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대에 작가로 데뷔하는 이의 마음은 얼마나 설레일까.
그녀의 데뷔가 소위 학력이니 경력이니 하는 차포 다 떼고 작품으로 겨룬 한판 멋진 경연의 결과라면 기대는 더 커진다..
최근 전남여성가족재단의 여성신진 작가 공모전 '여신(女新) 나르샤'가 선정한 작가들에 관한 관한 이야기다. 최고령이 70대고 60대, 40대가 선정됐다. 뒤늦게 예술의 세계에 뛰어들거나, 마음에 담아둔 예술을 가꿔온 이들이다. 보통의 경우 신진작가라 하면 대학을 갓 나온 젊은 작가들을 지칭하는 풍토에서 놀랍고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예술이나 문학의 세계라고 하는 곳이 학력이니 경력·연령이니 하는 잣대들이 불필요한 곳이지만 어찌 그러던가. 공모전 어디에도 그런 것들을 요구하지 않지만, 또 평가에 반영하지 않고 작품만으로 평가한다고 하지만 그걸 갖지 못한 이들이 무대에 오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소위 비전공자, 일반인은 공모 자체에 쭈빗거려지는게, 아예 응모도 없는게 이 사회 풍경이다.
언제부터인가 신춘문예는 문예창작과의 전유물이 되다시피했고 미술과 음악 등 예술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고 훌륭해도 다른 영역에서 특정 전문영역에 진입해 들어가기란 쉽지 않거니와 예술은 더욱이나다.
그런데 공공기관이 공모과정에 학력·경력 배제를 밝히자 숨어있던 무림의 고수들이 나타난 것이다. 소위 취미의 세계, 작업의 영역에서 작가, 전문가의 세계로 들어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공모전은 수많은 꿈과 소망들에게 한 가닥 희망인 셈이다. 열정, 그리움, 열망만으로 경쟁해보는 거다.
70평생을 고이 간직해왔을 그 절절함과 깊이에 숙연한 마음마저 든다.
가슴 속에 꿈을 간직하고도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다른 곳을 맴돌아야했어도, 그 마음 어쩌지 못하고 끊임없이 자신의 세계를 구축해왔던 것이다. 거친 세상이 아무리 방해해도 그곳에 그리움이 자리했고 소중함이 자랐던 것이다. 평생의 사랑을 이제 공개적으로 만나는 그 마음 오죽이나 흐뭇할까. 한 사람의 전생이 존중받는 것이다.
다른 한편 신춘문예니 내로라 하는 미술상이니 하는, 예비 전업작가를 대상으로하는 분야야 말 그대로 전문가들의 영역이라 친다면 지역의 다양한 공공기관 등에서는 이같은 취향이나 열망을 지원해주는 것이 더 마땅하기도 하다. 어쩌면 가장 중요한 일이기도 하다. 시민들의 문화예술 향유지원.
또 우리가 알다시피, 우리사회서 만나기 어려워 그렇지 그게 그렇게 취향의 영역에만 머무르지도 않는다.
인간 운명의 부조리함에 대한 통찰적 글쓰기로 20세기 실존주의 문학의 선구자로 꼽히는 소설가 프란츠 카프카. 그는 평생 글만 쓰기를 꿈꿨던 직장인이었다. 부유한 유대인 집안이었지만 그의 섬세함을 이해 못한 아버지와의 불화로 법대를 나와 보험공단에서 일하며 남들이 자는 조용한 밤에 글을 썼다. 어디 카프카 뿐이던가.
그렇다고 모두가 카프카를 꿈꿀 수는 없는 노릇이거니와 어쩌면 그건 전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저마다 심연에서 길어올린 깊은 울림의 향, 존재 그 자체가 중요하다 할 것이다.
