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로 평생에 후회되는 게 두 가지다. 하나는 21일 1시 계엄군의 총기발포가 자행된 금남로 현장을 기록했어야 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27일 계엄군의 도청 진압 후 도청 상황을 취재하면서 윤상원 열사의 참상을 기록하지 못한 것이다."
1980년 당시 전남매일 사진 기자로 목숨을 걸고 현장을 기록한 나경택 원로 언론인이 지난 주말 광주극장에서 전개된 영화 '사라진 4시간'의 관객과의 대화에서 토로한 '자책'이다.
"치장된 겸손함이 아니라 질박한 진심이 담긴 이 말, 그 숱한 '꺼삐딴 리' 저널리스트들에게 전해주고 싶다." 한국언론진흥재단 월간지 '신문과 방송' 6월호에 정준희 한양대 언론정보대학 겸임교수가 나 전 기자 인터뷰 말미에 전한 말이다. 정 교수의 헌사가 아니더라도 저널리스트로서 그의 역할과 활동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생과 사가 눈 깜짝할 새 갈리는 80년 당시 그는 현장에서 목숨 건 취재를 감행했다. 이후 그의 기록사진은 5·18의 전국화 세계화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당시 국내 언론은 광주참상을 거의 보도하지 않고 계엄군의 일방발표만 되뇌었기 때문에 광주시민들의 언론에 대한 절망과 반감은 극에 달했다. 여기에 시민들은 군의 사찰요원이나 혹시나 있을지 모를 간첩행위자들도 색출해야 해서 취재현장은 그야말로 살벌함 그 자체였다. '국내 기자들은 잡아 죽이려 했다'는 당시분위기는 광주시민들의 억울함의 반증이었다. 계엄군의 총칼에 언제 죽을 지 알 수 없는 상황에 시민들도 적을 대하듯 하니 취재는 목숨을 건 전쟁이었다.
취재 이후도 살얼음판의 연속이었다. 80년 이후 언제 들이닥칠지 모를 수색에 대비해 독립운동가들이 일경 대비하듯 사진을 보관했다. '지금이야 전두환 전두환 아무렇게나 부르지만 당시에는 서슬이 퍼래서 이름도 부르기 어려웠'고 사찰도 심했다. 사진 보관 또한 삶을 걸어야하는 일이었다.
이렇게 살아남은 그의 기록물은 독일을 비롯한 세계언론을 통해 광주 참상과 계엄군의 만행을 세계에 알리고 1987년 국회 청문회에서 계엄군의 거짓을 증언하는 결정적 자료로 활용됐다. 2011년 광주항쟁기록물이 유네스코 기록문화로 등재된데도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그럼에도 그는 긍지나 자부심보다 '후회'를 토로하고 '자책'한다. '좀 더 대담하지 못했던 것 아닌가'라고.
현장에서 치열하게 활동했던 원로 언론인의 '후회'가 지역의 유서 깊은 광주극장에 울려 퍼지던 날 한국 언론은 또 한 번 정파주의의 극치로 부끄러운 얼굴을 드러냈다.
김원웅 광복회장의 친일역사 청산에 대한 작심발언을 자칭, 소위 민족언론이라는 보수매체를 비롯한 언론들이 맹폭을 가했다. 입맛에 맞는 발언을 부각시켜 마치 대중의 의견인양 호도하는 수법은 더 이상 새롭지도 않다. '입맛'인지 '역사적 선택'인지 생각케하는 장면 하나 오버랩된다.
1898년 '여명'이라는 뜻의 프랑스 신문 로로르(L'Aurore)는 대문호 에밀 졸라의 공개서한 '나는 고발한다…!(J'accuse…!)'를 실었다. 당시 군과 정부가 유대인 장교 드레퓌스를 간첩으로 몰아가는 분위기를 정면으로 반박한 글이었다. 이후 에밀 졸라는 망명신세를 지고 훈장도 박탈당했지만 드레퓌스 사건의 반전 계기가 됐고 드레퓌스는 무죄를 인정받는다.
정작 '후회'가 필요한 이들은 누구인가.
