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둥지를 튼 옛 전남도청이 40년만에 비로소 제 이름에 걸맞는 향과 빛깔을 찾은 듯하다.
5·18광주민중항쟁 40주년이 1980년 항쟁의 심장부였던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일원, 옛 전남도청 앞에서 열렸다.
약탈된 진실, 거짓과 혼돈 속에도 이를 넘어서온 40년을 딛고 대통령이 항쟁의 한 복판에 서서 광주를 호명했다. 광주시민들이 꿈꾸고 일구고자 했던 민주주의와 사람살이의 소중함을 전 국민, 세계 시민사회에 다짐했다.
옛 전남도청 일원. 목숨으로 새로운 세상의 꿈을 염원한 청년 윤상원을 비롯한 수많은 이들의 미래가 서린 옛 전남도청, 시민궐기대회와 민주대성회 등 대한민국 광장민주주의를 선보였던 분수대광장, 당시 계엄군의 만행에 죽어간 시민들의 주검을 수습했던 상무관, 전두환 계엄군의 헬기총격을 온몸으로 증언한 인근의 전일빌딩245.
그뿐인가. 공식 기념식이 끝나고 국립묘지를 방문 한 후 대통령이 역사상 처음으로 구 망월 묘역을 찾아 헌화했다. 어쩌면 항쟁의 심장부보다, 잊혀진 공간, 대중의 뇌리에서 사라진, 상실의 심연이 누적된 그 곳, 구 망월 묘역이 더 절절하다.
한 때는 피붙이에게도 금단의 땅이었던 곳. 제 자식, 부모형제를 안치하고도 제사 하나 마음껏 지낼 수 없었던 피울음이 맺혔던 그 곳. 저들이 돈으로 권력으로 집요하게 없애고자 했던, 아픈 마음의 온통.
5·18 이후 세대에게는 이름도 낯선 이 묘역은 광주사람들에게는 1980년 항쟁의 마음의 공간이고,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상징공간이기도 하다. 이곳은 1980년 신군부가 희생자들을 '처리'하기 위해 조성한 곳이다. 시민들의 주검을 청소차에 싣고 와 '파묻어버린' 것으로 알려졌다.
탄생부터 아픈 이곳은 이후에도 유족들의 가슴에 박힌 모이었다. 5월이면 참배객은 커녕 유가족들에게조차 금단의 땅이됐다. 전두환 정권은 이 공간을 견디지 못했다. 80년대 초반 끈질긴 공작을 벌여 희생자 일부(24명)를 다른 곳으로 이장시키기도 했다. 유족들은 제사때 곁에 머물수도 없었다. 5월이 다가오면 부모형제들을 강제로 차에 싣고 전국 각지에 분산시켰다. 학생들이 그 아픔에 합류했다. 교통을 차단하고 지휘부를 감시하는 경찰을 피해 학생들은 걸어 걸어서 추모제를 지냈다.
구 망월묘역은 군사정권의 집요한 노력에도 80-90년대 학생들과 민주인사들의 주요 참배 코스가 됐고 광주민주화를 넘어 대한민국 민주화의 상징공간으로 거듭났다. 1987년 시위도중 경찰 최루탄에 맞아 숨진 고 이한열 (연세대) 열사를 비롯해 80∼90년대 민주화시위나 노동운동 현장에서 숨진 이들의 안식처로 거듭나며 상징은 더욱 단단해지고 깊어졌다. 경찰의 직사 물대포로 사망한 고 백남기 농민도 이 곳에서 영면하고 있다.
유폐와 은폐, 항쟁의 쓰리고 아린 상징이 40여년의 세월을 거치며 국민 속에서 민주주의의 진짜 상징으로 재탄생해오고 있었던 것이다.
대통령의 '첫'걸음이 이를 공식화했다.