세 신진여성작가들의 데뷔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문화체육부국장 겸 아트플러스 편집장
- 일상 속 휴식 가능한 건축적 산책 공간 최근 광주광역시건축사회 회원 20여명은 대구 군위에 자리한 사유원 답사를 다녀왔다. 광주광역시 건축사회(회장 정인채) 회원 20여명이 함께 최근 사유원 답사에 다녀왔다.사유원은 대구 군위군에 위치한 곳이다. 광주에서 차로 3시간 정도 달려야 도착 할 수 있는 장소였다. 꽤 먼 거리라 생각하고 나선 길이 무색하게 회원들과 담소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도착해 있었다. 심리적 거리는 1시간정도 되는 듯 했다.사유원은 대구의 향토기업 태창철강의 유재성 회장이 모과나무를 수집해 키우던 정원을 '사유를 위한 수목원'으로 조성하고자 승효상 건축가와 함께 오랜 시간 동안 구상하고 준비해, 2021년 9월 정식으로 개관했다.우리는 코르텐강판소재의 정문 '치허문'을 지나, 안내소에 도착했다. 생수 한 병과 답사지의 지도가 담긴 간단한 책자를 들고 '사유원'을 두발로 사유할 준비를 했다. 근래에 계속 된 비도 잠시 쉬는 답사 날, 봄의 기운을 담고 불어오는 바람이 마음을 설레이게 했다.사유원은 철과 콘크리트로 된 계단으로 시작한다. 걷는 내내 소나무향과 흙 밟는 소리, 회원들이 가볍게 나누는 잔잔한 대화소리가 함께 했다. 간간히 답사임을 망각하고 '좋은 산책'이라는 착각에 빠졌다. 산책로를 따라 10여분 걷다 보면 첫 번째 목적지인 '소요헌'이 눈에 들어온다. 소요헌은 '자유롭게 거니는 집' 이라는 주제로 설계 된, 포르투갈 건축가 알바로 시자의 작품이다. 자연과 건축이라는 극명한 차이를 조화롭게 엮어 낸 건물이다. 노출콘크리트로 된 소요헌은 인공조명 없이 자연채광만으로 공간의 깊이와 빛의 질감을 아름답게 드러낸다. 빛을 따라 걷다보면 우직한 철문이 나타난다. 호기심에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전면이 유리로 된 창과 건축 모형, 쉴 수 있는 테이블이 놓여있다. 이 곳은 건축가의 방(요요빈빈) 이라고 한다. 알바로 시자가 디자인한 가구와 드로잉을 볼 수 있어 좋은 시간이었다.알바로 시자가 만들어 낸 '아름다운 것'들에 영감을 얻고 발길을 옮겨, 사유원의 시작 이라고 할 수 있는 모과나무 정원 '풍설기천년'으로 향했다. 유재성 회장은 우연히 일본으로 밀반출될 예정이었던 모과나무 네 그루를 알게 되었고, 이 공간의 이야기는 여기서 시작된다. 그 모과나무는 수령이 300년 이상 된 귀한 나무들이었는데, 일본 분재로 모과나무가 인기가 많아 일제 강점기시절 부터 우리나라의 모과나무가 밀반출되었다고 한다. 이를 알고 유재성 회장은 모과나무들을 사 모으기 시작하였고, 무려 108그루를 한곳에 모아 가꾸기 시작했다. 이것이 사유원의 시작이다.300년 된 모과나무지만 아직도 연분홍색의 단정한 꽃이 피고, 향기로운 모과가 열린다고 한다. 자연은 우리가 가늠할 수 없는 영역이다.회원들과 얘기하며 걷다보면 어느덧 사유원 정상에 도착한다. 저 멀리 대구 팔공산이 보이는 이곳에 승효상 건축가가 설계한 명정이 위치해 있다. 콘크리트로 된 좁은 길을 따라 가면 지하로 내려가 하늘만 보이는 건축물과 만난다. 정상에 올라 좋은 풍경을 보았으니, 이곳에서는 오로지 자신을 위해 명상하는 고요한 공간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나 또한 이곳에서 한참을 물과 빛이 만들어준 그림자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허만수 건축사명정 옆으로는 최욱 건축가가 설계한 카페 '가가빈빈'이 자리한다. 사유원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나지막한 단층의 '가가빈빈'은 사유원을 한없이 관망하기에 좋은 장소이다. 아름다운 이야기가 깃든 곳에서 향긋한 차와 함께하니,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듯 했다.광주에도 사유원처럼 건축적 산책 공간이 있었으면 하는 부러움과 질투가 마음한 곳에 생겨난다. 물론 광주에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술의 거리, 광주공원, 양림동 등 역사성과 랜드마크적인 요소가 있는 좋은 건축물과 장소가 있다.광주천이나 영산강은 산책할 수 있는 보행자 동선과 자전거 도로가 잘 갖추어져 있다. 이를 활용해서 사유원처럼 숲을 거닐며 건축 산책을 하는 것과 같이 강가를 거닐며 현대 건축을 만나는 경험 또한 광주시민에게 일상 속 휴식이 가능해지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허만수 사계절프로젝트 건축사사무소 대표김혜진기자 hj@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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