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에서 이런 공간을 만나다니.
개관을 앞둔 '전일빌딩 245' 10층 옥상 정원에서 둘러본 광주 풍경은 눈물겹도록 아름답다. 고층아파트에 막히고 찢긴 도심풍경이 싱그러운 봄 햇살 아래 생생하다. 옛 도청에 둥지를 튼 국립아시아문화전당과 도청앞 분수대 광장, 금남로 5가를 비롯해 시야 끝까지 이어진 도심의 속살이 하늘 아래 맑다.
1980년 5월 도청 앞 분수대 광장의 대성회며, 금남로 5가까지 이어진 시민들의 함성이 살아 움직일 듯하다.
공간의 멋은 빼앗긴 조망권의 살림만이 아니다. 어쩌면 이는 부수적이거나 덤이다.
진짜 매력은 이 공간이 21세기적 열림을 지향하고 있다는데 있다. 그 열림은 역사와 일상, 세대간 넘나듦이다. 젊은 세대와 혹은 그들 세대의 호흡이 가능해 보이는 '첨단의 문화공간'은 조망권 보다 더 눈부시다.
헐어 없앨 예정이었던 전일 245는 기사회생해 미디어아트와 인터렉티브 관람공간, 전자도서관, 음식을 만들거나 모임을 할 수 있는 다양한 공유공간, 문화콘텐츠 창작공간 등으로 재 탄생했다. 청소년의 호흡을 읽어낸 공간들은 이들을 대놓고 유혹할 듯 싶다. 아이들이 놀이터처럼 노니는 모습은 생각만으로도 호사스럽다.
그렇다고 자신의 존재를 잃지도 않았다.
9층은 5·18 전시관으로, 10층은 총탄흔적 원형보존과 함께 5·18 전시관을 선보인다. 원형보존에도 전시와 과학기술이 동원돼 한편의 설치 작품을 보는 듯 구현했다. 기존 건물의 잔해를 활용한 전시관은 기존 5·18관련 기념 공간과 차별화를 선언한다.
전일 245는 자칫 박제화돼가는, 호기심이나 재미라곤 없어서 의무 교육 공간으로 전락한 수많은 역사공간의 위험성을 벗어났다. 휴식과 배움이 교차하며 볼거리도 빠지지 않는 공간은 외국 공간에 비할 바가 아니다. 첨단이라는 이름으로 접근도를 높여 젠체하는 우를 범하지도 않았다.
여기에 도시재생 기본을 충실히 지켰다.
아무 쓸모없는 적벽돌의 옛 굴뚝을 보존하고 주변에 쉼을 더할 수 있는 작은 정원을 만들었다. 굴뚝으로 상징되는 보존과 현대적 활용은 이 공간의 중심 축이기도하다. 여기에 각 층 마다 선물처럼 살려낸 도시의 풍경은 일상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휴식과 위로를 함께 선사할 것으로도 기대된다.
지금껏으로치면 광주 건축공간 조성의 전범이라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1980년 광주민중항쟁의 생생한 증언자로 구 도청 분수대광장 인근에 둥지를 튼 이 역사적 공간은 일제 강점기시절부터 연원을 자랑하는 지역의 대표적 미디어 공간이다. 그 시절부터 인쇄소가 있었고 이후에는 언론사가 둥지를 틀었다. 1980년에는 총탄을 맞아가며 금남로와 도청의 격전을 묵묵히 지켜본 광주의 산 역사다.
그런 공간을 없애려했던 우리사회의 과오를 잊지말아야한다. 이 빌딩을 헐고 주차장을 지으려했던 우리다. 하늘 아래 저 아름다운 도심의 풍경을 어찌 우리가 상상이나 했겠으며 이 빌딩에 가한 245발의 헬기 총탄인들 알 수나 있었겠는가.
과오를 넘어 아름다운 공간으로 탄생시킨 수많은 전문가들의 의미있는 발걸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눈물로 지켜낸 열정에 이르기까지 찬사와 감사를 더한다.
