 나섰다.

6시간 만에 비상계엄은 해제됐지만 시민들은 국회 앞을, 거리를, 광장을 지켰다.

이 과정에서 집회에 참석하지 못한 이들은 선결제를 통해 응원의 마음을 보냈다.

익명의 기부자들은 '미리 인근 상점을 이용할 수 있도록 결제했다'는 글을 올려 시민들이 무료로 음료나 음식, 온열용품 등을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수령자를 미리 정해 놓지 않고 커피나 간식값을 미리 지불한 뒤 매장 위치를 SNS 등으로 공유하는 선결제 지도까지 등장하면서 촛불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이 무료로 이를 이용할 수 있었다.

커피 한 잔부터 김밥 한 줄, 핫팩 등으로 표현된 작은 마음은 맨몸으로 거리로 나선 시민들에게 큰 힘이 됐다.

80년 5월 당시 어머니가 계엄군으로 광주에 있었다는 한인 교포 그리다씨도 "계엄 사태 이후 당장 한국으로 가고 싶었지만 비행기 푯값으로 따뜻한 커피를 드리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며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마음을 보태 치유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엄마 몫까지 더해 이런 결정을 했다"고 프랑스에서 탄핵 커피 1천잔을 보냈다.

이런 마음을 받은 시민들은 광주의 5·18 대동정신이 재현된 것 같았다고 입을 모았다.

80년 오월 광주의 주먹밥이 44년 후 선결제 문화로 재탄생 순간이다.

국가적 위기의 순간 나라를 지킨 건 또 국민이었다. 민주주의 위기를 역사적 승리를 이끈 국민에게 존경과 감사를 표한다.

김현주 사회에디터 5151khj@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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