문화체육부국장 겸 아트플러스 편집장
- 일상 속 휴식 가능한 건축적 산책 공간 최근 광주광역시건축사회 회원 20여명은 대구 군위에 자리한 사유원 답사를 다녀왔다. 광주광역시 건축사회(회장 정인채) 회원 20여명이 함께 최근 사유원 답사에 다녀왔다.사유원은 대구 군위군에 위치한 곳이다. 광주에서 차로 3시간 정도 달려야 도착 할 수 있는 장소였다. 꽤 먼 거리라 생각하고 나선 길이 무색하게 회원들과 담소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도착해 있었다. 심리적 거리는 1시간정도 되는 듯 했다.사유원은 대구의 향토기업 태창철강의 유재성 회장이 모과나무를 수집해 키우던 정원을 '사유를 위한 수목원'으로 조성하고자 승효상 건축가와 함께 오랜 시간 동안 구상하고 준비해, 2021년 9월 정식으로 개관했다.우리는 코르텐강판소재의 정문 '치허문'을 지나, 안내소에 도착했다. 생수 한 병과 답사지의 지도가 담긴 간단한 책자를 들고 '사유원'을 두발로 사유할 준비를 했다. 근래에 계속 된 비도 잠시 쉬는 답사 날, 봄의 기운을 담고 불어오는 바람이 마음을 설레이게 했다.사유원은 철과 콘크리트로 된 계단으로 시작한다. 걷는 내내 소나무향과 흙 밟는 소리, 회원들이 가볍게 나누는 잔잔한 대화소리가 함께 했다. 간간히 답사임을 망각하고 '좋은 산책'이라는 착각에 빠졌다. 산책로를 따라 10여분 걷다 보면 첫 번째 목적지인 '소요헌'이 눈에 들어온다. 소요헌은 '자유롭게 거니는 집' 이라는 주제로 설계 된, 포르투갈 건축가 알바로 시자의 작품이다. 자연과 건축이라는 극명한 차이를 조화롭게 엮어 낸 건물이다. 노출콘크리트로 된 소요헌은 인공조명 없이 자연채광만으로 공간의 깊이와 빛의 질감을 아름답게 드러낸다. 빛을 따라 걷다보면 우직한 철문이 나타난다. 호기심에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전면이 유리로 된 창과 건축 모형, 쉴 수 있는 테이블이 놓여있다. 이 곳은 건축가의 방(요요빈빈) 이라고 한다. 알바로 시자가 디자인한 가구와 드로잉을 볼 수 있어 좋은 시간이었다.알바로 시자가 만들어 낸 '아름다운 것'들에 영감을 얻고 발길을 옮겨, 사유원의 시작 이라고 할 수 있는 모과나무 정원 '풍설기천년'으로 향했다. 유재성 회장은 우연히 일본으로 밀반출될 예정이었던 모과나무 네 그루를 알게 되었고, 이 공간의 이야기는 여기서 시작된다. 그 모과나무는 수령이 300년 이상 된 귀한 나무들이었는데, 일본 분재로 모과나무가 인기가 많아 일제 강점기시절 부터 우리나라의 모과나무가 밀반출되었다고 한다. 이를 알고 유재성 회장은 모과나무들을 사 모으기 시작하였고, 무려 108그루를 한곳에 모아 가꾸기 시작했다. 이것이 사유원의 시작이다.300년 된 모과나무지만 아직도 연분홍색의 단정한 꽃이 피고, 향기로운 모과가 열린다고 한다. 자연은 우리가 가늠할 수 없는 영역이다.회원들과 얘기하며 걷다보면 어느덧 사유원 정상에 도착한다. 저 멀리 대구 팔공산이 보이는 이곳에 승효상 건축가가 설계한 명정이 위치해 있다. 콘크리트로 된 좁은 길을 따라 가면 지하로 내려가 하늘만 보이는 건축물과 만난다. 정상에 올라 좋은 풍경을 보았으니, 이곳에서는 오로지 자신을 위해 명상하는 고요한 공간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나 또한 이곳에서 한참을 물과 빛이 만들어준 그림자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허만수 건축사명정 옆으로는 최욱 건축가가 설계한 카페 '가가빈빈'이 자리한다. 사유원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나지막한 단층의 '가가빈빈'은 사유원을 한없이 관망하기에 좋은 장소이다. 아름다운 이야기가 깃든 곳에서 향긋한 차와 함께하니,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듯 했다.광주에도 사유원처럼 건축적 산책 공간이 있었으면 하는 부러움과 질투가 마음한 곳에 생겨난다. 물론 광주에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술의 거리, 광주공원, 양림동 등 역사성과 랜드마크적인 요소가 있는 좋은 건축물과 장소가 있다.광주천이나 영산강은 산책할 수 있는 보행자 동선과 자전거 도로가 잘 갖추어져 있다. 이를 활용해서 사유원처럼 숲을 거닐며 건축 산책을 하는 것과 같이 강가를 거닐며 현대 건축을 만나는 경험 또한 광주시민에게 일상 속 휴식이 가능해지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허만수 사계절프로젝트 건축사사무소 대표김혜진기자 hj@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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