문화체육부국장 겸 아트플러스 편집장
- 일상 속 휴식 가능한 건축적 산책 공간 최근 광주광역시건축사회 회원 20여명은 대구 군위에 자리한 사유원 답사를 다녀왔다. 광주광역시 건축사회(회장 정인채) 회원 20여명이 함께 최근 사유원 답사에 다녀왔다.사유원은 대구 군위군에 위치한 곳이다. 광주에서 차로 3시간 정도 달려야 도착 할 수 있는 장소였다. 꽤 먼 거리라 생각하고 나선 길이 무색하게 회원들과 담소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도착해 있었다. 심리적 거리는 1시간정도 되는 듯 했다.사유원은 대구의 향토기업 태창철강의 유재성 회장이 모과나무를 수집해 키우던 정원을 '사유를 위한 수목원'으로 조성하고자 승효상 건축가와 함께 오랜 시간 동안 구상하고 준비해, 2021년 9월 정식으로 개관했다.우리는 코르텐강판소재의 정문 '치허문'을 지나, 안내소에 도착했다. 생수 한 병과 답사지의 지도가 담긴 간단한 책자를 들고 '사유원'을 두발로 사유할 준비를 했다. 근래에 계속 된 비도 잠시 쉬는 답사 날, 봄의 기운을 담고 불어오는 바람이 마음을 설레이게 했다.사유원은 철과 콘크리트로 된 계단으로 시작한다. 걷는 내내 소나무향과 흙 밟는 소리, 회원들이 가볍게 나누는 잔잔한 대화소리가 함께 했다. 간간히 답사임을 망각하고 '좋은 산책'이라는 착각에 빠졌다. 산책로를 따라 10여분 걷다 보면 첫 번째 목적지인 '소요헌'이 눈에 들어온다. 소요헌은 '자유롭게 거니는 집' 이라는 주제로 설계 된, 포르투갈 건축가 알바로 시자의 작품이다. 자연과 건축이라는 극명한 차이를 조화롭게 엮어 낸 건물이다. 노출콘크리트로 된 소요헌은 인공조명 없이 자연채광만으로 공간의 깊이와 빛의 질감을 아름답게 드러낸다. 빛을 따라 걷다보면 우직한 철문이 나타난다. 호기심에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전면이 유리로 된 창과 건축 모형, 쉴 수 있는 테이블이 놓여있다. 이 곳은 건축가의 방(요요빈빈) 이라고 한다. 알바로 시자가 디자인한 가구와 드로잉을 볼 수 있어 좋은 시간이었다.알바로 시자가 만들어 낸 '아름다운 것'들에 영감을 얻고 발길을 옮겨, 사유원의 시작 이라고 할 수 있는 모과나무 정원 '풍설기천년'으로 향했다. 유재성 회장은 우연히 일본으로 밀반출될 예정이었던 모과나무 네 그루를 알게 되었고, 이 공간의 이야기는 여기서 시작된다. 그 모과나무는 수령이 300년 이상 된 귀한 나무들이었는데, 일본 분재로 모과나무가 인기가 많아 일제 강점기시절 부터 우리나라의 모과나무가 밀반출되었다고 한다. 이를 알고 유재성 회장은 모과나무들을 사 모으기 시작하였고, 무려 108그루를 한곳에 모아 가꾸기 시작했다. 이것이 사유원의 시작이다.300년 된 모과나무지만 아직도 연분홍색의 단정한 꽃이 피고, 향기로운 모과가 열린다고 한다. 자연은 우리가 가늠할 수 없는 영역이다.회원들과 얘기하며 걷다보면 어느덧 사유원 정상에 도착한다. 저 멀리 대구 팔공산이 보이는 이곳에 승효상 건축가가 설계한 명정이 위치해 있다. 콘크리트로 된 좁은 길을 따라 가면 지하로 내려가 하늘만 보이는 건축물과 만난다. 정상에 올라 좋은 풍경을 보았으니, 이곳에서는 오로지 자신을 위해 명상하는 고요한 공간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나 또한 이곳에서 한참을 물과 빛이 만들어준 그림자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허만수 건축사명정 옆으로는 최욱 건축가가 설계한 카페 '가가빈빈'이 자리한다. 사유원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나지막한 단층의 '가가빈빈'은 사유원을 한없이 관망하기에 좋은 장소이다. 아름다운 이야기가 깃든 곳에서 향긋한 차와 함께하니,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듯 했다.광주에도 사유원처럼 건축적 산책 공간이 있었으면 하는 부러움과 질투가 마음한 곳에 생겨난다. 물론 광주에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술의 거리, 광주공원, 양림동 등 역사성과 랜드마크적인 요소가 있는 좋은 건축물과 장소가 있다.광주천이나 영산강은 산책할 수 있는 보행자 동선과 자전거 도로가 잘 갖추어져 있다. 이를 활용해서 사유원처럼 숲을 거닐며 건축 산책을 하는 것과 같이 강가를 거닐며 현대 건축을 만나는 경험 또한 광주시민에게 일상 속 휴식이 가능해지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허만수 사계절프로젝트 건축사사무소 대표김혜진기자 hj@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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