이 '첫'은 이제 우리사회에 더 이상 누구도 '뒤에 남겨두지 않을 것'이라는 다짐이자 옛 전남도청일원과 구 망월 묘역에 덧칠해진 거짓을 털어냄으로써 진짜 만남을 예고한다. 문화체육부국장 겸 아트플러스 편집장
- 일상 속 휴식 가능한 건축적 산책 공간 최근 광주광역시건축사회 회원 20여명은 대구 군위에 자리한 사유원 답사를 다녀왔다. 광주광역시 건축사회(회장 정인채) 회원 20여명이 함께 최근 사유원 답사에 다녀왔다.사유원은 대구 군위군에 위치한 곳이다. 광주에서 차로 3시간 정도 달려야 도착 할 수 있는 장소였다. 꽤 먼 거리라 생각하고 나선 길이 무색하게 회원들과 담소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도착해 있었다. 심리적 거리는 1시간정도 되는 듯 했다.사유원은 대구의 향토기업 태창철강의 유재성 회장이 모과나무를 수집해 키우던 정원을 '사유를 위한 수목원'으로 조성하고자 승효상 건축가와 함께 오랜 시간 동안 구상하고 준비해, 2021년 9월 정식으로 개관했다.우리는 코르텐강판소재의 정문 '치허문'을 지나, 안내소에 도착했다. 생수 한 병과 답사지의 지도가 담긴 간단한 책자를 들고 '사유원'을 두발로 사유할 준비를 했다. 근래에 계속 된 비도 잠시 쉬는 답사 날, 봄의 기운을 담고 불어오는 바람이 마음을 설레이게 했다.사유원은 철과 콘크리트로 된 계단으로 시작한다. 걷는 내내 소나무향과 흙 밟는 소리, 회원들이 가볍게 나누는 잔잔한 대화소리가 함께 했다. 간간히 답사임을 망각하고 '좋은 산책'이라는 착각에 빠졌다. 산책로를 따라 10여분 걷다 보면 첫 번째 목적지인 '소요헌'이 눈에 들어온다. 소요헌은 '자유롭게 거니는 집' 이라는 주제로 설계 된, 포르투갈 건축가 알바로 시자의 작품이다. 자연과 건축이라는 극명한 차이를 조화롭게 엮어 낸 건물이다. 노출콘크리트로 된 소요헌은 인공조명 없이 자연채광만으로 공간의 깊이와 빛의 질감을 아름답게 드러낸다. 빛을 따라 걷다보면 우직한 철문이 나타난다. 호기심에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전면이 유리로 된 창과 건축 모형, 쉴 수 있는 테이블이 놓여있다. 이 곳은 건축가의 방(요요빈빈) 이라고 한다. 알바로 시자가 디자인한 가구와 드로잉을 볼 수 있어 좋은 시간이었다.알바로 시자가 만들어 낸 '아름다운 것'들에 영감을 얻고 발길을 옮겨, 사유원의 시작 이라고 할 수 있는 모과나무 정원 '풍설기천년'으로 향했다. 유재성 회장은 우연히 일본으로 밀반출될 예정이었던 모과나무 네 그루를 알게 되었고, 이 공간의 이야기는 여기서 시작된다. 그 모과나무는 수령이 300년 이상 된 귀한 나무들이었는데, 일본 분재로 모과나무가 인기가 많아 일제 강점기시절 부터 우리나라의 모과나무가 밀반출되었다고 한다. 이를 알고 유재성 회장은 모과나무들을 사 모으기 시작하였고, 무려 108그루를 한곳에 모아 가꾸기 시작했다. 이것이 사유원의 시작이다.300년 된 모과나무지만 아직도 연분홍색의 단정한 꽃이 피고, 향기로운 모과가 열린다고 한다. 자연은 우리가 가늠할 수 없는 영역이다.회원들과 얘기하며 걷다보면 어느덧 사유원 정상에 도착한다. 저 멀리 대구 팔공산이 보이는 이곳에 승효상 건축가가 설계한 명정이 위치해 있다. 콘크리트로 된 좁은 길을 따라 가면 지하로 내려가 하늘만 보이는 건축물과 만난다. 정상에 올라 좋은 풍경을 보았으니, 이곳에서는 오로지 자신을 위해 명상하는 고요한 공간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나 또한 이곳에서 한참을 물과 빛이 만들어준 그림자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허만수 건축사명정 옆으로는 최욱 건축가가 설계한 카페 '가가빈빈'이 자리한다. 사유원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나지막한 단층의 '가가빈빈'은 사유원을 한없이 관망하기에 좋은 장소이다. 아름다운 이야기가 깃든 곳에서 향긋한 차와 함께하니,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듯 했다.광주에도 사유원처럼 건축적 산책 공간이 있었으면 하는 부러움과 질투가 마음한 곳에 생겨난다. 물론 광주에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술의 거리, 광주공원, 양림동 등 역사성과 랜드마크적인 요소가 있는 좋은 건축물과 장소가 있다.광주천이나 영산강은 산책할 수 있는 보행자 동선과 자전거 도로가 잘 갖추어져 있다. 이를 활용해서 사유원처럼 숲을 거닐며 건축 산책을 하는 것과 같이 강가를 거닐며 현대 건축을 만나는 경험 또한 광주시민에게 일상 속 휴식이 가능해지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허만수 사계절프로젝트 건축사사무소 대표김혜진기자 hj@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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