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나의 12·3···'5월 광주' 한복판에서의 기록

입력 2025.12.02. 22:21 이삼섭 기자
'불법 비상계엄'이 뒤흔든 평범했던 일상
설마가 현실로…계엄군 들이닥칠까 공포
국회 지켜내는 시민에 "계엄 실패 확실"
'두 번의 계엄' 마주한 광주가 보여준 연대
윤석열 대통령이 3일 저녁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에서 열린 긴급 대국민담화 발표에서 비상계엄령을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휴우~." 여느 날과 다르지 않은 날이었다. 늦은 운동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한껏 지친 몸을 뉜 채 '치맥'을 떠올릴 때쯤이었다. 순간,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단톡방) 알림음이 쉴새없이 울렸다. 2024년 12월 3일 밤 10시께. '그 날' 밤의 기억은 그렇게 시작됐다.

'뭐지? 큰 사고가 났나'. 늦은 밤의 부산스러움이 무척 거슬렸다. '대통령이 곧 긴급 담화를 한다. 내용은 비상계엄령 선포다'. 헛웃음이 나왔다. "챗 GPT와 스마트폰 시대에 웬 계엄령?" 신문사 편집국과 다른 언론사 동료 기자들이 모여있는 톡방은 술렁였다. 누군가의 '가짜뉴스' 생산에 따른 해프닝이라고 확신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긴급 대국민 담화를 통해 비상계엄령을 발표한 가운데 4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비상계엄 해제요구안이 가결되고 있다. 뉴시스

오후 10시 26분께. 뇌가 정지되는 느낌이었다. 설마는 사람을 잡았다. 긴급담화 생방송에 등장한 윤석열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다. 내가 '1980년 광주'의 한복판에 서 있다는 사실이 자각될 뿐이었다. 광주가 어디던가. 계엄군의 군홧발에 짓밟힌 상흔과 오월 영령의 넋이 서려있는 곳이다.

잠시 뒤 편집국 단톡방에 한 줄이 올라왔다. '가능한 사람 모두 회사로 복귀하라'. 당혹함과 긴장감이 흘렀다. 회사로 이동하는 동안 쏟아졌던 속보는 실시간으로 공유됐다. 

"김용현 국방장관, 전군 주요지휘관 회의 소집 및 비상경계·대비태세 강화 지시"(11시 43분), "여야 지도부 연달아 위헌, 반대 입장 발표"(11시 49분~56분), "서울 탱크 진입 시작, 특전사 실탄 장전한 뒤 출동 명령 내려짐"(11시 49분)…. 분 단위로 올라오는 정보에 계엄이 점차 현실로 다가왔다.

윤석열 대통령이 긴급 대국민 담화를 통해 비상계엄령을 발표한 가운데 2024년 12월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 군 장갑차가 진입하고 있다. 뉴시스

광주역 인근 중흥동 사옥, 편집국에는 선후배들이 하나둘씩 모였다. 술자리에서 곧바로 뛰어와 불쾌해진 누군가가 "대명천지에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고 소리쳤다. 방송에선 국회 앞 상황이 실시간으로 전해졌다. 며칠 전 봤던 영화 '서울의 봄'이 떠올랐다. 호외 제작이 결정됐다. '5·18 당시 광주지역 언론사에서 호외를 만들었다가 검열에 막혀 내보내지 못했던' 경험담들이 오갔다. 평소 귀찮기만 했던 '호외'라는 단어는 오늘따라 더 무겁게 다가왔다. '총칼로 무장한 계엄군이 들이 닥친다면, 난 뭘 할 수 있을까 '. 호외는 시민들에게 전달될 수 있을까.

