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 때마다 '반짝 발의→무관심' 악순환···입법은 요원

입력 2025.01.20. 16:41 강주비 기자
여객기 참사 관련 법안 12건 발의
이태원·아이파크 때도 법안 봇물
처리는 3건에 불과…대부분 폐기
"우선순위 삼고 입법 계획 마련必"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12.29여객기참사진상규명과피해자및유가족의피해구제를위한특별위원회 제1차 전체회의에서 권영진 위원장이 안건을 의결하며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뉴시스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이후 국회에서 관련 법안이 쏟아지고 있지만, 실효성 있는 정책으로 이어질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과거에도 대형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유사한 법안들이 경쟁적으로 발의됐으나, 시간이 지나 관심이 사그라지면서 실제 제·개정되는 사례는 극소수였기 때문이다.

20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12월29일 무안공항에서 발생한 제주항공 참사 이후 이날까지 참사 예방 및 대응 강화를 명목으로 12건의 법안이 발의됐다.

참사 발생 이틀 뒤인 12월31일 민형배 의원이 공항·비행장시설의 설치기준을 법률로 상향 조정하는 '공항시설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한 것을 시작으로, 항공사고 발생 시 국토교통부에 비행기록장치 기록 자료를 의무보고토록 하는 '항공·철도 사고조사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 항공안전위원회 구성을 법률에 명시하는 등 현행법 미비점 보완을 위한 '항공안전법 일부개정법률안' 등이 잇따라 발의됐다.

이 밖에도 비슷한 내용의 법안이 국회에서 계속 발의되고 있다.

하지만 얼마나 실제 입법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라는 지적이다.

이태원·화정 아이파크 참사 등에서도 사고 직후 관련 법안들이 우후죽순 나왔지만, 대부분이 상정은커녕 발의 단계에서 사장됐다.

지난 2022년 이태원 참사 이후 국회에 발의된 관련 법안은 총 45건이다. 모두 제안 이유나 주요 내용에 '이태원 참사'를 언급하며 각종 재난 안전 체계 등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았다.

이중 국회 문턱을 넘은 법안은 단 3건에 불과했다. 20건이 임기 만료로 폐기됐고, 19건이 대안반영폐기, 3건이 계류 중으로 사실상 거의 모두 입법화에 실패했다.

광주에서 발생한 화정 아이파크 붕괴 참사나 학동 붕괴 참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참사 직후 국회는 앞다퉈 건설산업기본법 개정안 등 30건 이상의 재발 방지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가결된 건은 고작 3건에 그쳤다. 법안에 대한 실질적 논의는 3년여 간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에 90% 이상이 임기 만료로 폐기되거나 잠들어있는 상태다.

이처럼 국민적 관심이 높은 시기를 이용해 법안을 발의한 뒤 시간이 지나면 흐지부지되는 '반짝 발의'의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이슈 선점을 위해 비슷하거나 중복되는 내용의 법안을 '남발'하는 의원들의 행태에 대한 비판도 나온다.

특히 이번 여객기 사고와 같은 대형 참사는 예방·대응 체계 강화와 동시에 사고 진상 규명와 보상 문제까지 포괄적으로 다뤄야 하기에 면밀한 검토와 후속 논의가 시급하다. 이런 상황에서 국회 기능이 법안 발의에 치중되는 현상을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조선익 참여자치21 공동대표는 "여야 또는 집행부 간 충분한 사전 논의와 소통 없이 발의된 법안은 완성도가 낮고, 관심을 지속시키기 어려워 입법으로 이어지기 어렵다"며 "참사 이후 시간이 지나면 사고성 법안은 추진 동력을 잃게 된다. 또 사고성 법안은 개인이나 정당에 큰 이득이 없기 때문에 의원들은 정치적 이득이 있는 법안에 더 집중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 대표는 "참사는 거의 인재(人災)로, 충분히 예방할 수 있다. 그러므로 안전에 관련한 법 제·개정이나 운영은 다른 법들과 차별화된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며 "국민들이 해당 사안에 계속 관심을 가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실적으로 '위로'나 '슬픔'에 의한 여론의 지속력은 한계가 있다. 정당에서 참사 관련 법안을 '우선순위 법안'으로 삼고 체계적인 입법 계획을 세우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주비기자 rkd98@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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