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족 "건설현장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 절실
주변 상인들, 시멘트 가루 방지 대책 한 목소리
8개 동 전면 철거·재건축…총 비용 3천700억
"단계별 상황판단 전파체계 사회시스템 보완해야"
광주 서구 화정동 아이파크 붕괴참사 희생자 유가족들을 포함한 피해자들의 시간은 2022년 1월 11일에 멈춰있다.
붕괴참사 1년이 돼가지만 아픔을 가슴 속에 눌러 담고 평범한 일상을 살고 싶어도 전국 곳곳에서 들려 오는 참사 소식에 그날을 잊을 수 없다. 유가족들은 붕괴참사 1주기를 이틀 앞둔 9일 "처음 겪는 일이라 여전히 익숙하지 않다"며 쓰라린 마음을 토로했다.
안정호 화정아이파크 유가족협의회 대표는 참사를 받아들이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AI(인공지능)에 빗대어 표현했다. 인공지능처럼 감정이 매마른 사람들의 사회적인 시선이 가장 두렵다는 것. 안 대표는 생업을 이어가며 철거·재건축을 포함해 이제부터라도 최소한 화정동에서 만큼은 사고가 나지 않도록 감시자 활동도 이어가고 있다.
안 대표는 "가족을 잃은 사람만큼 억울한 사람이 없다. 하루하루 잘 버티며 사는 유가족들은 참사가 벌어질 때마다 악몽에 시달리곤 한다"며 "이태원 참사만 봐도 '왜 놀러갔냐'는 식의 비방과 조롱이 이어지고 있는데 내 슬픔보다 남의 슬픔을 볼 때면 더욱 슬프다"고 했다. 이어 "참사는 언제 어디서 일어날지 모른다. 현실적으로 모든 참사를 막을 수 없다는 것도 너무 잘 안다"며 "다시는 돈벌이에 눈이 먼 이같은 사고가 나지 않도록 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돌아봐야 할 필요가 있다. 징벌적 손해배상을 건설현장에 도입해 기업 스스로가 안전 조치에 최선을 다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매출 반토막…주변 상인들도 피해 극심
지난해 연초, 무너진 아파트는 인접한 상가에도 극심한 피해를 안겼다. 사고 수습부터 안정화 작업, 예정된 철거와 재건축까지 주변 상인들도 참사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참사로 문을 닫은 60여일 간 거래처의 발길이 끊기면서 매출이 반토막 났다. 상가 문을 꼬박꼬박 열어도 손님이 찾질 않는다. 매일같이 들리는 '쿵쿵' 소리는 참사 당일로 시간을 되감기 한 것처럼 불안에 떨게 한다. 공사현장에서 떨어지는 시멘트 가루와 돌덩이도 해결되지 않아 걱정이다. 날리는 시멘트 가루에 병원치료를 받는 상인마저 있다.
선문규 화정아이파크피해상가협의회 총무는 시멘트 가루 방지 대책이 가장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참사 이전부터 최근까지 지속적인 민원을 넣어도 달라지는 건 하나도 없었다"며 "곧 철거에 들어가 재건축될 때까지 이같은 피해가 꾸준히 이어질 텐데 공법을 바꾸는 등 시멘트 가루를 근본적으로 막기 위한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고 했다.
◆또 현대산업개발…처벌은 어떻게?
화정아이파크 붕괴참사는 안전불감증이 낳은 인재(人災)였다. 사고 직후 수사관 89명 규모의 전담 수사본부를 꾸린 광주경찰은 11개월에 걸친 수사를 통해 붕괴의 주요 원인으로 ▲구조검토 없는 데크플레이트·콘크리트 지지대 설치 ▲39층 콘크리트 타설 시 하 부 3개층(36~38층) 동바리 철거 ▲콘크리트 품질양생 부실 등을 지목했다. 이같은 복합적인 요인들이 맞물려 38층부터 23층까지 16개층이 잇따라 붕괴됐다는 것이다.
경찰은 업무상과실치사·상, 주택법·건축법 위반 등 혐의로 21명(구속 6명)의 피의자와 법인 4곳을 송치했다. 노동자 6명의 목숨을 앗아갔음에도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불과 보름 앞두고 사고가 발생해 대표자 처벌은 불가능했다.
서울시가 맡고 있는 현산에 대한 영업정지와 등록말소를 비롯한 행정처분 또한 지연되고 있다. 검찰은 직접적 책임 과실자 17명과 법인 3곳(현대산업개발·가현건설산업·건축사사무소 광장)을 기소해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하지만 원청인 현산과 하청인 가현 등은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며 법정 공방을 벌이고 있어 1심 재판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참혹한 참사 현장…철거는 어떻게?
무너진 201동을 포함한 8개 동이 모두 철거되고 다시 지어진다. 국토안전관리원의 안전관리계획서 승인과 교수·구조기술사·건축사 등으로 구성된 건축심의위원회의 건물해체계획서 자문만 남은 상황이다. 철거 과정은 벽체와 바닥 슬라브의 경우 굴삭기로 잘게 깨부수는 압쇄공법, 기둥과 중심부 단면은 다이아몬드 소재 절삭 도구로 잘라내는 D.W.S공법을 사용할 계획이다. 전 세계적으로 시도한 적 없는 철거공법이다 보니 실물 모형(모크업·Mock-up)으로 시범시공도 거쳤다.
외벽 전체를 두르는 비산방지망을 1차로 설치하고, 2m 가량의 비계를 놓은 뒤 '매직판넬'을 세워 시멘트 가루와 낙하물이 최대한 주변에 피해를 주지 않도록 할 방침이다. 철거와 재건축에 드는 비용은 총 3천700억에 달한다. 건물 1개층을 철거하는데 14일 가량 소요될 것으로 예상돼 내년 12월 모든 철거가 마무리될 전망이다. 현산은 철거가 끝나는 대로 재건축에 돌입, 2027년 12월 준공될 것으로 보고 있다.
서구 관계자는 "최대한 인근 주민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최적의 방향으로 마무리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되풀이되는 참사 막으려면?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안전에 대한 관심이 없었기에 발생한 참사였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전문성 부족이 부른 인재였다. 건설현장 최일선의 노동자부터 작업을 관리하는 현장소장, 이들을 감시하는 감리단, 시민을 대신해 제대로 시공되는지 공권력을 행사했어야 할 담당 공무원의 전문성 부족이 참사를 통해 여실히 드러났다.
화정아이파크 재난자문위원과 붕괴사고 대응백서 자문을 맡았던 송창영 광주대 건축학부 교수는 "재난에 대해 무지한 사회안전시스템이 참사를 막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다시 말해, 어느 순간 안전과 관련된 부서는 기피 부서로 전락했고, 관리·감독을 맡고 있는 자치단체 담당자가 수시로 바뀌다 보니 법령해석 능력이나 실무경력을 제대로 갖추지 못해 현장관리나 대응이 전문적이지 못했다는 뜻이다. 각자의 위치에서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건설현장매뉴얼의 부재도 한몫했다.
송 교수는 "담당자가 바뀌더라도 행정이 변함없이 작동하도록 예방·대비·대응·복구, 관심·주의·경계·심각 등 단계별 상황판단 전파체계 사회시스템을 보완해야 한다"며 "안전을 위해 필요하다면 선진국의 기법도 배울 필요가 있다. 반복된 교육과 훈련으로 기다렸다는 듯이 움직여야 한다"고 제언했다.
박승환기자 psh0904@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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