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늦은 밤에 아내가 어딘가로부터 전화를 한 통 받더니 울면서 옷 입기를 서두르는데, 장모님이 위독하시다는 거다. 부랴부랴 서둘러 차를 출발했는데 그사이 돌아가셨단다. 우는 아내를 달래며 정신없이 처가에 도착해보니 장모님이 멀쩡히 앉아 계신다. 혼자서 약주 한잔 드시고 갑자기 혼절한 것을 처남은 돌아가신 것으로 안 것이다. 어이없는 해프닝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여러 생각이 번뜩거린다. 이 시대의 효란 무엇일까? 구순에 가까운 노모, 자주 찾아뵙는 것도 어려운 현실, 노인과 기저 질환자에게 가장 치명적인 코로나19, 이와 관련해 거의 모든 분야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하는 이 시점에서 우리는 효(孝)를 어떻게 재해석해야 할 것이며 그 의미와 역할은 무엇일까?
공자와 그의 제자 증삼(증자)이 효에 관해 논한 내용을 추려 담은 효경(孝經)은 유가 13경 중 하나로 효의 근본적 의미에서부터 실천적 내용까지 다룬 책이다. 물론 성경에서도 효에 대한 부분이 언급돼 있고, 불교나 다른 문화권에서도 효에 대해서 중시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오늘은 유교적 측면과 효경에 한정해 말하고자 한다.
효경에 실린 대표적인 구절은 "신체와 터럭과 살은 부모에게 받았으니 훼손하지 않아야 함이 효의 시작이고, 몸을 세워 도를 행하고 이름을 후세에 남겨 부모를 드러나게 하는 것은 효의 마지막이다. 효는 부모를 섬김에서 시작되고, 군주를 섬김이 중간이고, 몸을 세움을 마지막으로 삼는다"다. 이 대표 문구를 통해 효는 크게 생물학적(종교적), 문화적,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측면에서 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고 보인다.
시대별로 모든 효는 삶과 죽음에 있어 현세의 존재를 영속시키는 생물학적 측면에서 그 근원을 엿볼 수 있는데, 이는 종교적 측면과도 부합되는 면이다. 효란 본래 부모 생전에 자식이 행해야 할 봉양의 도를 의미한다. 그러나 사후의 영원을 바라며 자손에게 반드시 조상의 제사를 지내도록 요구하는 것으로부터 종교적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또 효란 부모에게 잘하는 것만이 아니라 각자가 자신의 위치에서 맡은 바를 충실히 하고, 도리에 맞게 최선을 다하는 거라고 공자는 말하고 있다. 이를 통해 효는 사회적 차원으로 확장되고 자연스레 문화적 카테고리를 형성한다.
또 '몸을 세워 도를 행함(立身行道)'은 경제적 측면으로 이해될 수 있다. 선대의 분신인 내가 나의 삶 전반을 통해 선대를 드러내고 확장하는 과정에서 파생되는 경제활동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조선 후기 실학자들은 상공업 진흥을 위해 양반 역시 노동을 하고, 과학을 배우며, 서양을 알아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 또한 효의 역사적 진화과정으로서 사회·경제적 측면으로 이해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시대적으로 효에 대한 보편적인 관념은 고려 말에 주자학이 수용되고, 조선 시대에 이황, 이이 등을 통해 성리학의 우주론이나 인간론이 확립되면서 새로운 규범으로 채택되는 과정을 통해 형성됐다고 보면 될 것이다. 조선 사회는 세종 때 삼강행실도, 중종 때 이륜행실도, 정조 때 이 둘을 합해 개편한 오륜행실도를 발간하고 반포함으로써 충효를 근본으로 하는 상강오륜을 완성하게 된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통해 효가 정치·사회적 질서의 근본 규범으로 인식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공자의 효가 유교의 근본 사상에서 시작해 '한국의 효'로 발전된 과정을 이해하고 지금의 대한민국을 지탱하고 발전시킨 핵심사상으로 인정해야 한다. 이는 대한민국 대비 유교문화권 내의 수많은 국가가 이루지 못한 문화와 경제성장을 반증의 근거로 삼으며 말이다.
이제 설이 얼마 남지 않았다. 같이 살고 있지 않으면 가족 역시 5인 이상 모이지 못한다고 한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지금까지의 풍요를 담보한 자본주의의 폐단이 지적되고 사회경제질서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요구되는 지금, 이 위기를 극복하는 모멘텀으로 효 사상을 되돌아보면 어떨까 싶다.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가치로서 말이다. 류승원 광주전남 콘크리트 조합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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