밤 11시께. '계엄 포고령 1호' 전문이 돌았다. 국회 활동 금지, 정치활동·집회 시위 금지, 출판·보도 검열 조항이 줄줄이 이어졌다. 분위기는 심해처럼 가라앉았다. '설마' 했던 희망이 "내일부터 신문 발행이 어려울지 모른다"는 절망으로 바뀐 순간이었다. 무등일보는 광주·전남 지역에서 유일하게 자체 윤전기를 보유하고 있다. 전국 종합일간지도 인쇄한다. 윤전기를 군이 통제할 가능성이 높았다. 건물 뒷문을 잠갔다. 혹시라도 계엄군을 실제 마주하는 상황이 온다면…. 엄습하는 불안함은 자꾸 1980년 오월을 되뇌게 했다. 계엄군이 장갑차를 타고 도청으로 밀고 들어오던 장면, 불에 그을린 시민군 트럭, 신문사 앞에 전두환 신군부가 보냈다는 '보도지침'이 꽂혀 있던 모습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뒤 해제한 4일 전남대에서 학생들이 무등일보 호외를 보고 있다. 임정옥기자 joi5605@mdilbo.com

연대의 힘은 대단했다. 서로의 불안을 잠재우는 약이기도 했다. 새벽 1시1분, 마침내 '해제 요구안'이 만장일치로 가결됐다. 가슴 졸이며 TV를 지켜보던 편집국 안에서는 탄성과 환호가 터져 나왔다. 계엄군의 국회 철수가 시작됐다. 계엄 해제 요구안이 가결된 지 10분만이었다. 요동치던 심장이 멈추고 안도감이 밀려왔다. 한 겨울 밤, 3시간의 '소란'이 꿈처럼 아련했다. '몰래 카메라 아닐까' 영화 '트루먼쇼'처럼…. 실없는 웃음이 나왔다.

제작에 들어갔다. 윤전기도 더는 기다릴 수 없었을 터. 비상계엄 선포부터 국회에서 부결시키까지의 뉴스와 현장에서 만난 시민들의 이야기가 신문에 담겼다. 그럼에도 불안감은 편집국 공기 속에 여전히 섞여 있었다. 서로 말로 꺼내진 않았지만 이심전심이었다. '군 트럭이 사옥 앞으로 들이닥치는 장면을 보게 되는 건 아닌지…'. 새벽 3시30분 호외 제작을 마쳤다. 긴장감은 여전했다. '대통령실의 비상계엄 해제' 자료는 그 때까지도 나오지 않았다. 호외는 모두 4개 면. 1만 부를 인쇄했다. 쿰쿰한 잉크냄새가 상그러웠다.

국회 본회의에서 비상계엄 해제를 의결한 2024년 12월 4일 새벽 계엄군 병력이 국회에서 철수하고 있다. 뉴시스

기자들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차량에 싣기 시작했다. 목적지는 대략 정해져 있었다. 시청, 전남대, 금남로, 버스터미널이다. '시민의 힘으로, 불법 계엄이라는 헌법 유린을 이겨낸 역사적 사실'이 담긴 호외다. 역사적 비극과 희극이 교차한 현장을 시민들에게 건네는 마음이 오묘했다. 아직 어둑한 한밤중 두려움에 거리에 나왔던 시민들의 표정도 그랬다. 1980년 비상계엄 당시를 기억하는 시민들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오전 5시1분 국무회의서 '계엄 해제안'이 의결되기 전까지 광주는 '두 번의 계엄'을 마주하며 두려움에 떨었고, 또 누구보다 기뻤을 터였다.

1년이 지난 지금, 그 날 밤을 떠올린다. 헌정을 짓밟은 친위 쿠데타는 역사적 단죄를 받을 것이다. 5·18의 재평가도 활발하다. 12월 3일의 대한민국을 구한 건 1980년 5월 광주란 평가가 중론이다. 그 때의 피와 희생이 그날의 저항을, 연대를 가능케 했던 것이다. 다시 1980년 5월 광주와 2024년 12월의 대한민국은 앞으로 올지도 모를 민주주의 위기를 구할 것이다. 시원한 맥주 한 캔과 치킨이 무척 땡기는 밤이다.

이 기사는 '네러티브 저널리즘'을 활용했습니다. 네러티브 기사는 사건을 나열하는 '설명형 기사'가 아니라, 체험·심리·현장 분위기 등을 서사적으로 녹여 독자가 '그 상황' 속에 들어가게 만드는 기사 방식입니다.

이삼섭기자 seobi@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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